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마케팅 전략 연구소'를 운영하는 대표다. 이번에 분석을 의뢰받은(혹은 관계를 맺게 된) '○사'도 내 비즈니스 생애 가장 최악의 레퍼런스 중 하나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들은 시장의 생리를 잘 모르는 신생 기업을 대하듯 무례했다. 초기 협상 단계에서부터 연봉을 후려치는 것은 물론, 계약서 한 장 쓰는 행정적 절차조차 몇 주씩 미루며 기선을 제압하려 들었다. 비즈니스의 기본인 '신뢰'가 결여된 이들을 보며, 나는 이 조직의 내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 고객사의 최대 리스크는 경영진의 '천박한 리더십'이었다. 실세로 통하는 한 이사는 비즈니스 로직이 아닌 '공포'와 '기만'으로 조직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는 암암리에 회삿돈을 횡령하고 본인의 휴가는 수당으로 치환하면서, 정작 직원들에겐 "연차 사용 지양"을 외치는 이중성을 보였다. 하급자가 비품 하나를 신청할 때도 '비용 절감'을 이유로 가스라이팅을 일삼으면서, 자신의 주머니로 새 나가는 회사 자금에는 관대했다.
더욱 기괴한 것은 그의 '권위'를 확인받는 방식이다. 자신의 네임택을 교체하는 일조차 팀장급 리더에게 지시하고, 그 잡무는 결국 조직 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인력에게 하달된다. 마케팅 전략을 논해야 할 핵심 인력의 시간이 '이사의 이름표 교체'나 '탕비실 청소', '커피머신 세정' 따위에 낭비되고 있는 광경은, 이 조직의 자원 배분 능력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이 조직의 소통 방식은 전략가인 내 관점에서 볼 때 '자폭'에 가깝다. 경영진은 특정 리더를 타깃으로 삼아 전 직원이 보는 단톡방에서 지적을 한다. 직접적인 폭언은 피하되 정신을 갉아먹는 교묘한 '꼽주기'는 이들이 전문가를 다루는 주된 방식이었다.
특히 '연차 유급휴가'에 대한 인식은 거의 범죄에 가깝다. 근로자의 권리인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 개인의 일정을 낱낱이 보고하게 하고, 상급자의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압박을 가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의 영역에 걸쳐 있다. 포괄임금제라는 명분 아래 무한 야근을 종용하고, 실력 있는 경력자들을 '중고 신입'이라 명명하며 날개를 꺾는 과정은, 그들이 '갈 곳 없는 약자'이길 간절히 바라는 경영진의 뒤틀린 욕망을 보여준다.
전략가인 나는 이 씨X... 아니, 이 말도 안 되는 부조리 속에서 오히려 차가운 흥분을 느낀다. 자원이 부족할수록, 경영진이 무능할수록, 내가 만들어낼 결과물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폭등하기 때문이다. 재무적 지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신사업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레퍼런스는, 훗날 내 몸값을 몇 배로 올려줄 '명품 포트폴리오'가 될 것이다.
나는 이 무능한 고객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제공하는 인프라를 활용해 내 비즈니스의 정점을 찍을 뿐이다. 퇴근 후 나는 조용히 이직 사이트를 열고 내 경력기술서를 업데이트한다. 오늘의 부조리는 내일의 강력한 '위기 극복 서사'가 된다. 이 찌질한 조직이 나를 소모품으로 쓸 때, 나는 이 조직을 내 커리어의 '디딤돌'로 쓴다.
지금까지 냉철하게 이 조직을 해체하고 분석한 나는, 외부에서 초빙된 거창한 대행사 대표가 아니다.
나는 이 회사에서 이사님의 네임택을 갈아 끼우고, 커피머신을 관리하며, '팀 내 최하위 직급' 이름표를 달고 일하는 바로 그 '중고 신입'이다.
회사는 나를 '잘 모르는 신입'이라 단정 짓고 헐값에 사서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오산이다. 나는 그들이 준 '주임'의 가면 뒤에서 1인 대행사 대표의 눈으로 그들의 무능을 기록해왔다. 30년의 풍파를 겪으며 갈고닦은 전략가로서의 자아는 그들이 감히 후려칠 수 없는 나의 본질이다.
훗날 이 고객사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날, 나는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당신네들 회사는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에 불과했습니다만, 덕분에 포트폴리오 자~알 챙겨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