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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별 Nov 04. 2022

여전히 엄마가 무서운 당신에게

11월 3일의 악필 편지

저에겐 아버지가 그런 분이었습니다. 참 징하게, 우리는 가끔은 정말 서로 죽일 것처럼 싸우며 자라났습니다. 감히 말해보건데 자라났다는 것이 코흘리개였던 저 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아이의 성장을 하는 동안 아버지도 당신이 낳고 기른 자식이 이렇게 속을 썩이는 걸 보며 어른의 성장통을 겪으셨겠지요. 아이를 낳고 키워보지 않은 지금의 저는 아직 알 수 없는 고통일 것입니다.


지금도 저는 제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따금 느낍니다. 어려운 어른을 만날 때면 잔뜩 긴장해서 땀을 뻘뻘 흘립니다. 죽이 맞는 친구와 장난을 칠 때는 주먹으로 툭툭 때리면서 악의 없는 욕을 낄낄대며 주고받지만, 안전하고 단단한 관계라는 확신이 없을 때는 저는 필요 이상으로 예의 바르게 굽니다. 덕분에 ‘착하고 친절한데 노잼’이라는 소리를 썸녀에게 들은 적도 있었죠. 


저는 누구를 만나도 과하게 긴장하고 눈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처럼, 제가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면 고함을 지르고 따귀를 올려붙이곤 하셨던 아버지처럼,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볼 수 있다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이겠지요. 평생 이런 버릇을 고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저를, 그리고 저를 그렇게 만든 아버지를 오래 미워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하나의 세상입니다. 자라난다는 것은 그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가꾸어가는 일이라고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세상을 가꾸는 법도 부모에게서 많은 부분을 물려받기 마련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아이의 내면 세계를 대상관계, 또는 가치체계의 내면화 같은 말로 설명을 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른입니다. 한 걸음씩 부모의 세상으로부터 독립해나와 나의 세상을 이루어가고 있지요. 두 세상은 많은 부분이 닮았겠지만,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주인이 다르지요. 나의 삶은 나의 것이고, 그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지나치게 예의바르고, 너무 긴장하는 저의 모습도 아버지를 닮았을지언정 저의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걸 책임지고 가꾸는 것도 제 몫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때, 저는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물려 준 아버지도, 이런 아버지를 나와 만나게 한 이 세상도요.


가혹하게 당신을 혼내곤 하셨던 어머님의 품을 떠나고도 당신은 그 삶의 관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어머님의 서늘한 눈초리 아래에 숨통이 조이듯 보내는 하루하루가 버겁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두려워하는 당신의 모습을, 저는 당신 스스로만큼은 안아줄 수 있기를 바라요. 당신은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두려움 또한, 사랑받아야 마땅한 당신의 한 조각이니까요.




웹사이트 링크를 통해 편지를 보내 주세요. 답장으로 악필 편지를 매주 목요일 저녁 6시에 보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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