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나푸르나 트레킹 두 번째 이야기

삼겹살 파티

by 이부작

[타멜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다]

호텔로 돌아와서 늦은 점심 겸 1년만의 재 만남을 기리는 파티를 하러 타멜 거리로 나섰다. 타멜 거리로 나서며 형이 물어보았다.

"네팔리 음식, 아니면 한국 음식으로 먹을래요?"

아무 음식이나 상관없다고 말하자 앞으로 지겹게 네팔 음식을 먹어야 하니 ‘네팔짱’ 이라는 한국 음식점으로 가자고 했다.

“네, 저는 뭐든지 좋아요”

타멜에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이 있었고 그 길과 공간을 세계각지의 외국인들과 네팔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타멜의 한쪽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네팔짱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다른 한국 음식점들과 마찬가지로 네팔리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골랐다.

"oo씨, 배고프죠. 먹고 싶은 거 골라요, 내가 살게요!"

"아, 아니에요 형, 오늘 형이 너무나 고생했는데 당연히 제가 사야죠. 꺼멀, are you hungry?” 꺼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그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어때요? 꺼멀은 힌두교라서 소고기는 안 먹어도 돼지고기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

소주 이야기를 듣자 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오랜만에 마시게 되는 소주로 형의 한국에 대한 향수를 어느 정도 달래줄 것 같았다. 주문을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500미리 플라스틱 소주를 가방에서 꺼내 삼겹살이 익혀지기 전에 시원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네팔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먹게 될 줄이야……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신지 2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마시면 취할 테니 자제를 해야지.' 조금 뒤에 삼겹살과 불 판, 그리고 각종 채소들이 한국과 거의 똑같이 풍성하게 나왔다. 우리는 룰루랄라 불 판에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가워진 소주를 라메쉬 형과 꺼멀의 잔에 따랐다.

"형, 다같이 건배 하시죠? 야, 감회가 정말 새롭네요…… 형, 1년이 훌쩍 지나갔네요”

”야, 시간 빠르다, 정말”

“형, 술 좋아하는 내가 네팔 트레킹을 하려고 한국에서 2달 동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어요. 형 만나면 그 때 마시려고 꾹 참았죠"

"오 진짜요? 대단하네요, 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R트레킹을 대비해 체력도 축적하고 내 인내력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성공할 수 있었죠"

옆에 있던 꺼멀이 황소처럼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당연히 꺼멀은 형과 내가 한국 말로 하는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형이 한국말도 하고 네팔 말도 하면서 계속해서 꺼멀에게 우리의 대화를 통역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형이 헷갈렸는지 꺼멀에게는 한국말을 통역해주고 나에겐 네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 상황이 웃겨서 한바탕 웃었다. 한국인과 네팔인의 한국어 대화 그리고 그 대화에 낀 또 다른 네팔인에게 네팔어로 통역해 주는 상황이 식당의 다른 네팔인들 에게도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서빙을 하던 네팔 웨이터들과 한국인 여행자 두 명이 가끔씩 우리 쪽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특히 한국인 여행자는 삼겹살이 네팔에선 매우 비싼 소주를 먹는 우리가 부러운 듯 계속 시선을 줬다. 한국 분들에게 소주를 한 잔 드리고 싶었지만 소주가 충분하지 않아서 애써 시선을 외면했다.

우리는 히말라야 롯지에서 만났던 이야기며 ABC에서 스님들과 노래를 불렀던 이야기, 윤*스님이 발목을 삐었던 이야기 등을 쉬지 않고 말했다. 작년의 행복했던 추억에, 우리들의 주위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 보니 금새 소주 한 병을 다 비워버렸다. 오랜만에 마신 술에 나뿐만 아니라 라메쉬 형과 꺼멀도 취기가 올라왔다. 짧은 파티를 마치고 계산을 하고 호텔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라메쉬형이 자기가 식사비용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거의 필사적으로 형을 막아서며 계산을 했다. 오늘 공항 마중부터 해서 허가증에 버스표까지 너무나 신세를 많이 졌는데 당연히 내가 계산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파티를 끝내고 우린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곧 있으면 어두워져서 라메쉬 형과 꺼멀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형과 꺼멀에게 전달하였다. 꺼멀에게는 반바지와 꺼멀의 세 아이들이 좋아할 쵸코파이와 사탕 등 한국 과자들과 봉지라면을 나눠주고 라메쉬 형에게는 사전에 이메일로 부탁 받은 여려가지 물건들을 전달해 주었다. 실제 꺼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두말할 것 없이 돈일 것이다. 10여일 뒤면 나의 포터로서 역할을 한 후 넉넉한 수고비를 받을 것이다. 라메쉬 형에게 선물한 물품은 마스크, 양말, 여자친구를 위한 화장품, 진통용 스프레이 파스, 반바지, 회사 홍보용 우산, 스포츠 타올 등으로 성심 성의껏 준비한 것이었다.

“형, 스프레이 파스는 2개를 공항에 가져왔는데요 검색 대에서 한 개만 짐으로 붙일 수 있다고 해서 한 개만 가져왔어요”

“아니야, 진짜 너무 고마워요” 형은 나의 작은 선물에 너무나 고마워 하였다.

오후 6시쯤 되어 이제 진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형,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내일부터 트레킹 잘 다녀올게요, 트레킹 하다가 힘들면 2/3지점인 좀슴에서 비행기타고 포카라로 돌아올게요.."

"ㅇㅇ씨, 내일부터 너무 무리 말고요, 힘들면 좀슴에서 바로 비행기 타세요. 그리고 나도 내일 새벽에 버스 정류장에 나올게요. 여자친구랑 함께요"

"아니에요, 새벽에 일찍 나오려면 너무 힘드실 텐데, 그렇게까지 나오실 필요 없는데요, 그리고 형, 앞으론 말 놓으세요. 저보다 나이도 많고 형이시잖아요."

"그래 앞으로 말 놓을게…… 그런데 배낭의 짐을 보니깐 방풍(wind proof) 자켓이 필요할 것 같아. 그곳엔 돌풍이 많이 불거든.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노스페이스 자켓을 빌려줄게. 그리고 여자친구도 ㅇㅇ씨 얼굴을 보고 싶어하니깐 같이 나올 거야. 내일 새벽 6시에 보자고"

“네, 그럼 그렇게 해요, 조심해서 가세요, 내일 뵐게요!”

형은 자리를 뜨기 전에 꺼멀에게 버스정류장 위치를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그리고 늦지 않고 나를 깨우러 오라고 당부했다. 꺼멀은 걱정 하지 마라는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참 고마운 말을 남기고 라메쉬 형과 꺼멀은 각자의 집으로 발을 돌렸다. 방에는 배낭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고 혼자가 된 나는 이내 고독한 생활여행자로 되돌아 왔다. 창문 밖에는 태양이 오늘 할 일을 마치고 히말라야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지막 석양을 비치고 있었고 꼬마 아이들은 밖 공터에서 재잘재잘 소리치며 네팔 전통놀이를 하고 있었다. 순간 내가 한국인이 아닌 지금은 온전히 네팔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았다. 노을을 구경하기 위해 3층 방문을 나와서 베란다로 갔다. 이제 주위는 온통 검정색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불빛은 희미하게나마 주위를 밝히고 있었지만 이것도 조금만 있으면 완벽한 어둠으로 변할 것이다. 네팔은 전기 사정이 안 좋기 때문에 우리나라 80년대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정전이 되는 게 일상사였다. 오후 7시도 안 되는 시간에 밖은 어둑해지고 주위엔 아무도 없어서 혼자 타멜의 술집에 가서 외로움을 달래볼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내일부터 트레킹 강행군이 시작되니 컨디션을 생각해서 그냥 숙소에서 쉬었다. 아직은 전기가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 어제 오늘 사용한 여행경비 내역과 일기를 적고 있는데 역시나 다를까 갑자기 불이 나갔다. 양초를 빌리러 1층에 가기 귀찮았다. 등산용 후레쉬가 있지만 취기가 올라 그냥 침대에 누웠다.

'역시 네팔이군......어김없이 밤엔 불이 나가 구나.. 미리 짐을 싸야 하는데 졸음이 밀려오네.. 그냥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짐을 싸야지. 내가 지금 카트만두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어머니께서는 잘 계실까? 회사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겠지! 내일부터 참 재미있겠다. 앞으로 어떤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을까......잠이 오는군' 네팔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온 몸이 침대 속으로 꺼져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재미 잇는 과일 이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