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역지사지 03화

에르메스, 하이엔드를 완성한 장인정신

버킨백 등 전설이 된 명품 이야기

by 서필

#골목 끝 작은 수선집에서 시작된 이야기


오래전, 취재차 들렀던 골목 끝 작은 수선집.

낡은 간판과 바랜 커튼 너머로 보인 건 세월을 담은 재봉틀과 바느질 도구들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60대 여사장의 손끝은 놀라웠다.

옷 수선뿐 아니라 리폼까지 척척 해내는데, 동네에서는 이미 ‘금손 장인’으로 소문난 분이었다.

알고 보니, 이분은 한때 세계적인 하이엔드 브랜드의 아뜰리에(Atelier)에서 일했던 분이었다.

소수의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완성하는 현장.

그곳에서 여사장은 많은 것을 체득했다고 한다.

장인들의 세심한 손길, 디테일을 완성하는 감각,

그리고 한 제품을 작품으로 끌어올리는 철학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손끝으로 스며들어 갔다.


# 명품은 바느질부터 달라요


여사장은 조용히 실을 꿰며 말했습니다.


“명품은요, 바느질 한 땀, 한 땀이 완벽해야 해요.

땀수가 조금만 틀어져도 선이 흐트러지고 멋이 사라져요.”


그녀가 일했던 공방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해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았고, “히스테리급”이라 불릴 만큼 혹독한 트레이닝과

가차 없는 피드백을 견뎌야 했죠.


그리고 여사장은 담담히 말했다.


“그때 배운 결벽증 같은 직업정신이요, 평생 저를 대접받게 만들었어요.”


그 순간 깨달았다.

어쩌면 이 집착이야말로, 세월이 흘러도 명품을 명품으로 남게 하는 비밀일지도 모른다고.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자연스레 손끝으로 스며드는 브랜드만의 보이지 않는 DNA.

우리는 그것을 ‘장인정신’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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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메스,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장인정신은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1837년, 파리의 작은 마구 공방에서 시작한 에르메스.

창립자 티에리 에르메스는 말안장과 마구에 탁월한 내구성과 은은한 우아함을 담아내며,

단숨에 유럽 상류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세상은 곧 거대한 변화를 맞았다.

19세기 말, 자동차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마차와 마구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수많은 공방이 문을 닫아야 했다.

어제까지의 전통은 단숨에 낡은 것으로 치부됐고,

과거의 영광은 오히려 짐이 되어버린 시대였다.

그 순간, 에르메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말안장을 만들며 쌓아온 최고의 가죽 기술을 기반으로,

에르메스는 여행가방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귀족들이 말을 타지 않더라도, 여행은 여전히 품격을 드러내는 무대였으니까.


# 혁신을 품되, 본질은 잃지 않는다


20세기 초, 에르메스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브랜드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퍼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생소했던 이 장치를 에르메스는 가장 먼저 여성용 가방에 적용하며,

‘현대적 우아함’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도 에르메스의 방식은 남달랐다.

단순히 지퍼를 붙이는 게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의 재단과 봉제를 반복하며 에르메스만의 완벽한 기준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혁신을 품되,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로부터 이어진

“완벽을 향한 장인정신의 DNA”는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 아이콘의 탄생, 그리고 전설


그 완벽주의는 결국 전설적인 제품들을 탄생시켰다.

이중 버킨백과 켈리백은 단순한 가죽 가방이 아니었다.

한 명의 장인이 수십 시간, 수백 번의 바늘질을 거쳐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았다.

1985년 제작된 첫 번째 버킨백은 2025년 소더비 경매에서 무려 130억 원에 낙찰됐다.

에르메스는 시간과 집착이 쌓아올린 역사였다는 걸 증명한 순간이었다.


# 한 땀의 철학, 세대를 잇는 명품


하이엔드 브랜드의 아뜰리에는 오늘날까지도 ‘속도’보다 ‘완벽’을 고수했다.

최소한의 장식으로 고급스러움을 완성하는 절제된 디자인,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클래식한 비율,

최고급 소재와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완벽한 마감.

아이코닉한 제품들의 매끄러운 라인과 단순한 구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답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단순한 패션을 넘어,

특별한 계층과 그들만의 세계를 상징하는 패션 스토리를 완성해 왔다.

하이엔드 브랜드,

그것은 시간을 이기는 디자인이며,

수많은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명품의 진정한 가치는 로고가 아니라,

명품을 명품으로 남게 하는 힘에 있다.

우리는 그걸, ‘장인정신’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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