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치유기 11
사실 대기업 임원은 계약직이어서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을 것이다.
하여 그의 갑작스러운 퇴임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배려로 치유되고 있던 나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그는 단순히 직장 상사로서뿐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나에게 많은 영감과 배울 점을 시사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많은 상사를 만났지만 존경할만한, 그리고 믿고 의지할만한 사람은 사실 손에 꼽을 만큼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내가 신뢰하고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또한 이전에 너무 힘들어 퇴사를 하고자 했던 내게 그래도 버티면 좋은 기회가 올 수 있다고 조언해 줘서 오늘까지 이끌어 준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존재의 사라짐은 나에게 한줄기 희망이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기존에 나를 힘들게 했던, 그러나 조직개편으로 다른 팀으로 발령받았던 팀원들과 다시 한 팀이 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나마 그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되고, 상사의 배려로 치료와 회사생활을 간신히 병행했던 나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위와 같은 사실을 직속상사인 임원에게 직접 전달받고, 나는 더 이상 회사를 다니며 치료를 받으며 호전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단 나는 당분간 부친병환 간병을 위해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하여 회사와의 연결고리를 최소화하며 마음을 다스려보고자 하였다.
당시 부친께서는 큰 수술 후 퇴원을 앞두고 계셨다.
하여 부친 퇴원 전까지는 재택근무를 하고, 이후 부친 간병을 위해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함으로써 그동안 자주 못 뵌 부모님도 돌봐드리고, 회사로부터 나 자신을 떨어뜨려놓음으로써 치료의 효과도 높여보고자 함이었다.
다음날 나는 인사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하였고, 지금까지 나의 직속상사인 임원만 알고 있던 마음의 병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CEO는 나와의 개인면담을 진행하였고, 가족 돌봄 휴가에 대해서 승인을 해주었다.
또한 당장 가족 돌봄 휴가가 아닌 첫 달은 재택근무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이후 가족 돌봄 휴가를 사용했으면 한다는 나의 요구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치유를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4주 간격으로 병원을 내원하며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으며, 약의 효능이 제대로 내게 작용하는지를 주치의에게 확인받으며 약 1년 정도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에 대해 몸이 안정되긴 하였으나, 근본적인 원인의 해결 없이 치료가 빠르게 진행되기는 쉽지 않았던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일단 근본적인 원인인 회사 내에서의 직접적인 갈등을 겪지 않는 상황으로 나를 옮겨놓았으니 그동안 치료 중 문제였던 약물 의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치의는 내가 약물을 줄이거나 단약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실 아내도 약물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 늘 주치의에게 얘기했지만 그보다는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인한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에 약물 복용을 유지하자는 것이 주치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뀐 현재는 그때와는 조금 다른 치료법이 필요해 보였고, 주치의도 결국 약물을 단약까지는 아니지만 용량을 줄이는 것으로 치료 방법을 변경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이후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며 처음 며칠은 조금 상황이 나아지는 듯하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단절이 곧 모든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메일이든 카톡이든 전화든 회사와의 연결고리가 있는 이상 회사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라 나를 계속 괴롭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