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노운즈 Oct 10. 2024

존중엔 연습이 필요해!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시작하려던 첫째가 전화를 받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힘들게 운동하고 왔으니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고, 특별히 중요한 통화도 아닌 것 같은데 따뜻하게 준비해 놓은 밥상을 기다리게 하는 아이가 못마땅해 마음이 부글거리더라고요. 늘 자기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것 같고, 그래서 아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까지-비논리적이며 편향적인 생각의 줄기라는 거... 저도 압니다만... 여하튼 그 순간은 그랬어요- 궁리가 번지기 시작했어요.


방에서 나온 아이는 후배가 버스에서 정류장을 놓쳐 길을 잃어버려서 연락을 했다며 통화 내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니 선배라고 길 안내까지 해줘야 하나?! 자기 부모는 두고 왜 피곤한 '내 아들'한테 연락을 해?!' 갑자기 싸늘해진 마음에 아들에게 퉁명스럽게 되물었습니다. "아니 후배 길까지 네가 영상통화로 알려줘야 해?" 큰아들은 "내가 잘 아는 길이라 물어보는 거지~"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응답했습니다. 아차! 그 순간 누가 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친 느낌이 들었어요. '어머! 나 지금 뭐라 그랬니!'



시리 허스트베트는 '어머니의 기원'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머니가 말했다.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아이를 '존중'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단다." (중략) 사랑은 자동으로 생겨나는 마음 같았다. 하지만 존중은 자동으로 생겨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이가 아니고, 바로 그렇기에 아이가 자신과 분리된 또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머니와의 산책, <어머니의 기원> p.79



아이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통화를 했을 거고, 그 후배도 당장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이 선배뿐이니 급한 마음에 연락을 했겠지요. 그런데 저는 왜 그렇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봤을까요. 자녀를 해결해야 할 문제 덩어리로 바라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미숙한 나의 사랑을 알아차리는 부끄러운 순간이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믿고 의지하는 선배가 된 큰아들의 좋은 부분들은 떠올리지도 못한 채, 나의 상황-따뜻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큰 아이에게 먹이고 싶어 알맞게 준비한-의 잣대로만 아이를 바라보는 나를 알아차리고는 민망한 마음이 들어 아이에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배가 너 좋아하는 거 아냐? 왜 너한테 연락해서 길을 물어봐?"라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고, 사태를 무마하려고 연이어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해대고 돌아서면서 다시 한번 시리의 글을 떠올렸습니다.


'존중은 자동으로 생겨나지 않아!' 


사랑하니까 잘 되길 바라고, 존중하니까 거리를 두고 바라봅니다. 큰 아이의 키가 훌쩍 자라 이젠 적당이 떨어져야 아이를 한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세계가 보다 확장되면 아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 지금보다 더 물러서야 하겠지요. 심리학자들이 말하던 아이들의 '자립'은 어떠면 부모로부터 '멀어짐'이 있어야 얻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전 08화 반업(UP)맘으로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