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말씀 하시는 중에 '구상과 비구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데, 구상과 비구상이 어떻게 구분이 되나요?'
'아, 구상과 비구상이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들을때마다 헷갈리는 개념입니다. 구상과 비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상과 추상, 그리고 형상에 대해서 먼저 말씀 드릴게요.'
1. 구상 : 재현의 세계, 현실을 담는 거울
구상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대상의 모습을 재현하는 예술형식을 의미합니다. 구상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이 인식 가능한 대상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관람자는 작품 속에서 인물, 정물, 풍경 등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대상을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구상 예술의 핵심은 무엇을 그렸는가, 혹은 찍었는가에 대한 질문과 닿아 있습니다. 물론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 개입이 일어나지만, 그 표현의 근간에는 항상 '실재하는 대상'이라는 기본이 존재합니다.
석양에 물든 바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할머니의 주름진 손 등 이 모든 것들이 구상 사진입니다. 사진의 최초 목적이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은 자연스럽게 구상적 성격을 가집니다. 다큐멘터리 사진, 보도 사진, 초상 사진, 고전적인 풍경 사진 등이 구상의 범위에 속합니다.
2. 추상 : 본질을 찾아가는 여행
추상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도 그것을 '대상 그 자체'로 보지 않고, 점, 선, 면, 빛과 그림자, 색채와 질감 등과 같은 순수한 조형 요소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구상이 '무엇'을 표현하는지에 집중한다면, 추상은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를 극단적으로 클로즈 업해서 찍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사진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아스팔트를 보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패턴이나 질감, 빛의 반사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추상은 크게 반추상과 순수추상으로 나뉩니다.
반추상은 구체적인 대상에서 출발하지만 작가의 의도에 따라 형태를 단순화, 왜곡, 변형해서 대상의 본질이나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피카소의 큐비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상의 여러 시점을 한 화면에 재구성하면서 현실의 형태는 해체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인물이나 정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순수추상은 처음부터 현실의 대상을 재현할 의도가 없이, 순수한 조형 요소들의 조합과 배치만으로 감정과 미적 질서를 표현합니다.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이나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색과 형태만 존재합니다.
사진에서 추상은 아론 시스킨드처럼 벽의 얼룩이나 벗겨진 페인트를 클로즈업해서 현실의 맥락을 제거하고 순수한 질감과 형태로 보이게 하거나, 마이너 화이트처럼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서 대상을 실루엣으로 처리해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추상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3. 형상 : 모든 시각적 표현의 근원
형상은 구상과 추상을 모두 아우르는 더 넓고 근원적인 개념입니다.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모든 형태, 즉 이미지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 즉 구상작품 속의 인물, 추상 작품 속의 선과 면, 그리고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물이 형상입니다.
예술의 맥락에서 형상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구상 회화에서 나무는 '나무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추상 회화에서 붉은 사각형은 '붉은 사각형'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구상이든 추상이든 상관없이, 모든 예술 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형상'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형상은 구상과 추상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서, 이미지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지를 분석하는 더 근본적인 차원의 개념입니다. 빌렘 플루서가 사진을 '기술적 형상'으로 규정한 것처럼, 형상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서 그것이 생성된 방식과 사회적, 문화적 의미까지 함축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사진을 분석할 때는 이 세 개념이 칼로 자르듯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장의 사진 안에서도 구상적인 부분과 추상적인 부분이 공존할 수 있고, 작가의 의도와 관람자의 해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개념들을 이해하고 있으면 사진을 보는 눈이 한층 더 깊어집니다. '이 사진이 구상인가, 추상인가'라는 단순한 분류를 넘어서, '작가는 현실의 어떤 면을 포착하고 싶었을까? 이 형상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가? 구상적인 요소와 추상적인 요소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작가는 대상의 구체적인 형상을 해체해서 어떤 추상적 미감을 전달하려고 했는가?' 같은 질문을 함으로써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4. 구상과 비구상
요즘에는 예전처럼 그렇게 심하게 구분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구상이니 비구상이니 하고 구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상과 추상, 형상은 알겠는데 비구상은 무엇일까요?
구상은 설명한 것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인식 가능한 형태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구상은 현실의 특정한 대상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는 모든 시각적 표현을 말합니다. '그럼 추상 아닌가요?' 할 수 있지만, 추상과 동일한 개념이 아니라, 추상보다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추상미술은 비구상 미술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모든 추상은 비구상이지만, 모든 비구상이 추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