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재생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다.
작은 무질서가 방치되면 더 큰 무질서로 이어지고, 결국은 범죄와 붕괴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방치하면, 이내 주변은 쓰레기 더미가 되고 만다.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빈집 하나가 방치되면 그 마을은 금세 폐허가 된다. 아이들에게는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리곤 했지만,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아이들조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소멸은 이제 추측이 아닌 현실이다. 인구는 줄고, 사회는 고령화되며, 청년과 생산 인구는 수도권으로 흡수된다. 수도권은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이 인생 최대의 목표처럼 여겨지지만, 지방에는 사람이 떠난 빈집만 늘어난다.
지자체마다 빈집 정비 정책을 내놓지만, 일부를 공용시설로 바꾸거나 철거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것조차 예산이 부족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공공의 문제는 명확하다. 스스로 나서지 않고 늘 민간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도로와 다리를 민간에 맡기고 수십 년간 운영권을 넘겨주면서, 우리는 매일 통행료를 낸다. 일산대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가 시설을 이용하면서도 민간 사업자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가 당연한 것처럼 굳어졌다. 이제는 문제라고 느끼는 감각조차 희미해졌다.
LH, SH, GH와 같은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국가 땅에 도로를 내고 기반시설을 설치한 뒤, 민간에 땅을 분양하고, 이후 다시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사들여 주거 확충을 한다고 말한다.
애초에 공공이 직접 지었다면 훨씬 적은 세금으로 공급이 가능했을 사업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행사와 건설사의 배를 불려주는 구조가 반복될 뿐이다.
왜 이런 모순이 계속되는가. “공공은 수익을 내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공공이 스스로 사업을 하지 않고, 경쟁입찰을 통해 민간에 넘기는 것을 당연한 절차로 만들어왔다.
국정감사에서도 입찰 과정의 공정성만 따질 뿐, 왜 공공이 직접 하지 않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 자체가 우리 사회가 규정해 버린 틀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구가 소멸하는 지역에서야말로 공공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역의 자산을 활용해 자체 사업을 운영하고, 수익을 다시 공공에 투자해야 한다.
산과 강, 계곡, 바다, 해수욕장 등은 충분히 자산이 될 수 있다. 계곡을 5성급 호텔처럼 관리하고, 정당한 비용을 받아 지역의 일자리와 복지에 재투자한다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의지다. 정부가 해 주길 기다리며 마냥 버틸 수는 없다.
지자체가 직접 ‘센터’가 되어야 한다. 빈집을 정비하고, 마을을 재생하며, 주민들을 고용해 지역의 수익을 함께 만들고 공유해야 한다. 주민과 농가가 직접 연결되어 식자재를 공급하고, 노인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할 것은 없다.
더 늦기 전에 지역 스스로 빛을 밝히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소멸의 길에서 벗어나 재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 시작과 끝을 공공이 직접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