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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시유 Sep 24. 2024

자만심에 찬 고양이

 자기가 예쁜 줄 아는 고양이가 있다. 지난 글의 고양이와는 확연히 다른 외모였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에 분홍색 코. 쭉 뻗은 다리와 S라인 몸매. 윤기가 좔좔 흐르던 황금빛 털. 너무 보송보송해서 나도 한번 만져보고 싶은 우윳빛깔 앞발. 만약 고양이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 후 현재는 아이돌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예쁜 줄 아는 고양이


  몇 해 전, 차 명상(차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법)을 연구하던 중 차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고자 인도의 아삼(Assam)에 갔었다.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아삼 주는 비가 많이 오고 기온이 높아 차를 재배하기 좋다. 그래서 인도 차의 절반이상이 이곳 아삼에서 생산된다.


차 재배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았다. 내가 구한 그 숙소는 인도인 가족과 함께 지내는 로컬 민박집이었다. 아삼은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주로 보통 묵는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숙소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숙소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묘우지'였다. 그 '묘우지'란 이름이 인도 특유의 억양 때문에 내 귀엔 자꾸만 '묘지'로 들렸다. 그래서 그런가? 그 고양이를 볼 때마다 공동묘지가 떠올라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파동의 영향을 받는다. 인체도 70% 이상이 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도 파동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싱잉볼, 사운드 힐링, 만트라 명상, 긍정 확언 등은 파동의 원리를 이용한 것들이다.


개명을 한 사람들 중에 개명 후 운명이 바뀌었다고 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그들은 일단 파동의 힘을 제대로 쓰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었기에 운명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바뀐 의식을 장착하고 거기다 파동의 힘까지 더해져서 운명의 행로가 달라진 것이다. 오래전 TV동물농장 천재견으로 세상에 알려진 '행복이'가 괜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을 관찰해 보면 파동의 가진 힘의 일례들을 알 수 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난 정말 운이 좋아'와 같은 말들을 반복한다. 반대로 불행한 사람들은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와 같은 말들을 되풀이한다. 이것이 바로 말이 가진 힘이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주문을 외는 것과도 같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신의 이름을 매우 중시했다. 이집트 신의 이름엔 그 신이 가진 권능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서 신의 이름을 아는 자들은 상황에 따라 그에 걸맞은 신의 이름을 부르며 주문을 외웠다.

 

어딘지 모르게 섬뜩했던 묘우지

(비명소리) "으아아아악!"


오싹했던 그 느낌은 이내 현실이 되었다. 방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짐을 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엉덩이가 벌에 쏘인 듯 따끔했다. 난 타란툴라와 같은 초대형 독거미한테 물린 줄 알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독거미는 온데간데없고 묘우지가 내 엉덩이 앞에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여운 악마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한 터라 난 자발적으로 묘우지의 밥을 챙겨주겠다고 했다. 나를 밥 주는 사람으로 인식한 묘우지는 그때부터 자신의 의사표현을 아주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묘우지의 의사표현 방법은 딱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깨물기!


'나 배고파' → "아악!"

'사료 눅눅해졌어' → "으아아악!!"

'물 새 걸로 갈아줘' → "으아아아아악!!"

'그냥 심심해서 한번 물었어' → "우아아이야이악!!"


묘우지는 이제 그 이름처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묘우지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연습효과라는 심리 용어가 있다. 연습 효과란 과제에 대한 반복적인 경험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을 뜻한다. 연습효과 때문일까? 반복된 깨물림으로 묘우지가 아직 날 물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엉덩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하루는 묘우지가 나를 하도 깨물어서 사료를 채워주러 갔더니 밥그릇엔 사료가 가득 차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주인아주머니한테 여쭈어보니 아삼 주는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습해서 사료를 밥그릇에 놔두면 금방 눅눅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묘우지는 그 눅눅해진 사료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묘우지는 자신의 예쁜 외모답게 이 집의 여왕님 행세를 했다. 사료가 눅눅해져서 입도대지 않으시니 매번 눅눅해진 사료는 버리기 일쑤였고 묘우지 입 맛에 딱 맞는 물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난 몇 번씩 찬물 더운물을 번갈아 가며 떠와야 했다.


그리고 그 넓은 집에 묘우지 전용 공간과 큰 침대가 있었음에도 묘우지는 항상 내 옷만 골라 앉았다. 그 옷은 힘들게 손빨래를 한 뒤 이 습한 날씨에 간신히 건조한 뒤 정성 들여 개켜놓은 옷이었다.



네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티베트인이 운영하던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선 버터를 넣어 함께 끓인 티베트 버터차를 팔고 있었는데 그 차가 어찌나 부드럽고 향이 풍부하던지 난 버터차에 매료되어 매일 그곳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 카페 주인이 가족 행사로 고향에 가야 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생이 대신 카페를 돌보게 되었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완벽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소문에 듣자 하니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최근에 다시 인도로 돌아온 엘리트라고 한다. 외모가 잘났는데 똑똑하기까지 하다니!


'차 준비됐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 쌀쌀맞은 태도로 나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내가 주문한 버터차가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이 많아 바빠서 그런가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 작은 카페에 손님이라곤 나 한 명뿐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셀프서비스라는 개념이 없는 인도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난 다시 물었다.


"차 안 가져다주시나요?"


아르바이트생은 귀찮게 뭘 그런 걸 다 묻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직접 와서 가져가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왔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지난번 아르바이트생처럼 잘난 외모와 좋은 학벌을 지니진 않았지만 늘 먼저 밝게 웃어주었다. 무엇보다 그 친구는 예의가 바르고 붙임성이 좋았다.


예전 티베트 주인처럼 자신이 손수 만든 디저트인데 한번 먹어보라면서 내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버터차를 다 마신 것을 보면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먼저 와서 물어보았다. 내가 한국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자 어눌한 발음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난 그 마을을 떠나기 전 그 아르바이트생에게 난 내가 가지고 있던 한국제 신발과 옷, 그리고 한국에서부터 챙겨 왔던 아끼던 식량들을 주었다. 완벽하지 않았던 알바생의 2% 살짝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발리에서 만났던 고양이 차차가 떠올랐다. 차차는 비록 못생긴 외모를 가졌지만 애교가 많고 성격이 좋았다. 난 그런 차차에게 하늘의 별도 따주고 싶었다. 차차의 행동을 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묘우지에겐 간식하나 사주고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간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나오던 저 표정



"신은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과 가장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신을 필요로 하지만, 자만심에 찬 사람은 신 없이도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라마나 마하리쉬-


잘난 동물들 중에 자신이 잘난 것을 아는 동물들이 있다. 이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자신이 잘났다고 도도하게 고개를 치켜들면 그 순간 신은 도움의 손길을 놓아버린다. 신이 보기에 스스로 잘나고 똑똑한데 굳이 신 입장에서 도울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쁜 외모를 타고난 묘우지도, 똑똑하고 잘난 외모를 지닌 아르바이트생도 아마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스스로가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안 사람은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이미 타고난 외모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에 작은 언행이더라도 남들보다 더 크게 눈에 띄는 법이다. 반대로 못생긴 고양이 차차는 예쁨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예의가 바르고 겸손했던 새 아르바이트생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신이 현재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된다면 먼저 자신이 가진 자만심과 고집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현재 인생의 밑바닥이라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그동안 도움 필요 없다며 빳빳하게 세우고 있던 고개부터 낮추고 겸손해져야 한다.


그래야

주변사람들로부터

신으로부터

대자연으로부터

우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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