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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플레 Sep 08. 2020

크리스토퍼 놀란의 야망

: 영화의 되감기 기법과 <테넷>의 '인버전'

'되감기'가 적용된 초기 영화들로 보는 영화 속 시간


최초의 영화를 만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는 <벽의 해체, 1896>에서 처음으로 되감기 기법을 도입했다. 인부가 장비로 벽을 부수고, 벽이 무너지면서 먼지가 뿌옇게 퍼진 뒤 인부들은 곡괭이로 벽을 조각낸다. 이후 영상은 되감기 되면서 먼지가 다시 모이고, 벽의 파편들이 조립되고, 쓰러졌던 벽이 다시 세워진다. 이 단편 영화는 일종의 시각적 트릭이다. 영화의 제목이 '벽의 해체'니까 벽이 무너지는 장면만 담아내도 좋았을 법도 한데 이 작품은 부순 벽을 되돌려 복원하는 장면까지 담아냈다. 뤼미에르 형제는 어째서 되감기 장면까지 포함시켜 전체 작품을 구상했을까? 장비로 벽을 밀어서 무너뜨리고 곡괭이로 벽을 부수는 순행의 장면은 되감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한다. 역재생되는 영상을 살펴보자(하단 링크 참조). 인부가 곡괭이를 들어 올리면 흩뿌려진 벽의 잔해가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벽이 형태를 갖춰나간다. 자욱한 먼지가 벽의 주변으로 모이면서 벽이 세워지는 장면은 마치 비현실적인 마법이 이루어지는 순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만화에서 마법사가 마법의 약을 만들 때나 요술을 부릴 때는 항상 하얀 연기가 함께 피어오른다. 해체된 벽이 복원되는 장면에서도 뿌연 먼지가 마치 그런 하얀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름 의미 부여를 하자면 되감기를 통한 벽의 복원은 일종의 마법이다. 억지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분명 영화 속 장면은 비현실적인 요술과도 같다. 현실 세계에선 부서진 벽을 다시 세울 수 없다. 뤼미에르 형제는 어쩌면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마법을 부리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9p0HI9t5IB0

<벽의 해체> (뤼미에르 형제, 1896)


영국의 영화감독 조지 알버트 스미스는 1900년에 <The House That Jack Built>라는 무성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화면 오른쪽의 소년(하단 링크 참조)이 블록으로 지어진 근사한 집을 손가락으로 블록을 쿡쿡 찌르면서 몇 번에 걸쳐 무너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영상이 되감기 되면서 바닥에 널브러진 블록들은 소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위치로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니 금세 멋진 블록 집이 완성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잭이 '무너뜨린' 집이 아닌 잭이 '지은' 집이다. 즉, 감독은 되감기 장면에 의미 부여를 더 크게 했고, 영화 속 정방향의 장면은 되감기 장면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의 되감기는 <벽의 해체>에 적용된 연출보다 더욱 많은 의미를 갖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되감는 장면에 '소년이 집을 짓는다'라는 납득 가능한(무너진 벽을 세우는 것과 집을 짓는 것은 분명 성격이 다르다) 시간 순행적 서사를 부여하며 의미를 재창조하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다. 역재생된 소년의 손이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분명 블록으로 집을 짓는 행위는 벽을 세우는 마법보다는 현실에 가깝다.


https://youtu.be/FodJDLYvBDU

<The House That Jack Bulit> (조지 알버트 스미스, 1900)


초기 영화들 중 앞서 언급한 두 단편에는 필름에 담아낸 시간을 스크린으로 드러내서 조작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담겼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니라 적확한 의도를 파악하긴 힘들겠지만 감히 예상해보자면 이들의 욕망은 시간을 영화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시간은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도와주며, 서사 구축의 밑바탕이 되는 든든한 조력자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시간은 영화의 주인공은 아니다. 그런데 무너졌던 벽을 세우는 마법이나 소년의 손가락으로 집이 만들어지는 서사는 시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다. 시간이 비로소 중요하게 작용하며 관객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힘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는 인간의 시간 인식 체계를 보완해 준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중 일부를 마음대로 필름에 담아낼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시각화할 수 있으며, 화면을 정지하기도 하고 급기야는 되감기를 통해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들 수도 있다. 감각적 차원에서 완벽히 수용할 수 없었던 시간마저도 인간 지성의 확장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손에서 가공된다. 영화라는 예술은 문명의 발달과 정교하게 맞물려있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있어 인류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방식을 적용해 나가게 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인류가 감각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시간을 건드리는 이러한 초기 영화계의 시도는 분명 시간을 향한 지배 욕망이 싹트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낼 수 있다. <벽의 해체>와 <The House That Jack Built> 속 마법 같은 되감기는 인류 오성의 진보와 함께 동반되는 인간의 야망이 단편적으로 드러난 예시로 보인다.





놀란이 영화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법


소년 잭이 손가락 마법으로 블록집을 쌓아 올리던 때로부터 120년이 지났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최신작 <테넷, 2020>에는 '인버전(Inversion)'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간단히 말해 인버전은 순행하는 시간 흐름을 역전시켜 거스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미래 기술이다. 이는 개체가 미래에서 과거 혹은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것과 같이 특정 시점으로 불연속적으로 이동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러니까 <백 투 더 퓨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시간 여행과 <테넷>의 인버전은 확실히 다르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테넷>의 세계관에서는 개체가 현재보다 2주 전의 시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인버전 장치(회전문)를 통해 그 시점으로 갈 수 있다. 다만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2주 전의 시점을 콕 집어 그때로 이동하는 개념이 아니다. 회전문을 지나 인버전된 개체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시점으로부터 인버전을 시도하면 그 순간부터 그 개체는 2주 전까지 역방향으로 연속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테넷>에서 인버전된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 분)는 인버전 장치를 지난 후,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시간 흐름이 역전된 세상을 목격한다.


<테넷>의 인버전이 독특한 이유는 단순히 순행적 시간의 흐름을 '되감기(rewind)' 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은 실제로 배우들을 뒤로 걷게 하고 몸을 거꾸로 움직여 액션을 수행하게 했으며, 물체가 땅에서 올라가 손에 잡히는 장면도 CG 없이(자석이나 와이어 등을 활용한 것으로 추정) 연출했다. 회전문을 통과해 인버전된 인물의 역행 움직임은 스턴트 감독 조지 코틀, 파이트 코디네이터 잭슨 스피델, 안무가 매들린 홀랜더가 협업해 ‘거꾸로 싸우기’를 적용한 결과물이다.1) 이러한 배우들의 모습은 시간의 순행 흐름대로 찍은 장면을 역재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짝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만들 때 그린 스크린을 최소화하고, 사실성을 극도로 강조하여 카메라로 직접 찍어낼 수 있는 것들만 담으려는 놀란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사실 시간의 역전 현상을 화면에 담기 가장 명료하고 손쉬운 방식은 바로 '되감기(rewind)'이다. 너무나도 자명하다. 되감으면 말 그대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역재생되지 않는가. 물론 <테넷>에서 놀란은 거대한 폭발 상황이나 자동차가 전복되고 되돌아가는 장면과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선 역재생이나 역방향 촬영(아이맥스 카메라를 개조하여)을 통해 인버전을 담아냈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놀란은 시간의 역전이라는 조건조차도 가공이나 기술의 도움을 최소화하여 고집스럽게 극복해낸다. 그는 자신이 매 작품마다 한계에 도전한다며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2) 그래서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적 자가 복제와 변주, 인물의 도구화 등 숱하게 지적되는 놀란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분명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감독의 말대로 어딘가 새로운 것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1) [테넷⑤] <테넷: 메이킹 필름 북>을 통해 살펴본 제작 과정,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6093 (검색일자 : 2020년 09월 06일)


2) [테넷] 메이킹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53W2SkG-Rk&t=152s&ab_channel=WarnerbrosKorea (검색일자 : 2020년 09월 06일)


<닥터 스트레인지, 2016>는 120여 년 전 시작된 역재생 기법을 현대 상업 영화에 성공적으로 적용한 사례 중 하나이다. 영화 속 마법사가 폐허가 된 시가지를 시간을 되돌려 복원하는 장면은 물리적인 시간의 역행을 시각화하여 정서적, 지적 쾌감을 자극하는 좋은 사례이다. 하지만 <테넷>은 지금까지 살펴본 일반적인 역재생과 차별화를 꾀한다. 앞서 봤듯이 놀란은 기술적 역재생이 아닌 직접 촬영을 통한 시간 역행의 재현을 목표로 삼는다. 더 나아가 시간의 순행과 역행을 동일한 시공간의 무대에서 공유하려고 한다. 그런 놀란의 야망은 <테넷>의 순행의 인물과 인버전된 미래의 인물이 뒤엉켜 싸우는 장면, 후반부 테넷의 부대원들이 '시간 협공'을 펼치는 시퀀스 등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송경원 평론가는 놀란의 영화가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만큼 사실적이지만 현실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것들이 물리적으로 재현되는 시공간"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고 말했다.3) <테넷> 역시 시간 역행을 최대한 사실적인 기법을 동원하여 스크린 상에서 물리적으로 재현하려고 애쓴 작품이다. <테넷>에서 서로 다른 시간 흐름의 공존이 펼쳐진 세상은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간을 되돌리는 세계와, 숱한 영화들에서 사건의 경과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역재생을 하여 시각적 자극을 유도하는 설정과 성격이 다르다. 놀란은 시간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필름 위에, 화면 위에 구체화시키려고 한다.


https://youtu.be/n7YrfutBMtU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간을 되돌리는 신.


https://youtu.be/u0hCSxqnjT0

<테넷>의 메이킹 비하인드 영상. 1분 38초부터 1분 48초까지의 구간을 보면 배우들이 액션을 거꾸로 소화하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3) [크리스토퍼 놀란③] 놀란의 압도하는 형식이 의도하는 것,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6099 (검색일자 : 2020년 09월 06일)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되감기를 도입하여 영화에 인류의 지적 욕망을 넌지시 드러낸 이후 영화계에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은 각양각색으로 전개되어 왔다. 많은 영화학자, 비평가, 감독들에 의해 논의되며 진행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플롯의 시간 순서를 적절히 뒤바꾼 <미행, 1998>이라는 장편 영화로 본격적인 시간 탐구에 시동을 걸게 됐다. 놀란은 <메멘토, 2000>에서 <미행>의 방식을 심화하여 플롯을 역순행과 순행이 얽힌 구조로 시간의 흐름을 조작했다. 이후 여러 영화들을 거치면서 시간 흐름에 조작을 가하는 특유의 플롯은 놀란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 됐다. 놀란은 <인셉션, 2010>과 <인터스텔라, 2014>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에 슬며시 다른 작업을 얹어서 규모를 키우려 했다. 그는 플롯의 트릭에만 갇혀 있던 시간을 스크린 상에 옮겨서 관객이 시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인셉션> 속 세계관의 시간은 현실과 꿈에서 다르게 흘러간다. 이를 교차 편집과 슬로 모션 등의 영화 기법으로 담아냈으며, <인터스텔라>는 우주로 무대를 넓혀 과학 이론의 도움을 받아 시간 흐름의 상대성과 차원의 확장을 과감하게 시각화하여 찬사를 받았다. <덩케르크, 2017>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시공간대를 꾸준히 교차하여 보여주다가 그 세 개의 지점이 하나로 합쳐지는 영화였다. 놀란의 영화에서 '시간'은 플롯의 트릭에 갇혀 있던 초창기를 지나 스크린 위에서 양태를 바꿔가며 시각적으로 구체화되면서 마침내 <테넷>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경험, 감각적으로 도저히 인식하기 어려운 시간 순행과 시간 역행의 공존이 스크린에 구현된다.





시간을 향한 놀란의 야망


영화에서 시간은 스토리, 내러티브의 흐름에 수반되는 도구적 속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시간은 그 자체로 영화의 미학 요소로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시간을 영화의 독립된 미학적 형식으로 풀어내려는 감독들이 등장했고, 크리스토퍼 놀란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인물이나 스토리가 그저 시간 형식의 변형을 보조해 주는 도구일 뿐이다. 놀란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작업물을 발전시켜 나가며 계속 실험을 반복한다. 놀란의 야망은 어쩌면 뤼미에르 형제와 조지 알버트 스미스의 작은 욕망을 끝없이 확장한 것이지 않을까. 그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물리량을 자유자재로 지배하여 시간의 지위를 인류의 지성 아래 편입시키려고 한다. 놀란은 스크린 위에 시간을 여러 형태로 구체화하여 그 미학적 성질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선구자일지도 모른다. 그는 플롯 구조 형성의 충실한 조력자였던 시간의 지위를 스크린 위의 미학적 주체로 격상시켰고, 시간의 속성과 외양에 물리적인 변화를 가했으며, 마침내 <테넷>에선 새로운 형식의 시간 구조를 제시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필름에 각인되고, 스크린에 표현되는 놀란의 시간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간이 개발한 기술로 무장한 현대 영화 기법, 그린 스크린과 세트장을 지양하며 비행기를 실제로 부수면서 실제 장소를 섭외하여 촬영하는 고집, 거대한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적용된 대규모 영화 제작 환경 등으로 말이다. 놀란은 인류의 지성을 뛰어넘는 시간의 원초적 메커니즘을 인간의 방식으로 길들여 대중의 지적 유희를 위해, 더 나은 창작에 수반되는 자기 발전을 위해 영화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뤼미에르 형제로부터 시작된 작은 실험은 놀란의 세계에서 거대한 형식을 갖춰나가고 있다. 영화는 여전히 시간을 놓아줄 수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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