최근 SNPE를 시작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발은 기형이다. 29년 동안 모르고 산 게 웃기지만 그동안 구두 신을 때 말고는 큰 불편함 없이 살았기에 발이라는 신체 부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 SNPE 동작을 하면서 발이 너무 아파 선생님께 물어보니 내가 무지외반증과 부주상골증후군이 있다더라. 용어가 어렵지만 어쨌든 발이 기형이라는 말. 유전일 수도 있다고 해서 당장 우리 가족에게 각자 발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는데 우리 집안에 나만 그렇다. 유전이 아니라면 왜? 문득 납득이 될만한 이유가 떠올랐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외모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는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인터넷을 접하면서 이 뒤틀린 관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한참 "얼짱"이라는 게 유행할 시기였다. 좌우대칭 완벽한 얼굴, 오똑한 코, 작은 얼굴, 마른 몸. 매일 외적으로 완벽한 얼짱 언니들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 얼굴이 불만족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소위 "훈녀생정"을 광적으로 찾아 읽고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매일 코 끝을 손가락으로 올리고 광대뼈를 짓누르고 블랙헤드를 쥐어짜고 집에 있는 런닝머신을 탔다. 초등학교 4학년, 11살 주제에 웃기지도 않았다. 심지어 나는 당시 저체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얼짱 언니들과 같은 마르고 여리여리한 체형이 갖고 싶어 줄넘기, 런닝머신, 파워워킹 등 인터넷에 나와있는 건 다 따라 했더랬다. 지금와서 보니 살 문제가 아니라 골격의 문제였거늘.
12살에는 엄마를 들들 볶아 눈 밑에 있던 점 2개를 뺐다. 얼짱 사전에 코 끝 한가인 점을 제외한 어떤 점도 얼굴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피부과에 가 눈 밑에 콕 박혀있던 꽤 진한 점 2개를 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재생크림 같은 건 없었고 점이 워낙 진해 두 번 이상을 더 레이저로 지지는 바람에 눈 밑에 패인 흉터 자국 2개가 떡하니 남고 말았다. 이 흉터는 사실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외모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중학교 1학년 같은 반에 손도 작고 발도 작은 친구가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그 친구는 발이 참 작고 생긴 것도 귀엽다고 인기가 많았는데 그게 너무 부러웠나 보다. 귀여움과 거리가 먼 상이었던 나는 그때부터 맞지도 않는 215 사이즈의 나이키 아동용 운동화에 내 발을 구겨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실제 내 발 사이즈는 235~240 정도였을 건데 이 발을 아동용 신발에 욱여넣고 다니려니 발가락들은 모두 속에서 짓눌리고 매일 누가 내 발을 모아놓고 망치로 쳐내리는 고통이 계속됐다. 그래도 누군가 나 발 작다고 한 마디만 해주면 이 정도 고통쯤 잊을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한참 성장기였으니 이때 발이 기형으로 틀어진 게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하느라 많이 잠잠해졌는데 고3 때 20kg가 찌고 온몸에 튼살이 생기면서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폭발해버렸다. 와 이건 정말 역대급이었던 거 같다. 누가 칼로 난도질한 듯 하얗게 패인 자국들이 내 허벅지와 엉덩이를 완전히 뒤덮은 공포는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튼살은 탄력도 없어 내 허벅지 안쪽, 엉덩이는 푸석푸석하고 너덜너덜해져 이미 수명이 다한 듯 보였다. 맨살보다 튼살의 비중이 높은 내 하체를 보고 있자면 당장 죽어버리고 싶었다. 너무 끔찍했다. 외적 완벽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얼짱 중에, 연예인 중에 이렇게 튼살이 많은 사람은 없어. 나의 몸을 매일 같이 부정했다. 나는 이미 망한 몸. 너무나도 절망적이었고 희망이 없다고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를 중국으로 가면서 좀 괜찮아지는 듯했으나 대학 졸업 즈음 또 문제가 터진다. 대학교 4년 내내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빨리 잊겠다고 곧바로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이도 얼마 가지 못해 비참하게 차이고 만 것이다. 두 번 연속 남자에게 버림받고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남자 없이 못 사는 멍청이었기에 이 사건이 나에게 준 충격은 어마 무시했다. 자존감이 내려갔다고 간단하게 함축해버리면 섭섭하다. 나의 자존감은 마이너스 무한대를 향해 매일 가속도를 붙여 곤두박질쳤다. 세상 모두가 나를 무시하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유도 모른 채로 차였기에 난 당장 내 눈에 보이는 나의 외모를 탓했다. 내가 예뻤다면 나를 차지 않았겠지. 모든 것이 내 못생긴 얼굴 때문인 것 같았다. 더 이상 화장, 다이어트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 처음으로 시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1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난 코 필러, 입술 필러, 턱 필러, 온갖 보톡스, 지방분해주사 등을 거의 매주 단위로 맞으러 다녔다. 대부분이 아무 효과도 없었지만 혼자 달라진 거 같다고 세뇌하며 더, 더를 외쳤다. 당시 갓 취업을 해 내 손으로 직접 돈을 벌 때라 시술뿐만 아니라 온갖 번쩍거리는 악세사리, 명품백, 하이힐, 타이트한 치마로 할 수 있는 모든 꾸밈의 수단을 다 동원해 나의 "가치"를 올렸다. 그렇게 나를 한껏 꾸미면 집 밖을 나가기 직전까지 나의 기분은 매우 좋았다. 하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나의 만족도는 다시 바닥을 쳤다. 이유를 모른 채 계속되는 공허함에 허우적대다 이는 결국 미친듯한 소비로 이어졌다. 이 옷이 별로여서 그런 거 같아 인터넷에 보이는 모든 옷들을 쓸어모으고 이 립 제품을 발라야 더 예뻐 보일 거 같아 3대가 써도 차고 남을만한 화장품을 무지성으로 구매하고. 소비할 때는 기분이 흠뻑 좋아진다. 하지만 또다시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불만족. 무한 반복이었다.
도저히 이유를 콕 집을 수가 없었다. 왜 밖에 나가 사람들만 만나면 기분이 그렇게 안 좋아질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집에 혼자 있을 땐 외면할 수 있었던 나의 허상이 타인과 있으면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대원외고, 명문대를 졸업해 창창한 미래를 준비하는 친구들 앞에서 난 한없이 주눅 들었다. 수수한 친구들 사이에 혼자 이질적으로 화려하게 겉치장을 하고 앉아있는 난 속 빈 강정이었다. 난 아무것도 없었다. 자랑스러운 직장도, 열정적인 취미도, 화목한 가족도, 나에 대한 사랑도. 자랑스럽게 들고나간 300만 원짜리 생로랑 백은 나에 대한 그 무엇도 증명해 주지 못했다. 내가 베이스 메이크업을 얼마나 완벽하게 했는지, 얼마나 높은 구두를 신었는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증명이 되지 않는다. 모두 허상일 뿐이다. 집 가서 씻고 벗어버리면 사라지는 허상.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외모를 치장했음에도 절대 행복하지 않았다. 항상 속은 열등감,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럴수록 난 더더욱 외모에 집착했다. 이때 아이러니하게 살도 굉장히 많이 쪘는데 소비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먹는 걸로 채웠기 때문인 거 같다. 나날이 쪄가는 살 위에 난 계속해서 더한 꾸밈을 얹어 이를 가리고자 했고 결국 난 비만에 이르러 긁으면 떨어져 나올 거 같은 두꺼운 파운데이션과 시뻘건 립스틱을 바른 얼굴에 주먹만 한 큐빅 귀걸이를 얹고 쉬폰 원피스를 입은 비만 여성이 되어있었다. 살이 쪘으니 이를 보완하려면 더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사진을 보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텅 빈 내실 위에 덕지덕지 치장한 외모로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살이 찌니 움직이는 게 더 싫어지고 온갖 질병들이 생겨 손 하나만 까딱해도 온몸이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나를 인정할 수 없으니 나의 불행도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외모에 투자했는데 어떻게 불행할 수가 있어? 나는 마음대로 불행할 수도 없었다.
그다음은 다들 아시겠지만 정신 차리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외모 치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아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현재 진행형 이야기. 화장품도, 하늘하늘한 원피스도, 딱 붙는 치마도, 블링블링 귀걸이도, 뾰족한 하이힐도 모두 다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세상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더라. 이를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허상에 갇혀 다신 돌아오지 않는 나의 유년기를 불필요하게 불행하게 보냈다. 이런 쓸데없는 데 돈은 또 얼마나 많이 썼는지. 그 어떤 물질로도 불가능하다. 성실한 일상생활에서 나오는 나에 대한 신념만이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다.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살았다. 인생이 불행할 때면 늘 나의 외모에 화살을 돌렸다. "내가 예뻤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겠지". 그래서 더 집착하고 더 헌신했다. 나도 한때 그런 믿음이 있었다. 예뻐지면 모두가 나를 좋아할 거라는 믿음. 또 예뻐지면 어디선가 왕자님이 나타나 나를 신분 상승시켜줄 거라는 믿음. 웃기고 있네. 세상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예뻐져서 남들이 나 좋아하면 어쩔 건데? 우리는 모두 반드시 늙고 초라해질 텐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이다. 내 인생의 키를 내가 꼭 붙들고 목숨 걸어 지켜도 모자랄 판에 여기저기 아무나 공짜로 가져가라고 가판대에 내놓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너무 안타까운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처럼 생겨도 괜찮다고 당당하게 보여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눈 밑에 점도 그거대로 예쁘다고, 매부리코도 매력 있다고, 발 크기 누가 신경 쓰냐고, 튼살 나도 있다고. 지금은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매일 같이 말해주고 있지만 이런 롤모델 없이 자라온 나의 어린 시절이 가끔은 불쌍하다. 요즘에는 그래도 인식이 많이 바뀌어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아직까지 연예인 외모를 나노 단위로 평가하며 오직 외모로만 찬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예쁜 외모에 호감이 가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또한 우리는 인간이니 의식적으로 그러한 생각을 입 밖으로 안 내뱉을 수 있지 않은가? 언젠간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주류가 되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나라도 작지만 꾸준하게 나의 이야기를 계속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