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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마음의 병 치유기 15

by 김해피

며칠 뒤 기존 CEO는 해외지사로 발령 소식이 들렸고, 전략 담당 임원이 새로운 CEO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늦은 밤 인사팀장이 나에게 갑자기 전화를 하였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우선 그 시간이면 그가 술을 마셨을 가능성이 농후했고, 그럴 경우 좋은 대화가 오갈 것 같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설령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도 서면이나 메시지 등의 공식적인 대화가 아니면 내가 납득할만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더 이상 인사팀장에게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존 CEO와 새로운 CEO, 그리고 인사팀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간략하게 내용을 정리하면,

'왜 내가 이런 최하 고과를 받아야 하는지 명확한 사유가 기재되어 있지 않고, 인사팀장에게 들은 답변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두 분 중 평가를 내린 분이 명확한 사유를 알려달라.

그리고 그런 정당한 사유가 없는 저평가는 직장인 괴롭힘에 해당한다'


강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달했다.


나로서는 배수진을 친 것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의 병세가 다시금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하여 나를 위해서라도 명확한 답변을 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일을 보내기 전까지 나는 수십 번도 넘게 문장을 고치고 다시 읽었다.

혹시나 감정이 앞서 표현이 거칠게 보일까, 또는 너무 약하게 전달되어 내 절박함이 묻히지 않을까 고민이 컸다.

그만큼 이번 메일은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내 삶과 건강이 걸린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들은 아무 답변이 없었고, 그렇게 나의 메일에 대한 답변은 공허함으로 돌아왔다.

절벽에 사람이 소리치면 메아리라도 돌아오는데, 살아 있는 동료에게서조차 아무 답변도 없다는 현실은, 다시금 인간관계의 냉정함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모니터 앞에 앉아 새로 도착한 메일함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새 메시지가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그 공허한 반복은 차라리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의 그릇된 판단에 대해서 가만히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았고, 당당히 나의 의견을 전달했기에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나에게 최우선이라 생각하였다.

나로서는 해야 할 대응도 했고, 그들의 의사도 확인하였기 때문에 일단 이 문제는 후에 판단하기로 하였다.


물론 쉽게 잊히진 않았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기댈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관계들이 사실은 얼마나 허약했는지, 그 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 충격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나의 이성적인 판단과 다르게 내 내면에서는 억울함과 분노, 원망이 뒤섞여 절규하고 있었다.


결국, 극심한 긴장과 혼란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잡고 마음의 균형을 찾기 위해 힘들게 애쓸 수밖에 없었고, 그 고통은 오롯이 내가 감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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