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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Apr 29. 2023

잃어버린 기억

나의 첫사랑 이야기 1

 7시다. 요즘은 7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아들과 자던 장수는 안방으로 갔다. 아내 뒤에 누웠다. 매번 짜증을 내던 여편네가 오늘은 가만히 있다. 쌕쌕거리며 잔다. 슬쩍 가슴에 손을 대니 손을 잡아 내린다. 잠결인지 깬 건지 알 수 없다. 그러고는 또 쌕쌕거리며 자는듯하다. 가만히 손을 잡아본다. 손목을 쥐어보니 야위어 두 손가락이 겹쳐졌다. 팔뚝에 와서야 겨우 두 손가락이 맞닺는다. 왠지 짠했다. 쌔근쌔근 숨소리가 고르다. 배에다 손을 올리니 바로 또 손을 잡아 내린다. 오늘도 틀렸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았다. 벌써 환갑이 지났다. 해놓은 건 은행 대출이 절반인 아파트 하나뿐이다.
토요일인데 사무실을 나가야 하나? 장수는 골목 어귀에서 부동산사무소를 하고 있었다. 말이 공인중개사지 그냥 복덕방 영감인 게다. 작년에 문을 닫았다가 새로 연지가 두 달이 되었다. 그동안 아직 한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요즘은 손님이 통 없다.
코로난지 뭔지 하는 역병 탓도 있거니와 정부의 오락 가릭 하는 부동산 정책 덕에 아예 얼어붙었다.
아들 녀석이 눈을 비비며 나온다. 소파로 와서 아빠를 베고 길게 눕는다. 늦게 잤으니 더 자라고 해도 그냥 누워 있다.
전화가 울렸다. 며칠 전부터 둘러본 둘째 누나가 이사 갈 아파트 주인이다. 오늘 쓰기로 한 계약서를 하루 이틀 미루잔다. 자기들이 알아보는 집에 문제가 생겼단다. 알겠다 하고 누나한테 전화를 하니 방금 전 통화를 했단다.

 대충 아침을 먹고 사무실로 왔다. 집에 있느니 그래도 문을 여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딱히 집에 있어도 할 일은 없다. 가게문을 열고 습관이 된 듯 A자 간판을 가게 앞에 세우고는 빗자루를 들어 대충 쓴다. 허리를 펴다 올려다보니 간판에 공인중개사 변장수라고 적힌 이름이 보인다.
도대체 변장수가 뭔가? 어릴 때 친구들이 똥장수라고 놀려대던 기억이 난다.
장수는 예닐곱 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가 기억하는 건 어느 날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을 한 고아원 양호실이었다. 그때가 서너 살 쯤이었던 것 같다.
변장수는 그때 고아원 원장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호주머니에는 그냥 '1959년 7월 26일생(음)'이라고 적힌 종이 조각만 달랑 나왔다고 한다.
성과 이름을 쓰면 들통이 나기 때문이었을까?
17살 때 친한 형을 따라 고아원을 나왔다. 형이 중고 봉고를 한대 사서 식당에다 배추 무 파 등의 채소를 납품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장수는 형을 따라 까대기를 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나가야 했다.
장수는 그 이후로 꼭 새벽 4시면 잠을 깼다. 얼마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최근 몇 달간 잠을 통 잘 수가 없어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다. 고혈압 약이랑 고지혈증 약에 신경안정제까지 먹어야 하는 신세가 한탄스럽다. 이미 부모를 원망하는 일 따위는 안 한 지 오래다.
그래도 하는 일이 오전에 끝나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처음에는 만화를 보며 뒹굴거렸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졸업 검증인 셈이다. 요행히 독학으로 합격이 되었다. 그래 봤자 대학 갈 형편은 안됐다.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딴 것이 만족스러웠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스무 살부터는 형이랑 떨어져 독립을 해야 했다. 형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한방에 형수랑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칸방이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하방을 하나 얻었다. 자고 나면 온몸이 아팠다. 군용 간이침대를 벽에 붙여서 자다 보면 벽이 축축해 옷이 젖었다. 위쪽에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밖은 아파트 화단이었다. 한 번은 작은 생쥐가 떨어져 잡느라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포장마차 수박장사 아이스크림 귀걸이 가판 막노동.... 나열하면 서른 가지는 될 듯싶다.
왜 내 인생은 이럴까.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용두산공원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서 마주오는 여자에게 눈길이 갔다. 예쁘다. 키도 크다. 170은 족히 되어 보였다. 옆에 있는 여자는 그냥 그랬다. 그 여자도 장수를 쳐다보았다. 보통 여자들은 남자가 쳐다보면 눈을 돌리는데 이 여자는 스쳐 지나면서 고개를 돌려서 끝까지 보고 있었다. 쳐다보는 장수가 더 머쓱할 지경이었다. 장수가 친구들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 여자들 뒤를 뛰어갔다.

"저기요... 잠깐만요"
"네??  무슨 일이신데요?"

그 여자 옆의 친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저... 같이 사진 한 장 찍읍시다"
"카메라 주세요. 찍어 드릴게요"

그 여자의 친구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여자분과 같이 사진 한 장 찍자고요"
"네? 저랑요?"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장수가 그렇다고 하니 그녀가 피식 웃는다. 피식 웃는 얼굴이 너무 이쁘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미인이다. 넋이 나갈 정도다.

"같이 서봐. 내가 찍어줄게"
"아..  뭐래니?"
"뭐 어때. 사진 한 장 찍는 건데"

그녀의 친구가 부추긴다. 저렇게 이쁠 수가....
결국 그녀가 마지못해 옆에 와 선다. 찰칵

"아 감사합니다. 저기 전화번호..."

그때 친구들이 와서 불러댄다. 저런 우라질 놈들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 다 된밥에 재를 뿌린다. 
그러는 중에 그녀들이 자리를 떠났다. 아 이런...

"저기 고마웠어요.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봐요."

장수가 저만치 가는 그녀들을 향해 소릴 질렸다. 한참을 그녀들 뒤를 쳐다보았다. 친구들이 빨리 내려가자고 보챈다. 

"야 이런 우라질 놈들아"

장수가 소리를 꽥 지르며 친구의 목을 끼고 죈다. 그러고 그녀들과  헤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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