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과 연애하는 유치원 선생님

원장님한테는 비밀.

by 캐나다 부자엄마

퇴근을 하고 다른 반 선생님들과 유치원 앞 노점 트럭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남자친구와 싸운 이야기, 다음 달 카드값 걱정.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허공을 떠돌다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아까 Nathan이 내 손에 쪽지를 쥐어준 생각만 했다. 어머 머야. 설마 사랑인 거야?


결혼을 하려던 남자가 있었다. 늘 그렇듯 나는 내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했다. 보여줘서는 안 될 것까지 보여줬고 데려가서는 안될 곳까지 보여줬다. 그게 내가 가진 가난이었고 그게 내가 살고 있는 영구임대주택이었다.


결혼을 하려는 남자는 돈이 많았다. 차도 있었다. 서울에 아파트도 있었고. 나 같은 사람이 평생을 벌어도 사지 못할 것들을 그는 다 가지고 있었다. 사랑을 하면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다 보여줘야 하고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송이었다. 사랑에 사람에.


부담이었을 거다. 가난이. 내가. 우리 집이. 그리고 내 가족이. 그래. 나도 그게 다 부담이었거든. 발목에 달라붙어있는 쇠사슬처럼 나는 흉하게 엉겨 붙어 있는 그것들을 사랑이란 이름 아래, 결혼이란 이름 아래 하나씩 다 꺼내 보여줬다. 목이 막혔을 거다. 그 사람은.


그와의 연애는 사귄 지 딱 일 년이 되던 날 끝이 났다. 상견례도 했다. 식장도 알아봤다. 우리가 살 아파트도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사랑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나를 숨기거나 과하게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되니까.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때, 상대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와의 연애를 끝내고 깨달았다.


'내가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그와 헤어지고 나는 방황했다. 다시는 남자한테 마음 주고 기대지 않는다고............................. 엥? 제가요? 언제요? 나는 가벼운 사람이었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란 유명한 말처럼 나는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처럼 Nathan과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Nathan은 미국사람이니까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미친, 무슨 생각하는 거야 사귀지도 않는데. 결혼하자고 하면 미국으로 가야 되나?" 나는 가벼운 사람이었다. 한번 꼭 쥔 손에 나는 결혼까지 생각했다.


토요일이 되었다. 그와 만나기로 한 토요일. 금요일 저녁부터 나는 잠을 설쳤다. 사랑은 아니었다. 설렘. 오랜만에 찾아온 설렘과 두근거림. 어떤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준다는 건 기적이다. 나 같은 애를,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 준다니.


치약물이 뿌옇게 튄 화장실 거울 앞에서 아에이오우 소리를 냈다. "하이 Nathan. 굿모닝." 영어 연습도 했다. 잘 보이고 싶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노력하고 싶고 잘 보이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이 그렇다.



이전 02화우리 유치원 선생님 바람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