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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스 Oct 23. 2021

[입주일기] 숨은하자찾기

처음으로 가본 나의 아파트

 아파트 분양을 받아본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아파트 건설사는 입주지정기간 개시일 45일 전까지 입주예정자 사전방문을 최소 2일 이상 의무적으로 시행하여야 한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금, 토, 일 3일간 사전점검 날짜를 정하여 우편으로 입주초대장을 보내주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아파트를 지은 뒤 처음으로 입주민에게 선보이는 자리이고, 입주민으로서는 보지도 않고 계약하며 중도금을 착실히 지급했던 아파트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중요한 기회이다. 건설사와 입주예정자의 설레면서 긴장되는 상견례 같은 자리랄까. 

 새 아파트가 잘 지어졌는지, 마감은 꼼꼼히 했는지 입주민은 주어진 기간 동안 매의 눈으로 확인하여야 한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꼼꼼히 적어서 건설사 측에 제출하고, 건설사에서 하자들을 확인하여 입주 전까지 최대한 고쳐야 한다. 


 내가 꼼꼼히 하자를 찾아낼 것 같지 않고, 사전에 중점적으로 보아야 하는 부분들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는 부담감으로 일찌감치 사전점검 업체를 예약했었다. 업체가 다 알아서 하자를 찾아낼 것이란 믿음으로 사전점검 날짜까지 마음놓고 있었다. 아파트 방문 전날에 한번 유튜브로 공부해볼까 싶긴 했는데 막상 하려니 너무 귀찮았다. 어차피 돈 주고 업체 부르는데 그냥 편하게 방문하자는 생각으로 아침에 약간의 간식을 챙겨 새 아파트로 출발했다. 

 사전점검 날짜를 일요일이었다. 사전점검 기간 중 마지막 날짜였는데, 이미 금, 토 이틀간 사전점검을 진행했던 다른 입주예정자들의 후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입주예정자 카페에 본인 아파트의 심각한 하자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 심하게는 거실 벽에 금이 간 집도 있었고, 걸레받이 선이 직선이 아니라 삐뚤삐뚤한 경우도 있었다. 주방 싱크대나 화장실 벽의 실리콘이 중간에 끊기는 경우도 꽤 있었다. 추측건대 인부들이 실리콘 작업 도중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가 돌아오면서 본인이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잊고 다른 작업으로 그냥 넘어간 것은 아닐는지. 카페에 올라온 하자 사진들을 보며 솔직히 우리 집도 상태도 비슷하겠거니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업체 예약시간이 12시였고, 업체에서 오기 전에 미리 집에 있어야 하여 10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서 직원에게 집 호수를 말하니 직원이 집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지하 주차장 도착할 때까지는 별 생각 없었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니 가슴에서 뿌듯한 감정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이곳이 나의 첫 집이구나. 작은 평수지만 드디어 나도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지게 되었구나.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대출도 열심히 갚아 언젠간 100% 내 집이 되기를... 현관에서부터 집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깨끗하고 깔끔해 보여 마음이 놓였다. 

 주방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에 가져간 짐을 내려놓고, 거실부터 찬찬히 둘러보았다. 바닥재에 찍힌 자국이나 벽지의 얼룩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사실 이런 하자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살면서 벽지나 바닥이 오염되거나 찍힐 텐데, 이런 부분들은 건설사에서 고쳐주면 땡큐고, 안 고쳐줘도 사는데 딱히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하자로 제출은 하겠지만 안 고쳐줘도 별로 불만은 없다. 

 업체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다. 총 세분이 와서 한 분은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부분들을 점검했다. 공기 중 라돈측정, 집 수평·수직 레벨 점검, 열화상 카메라를 사용해 단열재 점검을 하셨고, 다른 한 분은 바닥을 일일이 두드려보며 바닥이 비어 있는지, 창문이나 방문이 잘 닫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 한 분은 두 분이 발견한 하자를 열심히 사진으로 찍고, 기록으로 남겼다.

 점검은 한 시간 정도 소요되고, 그 뒤 나에게 하자인 부분들을 설명해주셨다. 총평은 심각한 하자는 없이 무난하다는 것이고 다만 꼭 하자보수를 해야 하는 부분들은 신경 쓰라고 하셨다. 창문을 세게 닫았을 때 창문이 흔들리는 것을 직접 보여주면서 이는 창문 주변의 벽이 비어 있어서고, 건설사에서 벽 안을 다 채웠어야 한다고 하셨다. 침실 베란다에 물을 뿌렸을 때 배수관 옆에 물이 고이는데, 바닥 높낮이가 맞지 않기 때문으로 입주 후에 꼭 배수관 물이 제대로 빠지는지 확인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발견된 하자들이 자잘한 부분 포함해서 170여 개고, 업체에서는 하자 리스트를 사진과 함께 메일로 전송해주셨다. 떠나시기 전에 입주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라고 웃으며 덕담해주셔서 기분도 좋았고, 심각할 정도의 하자는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업체 분들이 떠난 후 거실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거실 창문 밖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건설사가 조경에 돈을 쓰기 아까워했음이 틀림없는 화단에 빈약한 나무 세 그루가 꽂혀있는 전경을 보며 집에서 가져온 간식을 먹었다. 3개월 뒤부터는 매일 볼 풍경이겠구나. 이 빼빼로 같은 나무들이 잎이 풍성해지고 나무둥지가 두꺼워지려면 족히 10년은 걸릴 텐데... 나와 함께 여기서 서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애정어린 눈길로 지켜보자꾸나, 나의 빼빼로 세 그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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