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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맨 Jul 01. 2016

갈맷길을 향하여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여행의 일부이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결정을 한다는 것은 관성의 법칙에 어긋나는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관성을 극복하면 방향의 전환이 생기고 이로 인한 예기치 않았던 일로 인해 삶의 다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부산 둘레길인 갈맷길을 완보해 보고 싶은 마음을 한동안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매달 마지막 일요일을 갈맷길을 걷는 날로 정한다. 그 첫발을 떼기 전 날 부산 시내버스 노선도를 검색하여 갈맷길 출발점인 임랑으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 둔다. 먼저 1001번을 타고 다음에 임랑 가는 188번 버스로 횐승해야한다.


당일 아침이다. 출발이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여덟 시에 출발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딸아이와 집사람이 함께 동행하기를 기대하며 기다리다 결국 혼자서 아홉 시에 집을 나선다. 간단히 배낭 하나, 카메라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1001번 버스를 타러 간다. 노선 안내판을 들여다보니, 이 정류소에는 1001번 버스가 정차하지 않는다. 200여 미터 떨어진 다음 정류장으로 간다. 어, 여기에도 1001번이 정차하지 않는다. 첫걸음인데 벌써 일이 꼬인다. 50미터 떨어진 다음 정류소로 가는데 그 사이 1001번 버스가 나를 앞질러 간다. 배낭을 덜렁거리며 달린다. 간신히 1001번 버스를 탄다. 아홉 시 십오 분이다.  


열 시 반이나 열한 시쯤 되어야 임랑에 도착하겠다. 좀 늦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요즘과 같이 휙휙 돌아가는 세상에걷는다는 것 자체가 의도적인 느림을 지향하는 것인데, 걷기 위해 나선 길에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열두 시에 갈맷길 시발지인 임랑을 출발하더라도 총 4시간이 소요되는 갈맷길 1-1코스의 종착지까지 넉넉잡아 오후 다섯 시에는 도착할 수 있다. 혹 도중에 사정이 있어 멈춰야 할 일이 있으면 거기서 멈추고 언제든 다음에 다시 거기서 시작할 수도 있으니 안달복달할 필요도 없다.


열 시에 기장 청강리 공영차고지에서 하차한다. 임랑 가는 188번 버스를 기다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10분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정류소를 더 가야 임랑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허 참. 다시 버스를 타고 청강 사거리에서 하차한다. 청강 사거리에서 임랑 가는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고 노선안내도를 확인하는 순간, 아차차 버스를 잘못 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허둥지둥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죽성 사거리이다. 하하하. 어이가 없다. 그냥 웃고 넘어가 버리자. 그래 괜찮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여행의 일부이고,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이 예기치 않은 선물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괜찮다.

 

그렇기도 해도 더 이상의 착오는 반갑지 않다. 부산시내버스노선을 검색해서 확인해 본다. 임랑 가는 188번은 지금부터 2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다. 남은 20분은 느림의 최대 주주인 기다림의 시간이며, 온전한 여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등 없는 빈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일요일 오전 인적 드문  한적함이 화창한 기장 대로 위의 공간을 가로질러 바람처럼 빈 마음 속으로 불어 들어온다.   


10시 45분 임랑 가는 188번 버스에 승차한다. 일광을 지나자 버스가 달리는 시골길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달리는 길이 된다. 상쾌한 햇살을 헤치며 너른 공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차 안 텅 비어 장이 서지 않은 장터 같다.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두 손깍지로 베개 삼아 뒷 머리에 베고 다리를 쭉 어 길게 몸을 뒤로 젖혀 느긋하게 차창 밖을 보니, 길가에 도열해 있던 도시의 현대적 인공 구조물은 간데없고 촌마을, 풀포기, 푸른 소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있고, 한쪽으로는 텅 빈 들판과 먼 산, 한쪽으로는 소나무 숲 사이로 푸른 동해 바다, 그리고 저 멀리 파란 하늘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일광 지동해안을 끼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간이 거꾸로 지나간다.  


11시 5분, 죽성 삼거리를 출발한 지 25분. 임랑 삼거리에 도착한다. 버스로 25분 거리가 걸어서는 4시간 거리이다. 25과 4시간 사이의 시간과 공간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그것은 걷고 난 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우선은 걷고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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