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음력 새해에는 이 글을 발행할 수 있어서...
느슨하게 살기로 했다. 그게 다짐씩이나 필요한 일이냐고 하면 나에겐 그렇다.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쪼아왔다. 혹시라도 있을 나쁜 서프라이즈를 피하기 위해 나 자신을 채찍질했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시나리오에도 준비된 상태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살면서 크게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 생존 방식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스스로를 좀 놓아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건 지쳤기 때문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일에.
꽉 찬 7년을 살아오며 파리와 나의 관계는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그날그날의 행복이 충전되었던 시절도 있었고, 학교에서 서로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영감을 쌓던 시절도 있었다. 네 군데의 서로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며 다양한 층위의 경험이 쌓였고 나의 세계는 사방으로 확장되어 갔다. 파리는 꽤 오래 내 영감의 원천이자 내가 많은 꿈을 꿀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이상하게 이 도시에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인턴을 구할 때마다 느꼈던 성취감은 다음 기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더 이상 허상처럼 느껴지지 않고 손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더욱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숨을 고르고 조금 더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멱살을 잡고 내가 원하는 대로 휘두르면서 끌고 다니는 건,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지금의 내가 아는 건, 파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반짝이던 시절은 지나갔으며 어느덧 익숙해진 생활공간으로서의 파리만이 내 곁에 남았단 사실이다. 나는 더 이상 새롭고 핫한 곳을 찾아다니지 않으며 집과 일, 그리고 헬스장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삶을 산다. 여행을 갔다가 돌아올 곳이 파리라는 사실은 늘 감사하게 여기지만, 그 이상은… 글쎄. 이제 잘 모르겠다. 예전만큼 이 도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한국 밖에도 내가 집이라고 여기는 나라가 있다는 건 참 복에 겨운 일이고, 프랑스에서도 언제든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를 받을 때가 많아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이중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건 아쉬울 것 같다.
별 거 아닌 이 글을 하도 오래 붙잡고 있었더니, 글을 쓰는 와중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내 인생은 완전한 카오스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상태. 오늘 내가 믿고 따랐던 전 매니저와 통화를 했다. 그녀가 해준 말이 있다. Go with the flow and please be kind to yourself. 어떤 방향이 될진 모르겠지만 흐름에 몸을 맡기고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괴롭히지 말기. 그리고 그게 내 운명이었나 보다- 하면서 받아들이기. 힘을 빼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