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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그늘 Apr 09. 2023

1. 토스트를 팔지 않는 토스트 가게.


  어느 여름, 매일 향하던 헬스장 골목에 토스트 가게 하나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꽤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는 자리였다. 어떤 가게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무슨 가게였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엔 눈에 확 들어왔다. 비싼 동네, 혹은 번화가였다면 그냥 흘리고 봤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는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통은 내가 가게들을 인식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던 곳들이 대부분. 그러니 새로 뭔가 생긴다고 하면 괜히 기대하곤 한다. 혹시나 조금 재밌는 가게들이 생길까 봐. 그렇다면 토스트 가게는 재밌는 가게였을까. 

  딱히.

  그냥 새로운 게 생겼다길래. 흥미롭게 봤을 뿐. 별 특징은 없는 가게였다. 토스트 가게 다운 간판과 인테리어. 다만, 조금 어색했던 건 그 자리가 토스트 가게를 들어설 자리는 아니라는 것뿐. 토스트 가게 왼쪽엔 채소와 과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거기도 채소를 팔긴 하는데 그저 주인아저씨가 가게 앞 의자에 앉아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래서 명확하진 않지만, 그냥 허름한 채소 가게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그사이에 파스텔톤 간판을 지닌 토스트 가게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매일 헬스장 가던 길에 스쳐 가는 가게 중 하나가 되었다. 가끔 버터 냄새가 풍기면 돌아보는 정도. 그러다 한번은 돌아보다 못해 문득 궁금해졌다. 맛있나? 밖에서 가게를 들여다보니 메뉴판이 살짝 보였다. 기본 토스트 2,500원, 햄 치즈 토스트 3,000원 등등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가게에 들어가 3,000원짜리 햄 치즈 토스트 하나를 주문했다. 가게 안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있었지만, 손님은 없었다. 물론, 나도 사서 들고 가서 먹을 생각이었지만, 한편으로 쓸데없는 걱정은 되었다. 이거 장사는 되는 건가.

  사장님이 철판에 버터를 둘렀다. 오다가다 맡던 버터 향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이내 오래 걸리지 않아 나의 햄 치즈 토스트가 완성되었다. 김이 모락모락한 채로 토스트는 종이로 감싸졌다. 마지막으로 봉투에 넣어지고 나서야 토스트는 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언제나 이 순간이 가장 설렌다. 맛있는 걸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무슨 맛일지 상상하며 말이다. 집으로 돌아와 열기로 약간 젖은 토스트를 꺼내 들었다. 외관상 특별해 보일 건 없었다. 적당히 삐져나온 양배추와 햄, 그리고 치즈. 그렇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평범했다.

  말 그대로였다. 버터 향에 너무 큰 기대를 했나 보다. 집에서 해 먹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토스트 자체가 얼마나 다채롭게 맛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버터 향에 속아 구매하지 않을 정도라는 건 확실했다. 이제 그 토스트 가게는 다시 지나가는 가게 중 하나로 전락하고야 만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괜한 걱정을 했다. 이거 장사는 되는 건가. 

  그러다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매일 가게 앞 의자에 앉아있던 아저씨가 고구마 굽는 기계를 꺼내셨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기억에 남았다. 매년 겨울이면 고구마를 팔았으니까. 그래서 사실 처음엔 난 고구마 가게인 줄 알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채소 가게에서 고구마도 파는 거였다. 애초에 정체성이 중요한 가게는 아니었다. 상자 날개 부분을 뜯어 적은 가격표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 걸 보고 배운 걸까. 그 옆 토스트 가게에도 변화가 생겼다. 토스트 말고 새로운 메뉴가 추가됐다. 바로 꿀이었다. 응? 꿀? 토스트에 꿀을 발라주는 게 아니었다. 그냥 꿀통을 앞에 진열한 채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이었다. 

  한 주가 지나자, 마스크와 마스크 걸이가 생겼다. 꿀통 위에는 구운 김이 올려져 있었다. 그래도 아직 토스트는 판매 중이었다. 버터 향이 났다. 물건은 계속 늘어났다. 포장만 하려는 건지. 이제 매장 안에 손님이 앉을 자리에 팔 물건들이 점점 채워지는 게 보였다. 홍삼 같은 먹을 거부터 셀카봉 같은 잡화들이 늘어 갔다. 그래도 나름 양옆 가게들과의 차별되게 파는 물건이 겹치진 않았다. 그렇게 헬스장을 오가는 하루, 일주일, 한 달. 시간이 지날수록 토스트 가게는 제모습을 잃어갔다. 그러다 드디어 토스트를 팔지 않게 되었다. 사실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겉모습을 보고 토스트를 주문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끔 풍기던 버터 향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간판은 토스트 가게였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이 가게는 뭐지. 

  화룡점정은 옆 아저씨를 따라 고구마를 팔기 시작한 거였다. 파는 걸 겹쳐서 팔아도 되는 건가. 스쳐 지나가는 행인1인 나의 머릿속은 의아했지만, 정체성이 모호한 두 가게는 그해 겨울 내내 같이 고구마를 팔았다. 그 정도면 서로 합의를 본 게 분명했다. 확실히 겨울에 고구마가 장사는 잘되는 것 같았다. 지나갈 때마다 한두 명씩은 꼭 사고 있었으니 말이다. 토스트 가게 사장님도 그 모습을 봤으니 아마 고구마를 팔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토스트 가게를 보고 있자면 사장님의 고민이 흔적들이 역력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괜스레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토스트로 시작했을까. 정말 장사가 안됐던 걸까. 그래서 다른 물건들도 하나둘씩 팔기 시작한 걸까. 팔 물건들은 어떻게 선정할 걸까. 지인을 통해서 물건을 얻어오진 않았을까. 고구마는 옆 가게 아저씨께 양해를 구했을까. 아니면 조언을 얻어서 팔기 시작한 건 아닐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가게 중 하나일 뿐인데 여전히 내걸고 있는 토스트 가게의 간판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토스트를 팔지 않는 토스트 가게.

  이 장난 같은 문장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 그 가게는 인테리어 가게가 자리 잡았다. 동네에 한두 개쯤은 있는 평범한 인테리어 가게였다. 하지만 원래 가게 사장님이 가게를 판 건지, 아니면 사장님이 기술을 익힌 건지, 그것도 아니면 지인에 넘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간판은 토스트 가게였으니까. 이쯤 되면 왜 간판을 떼지 않는지가 참 궁금해졌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오가며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이 잘되는지 항상 외출 중으로 되어 있는 가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토스트 가게는 짧은 인생을 닮았다. 나름 준비해서 시작했지만, 많은 고민 끝에 계속 바뀌고, 그 안에서 또 노력하고, 결국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이를 반복한다. 누군지도 모를 사장님이 되어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고민들을 했을까. 지금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 중인 건 기술을 배운 그일까. 아니면 누군가에 넘긴 걸까. 그 어느 것이든 어딘가 있을 그를 괜히 응원해본다. 여전히 달려 있는 그 간판의 그 이름처럼 항상 웃기를. 철판 위에 버터를 두르던 사장님의 그 모습과 버터 향을 떠올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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