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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민원인 04화

민원인 ep.4

비상주 감리

by Celloglass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하면 감리 업무가 시작된다.

감리의 주된 역할은 설계도서대로 시공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하고 감독하는 일이다.


모든 공사의 처음과 끝을 감리가 상주하며 지켜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정 규모 이상이거나 연속된 층수가 기준에 해당하면 상주 감리, 그렇지 않으면 비상주 감리로 구분된다.


개인이 비용을 더 내고 비상주를 상주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용 절감을 선택한다.
내 건물이 비상주 대상이면 ‘안전’보다 ‘비용을 줄였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비상주 감리가 법적으로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시점은 정해져 있다.
기초공사, 5개 층마다의 바닥 슬래브 배근, 그리고 지붕 배근.
소규모 건물이라면 2~3번의 검측으로 끝나기도 한다.


규정상으로는 매층마다 슬래브 배근 검측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만큼 대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비상주 감리의 역할은 슬래브 배근 검측에 한정된다.
시공자와 건축주가 자재나 공법을 임의로 바꿔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참견할 권한도 모호하다.


그런데 사고나 문제가 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주든 비상주든 구분 없이 책임을 묻는다.


이번 현장은 일방통로 필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이었다.
도심지 공사에서 주변 거주민 민원은 피할 수 없다.

“시끄럽다.”
“도로를 왜 막았냐.”
“우리 집 강아지가 안 짖는데, 요즘 자꾸 짖는다.”

이유는 다양하다.
이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들은 민원인이 된다.

관할 구청에 전화를 건다.

“너희는 뭐 하는 사람들이냐.
이렇게 시끄러운데 현장에 나와서 지도를 하든,
중지를 시키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도 난감하다.
착공신고 때마다 “민원 발생 안 되게 해 달라”라고 당부하지만,

전화는 빗발친다.

결국 전화를 돌리는 곳이 있다.

“○○동 ○○번지 감리 맞으시죠?
오늘 이런 민원이 들어와서 연락드립니다.
조치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 보면,

감리자는 동네 호구다.


공무원은 거친 현장 소장보다, 법적 대응이 능숙할 것 같은 감리자에게 전화를 건다.
비상주 감리임에도 말이다.


비상주는 말 그대로 상주하지 않는다.
없는 날이 더 많다.
대부분 감리자는 전화를 받아 현장소장에게 상황을 전달하는 것으로 끝낸다.
직접 달려가 지킬 수 없다.


이 정도면 법적 책임을 질 사람을 두는 셈이다.


최근 건축사들 사이에서 감리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짙다.
권한은 없고, 비용은 적으며, 책임만 무겁다.

공사를 직접 하는 업무가 아님에도,
사망사고 발생 시 감리자 처벌 규정과 형량까지 강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질 것이다.


상주든 비상주든 책임과 처벌만 강화하는 것이 답일까.


제도와 법이 정말 모두를 공평하게 보호하고 있는지,
그 근본부터 되짚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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