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등학교. 아직 살아 있습니까?
특성화고의 모습 1
대한민국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고등학교가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와 같은 영재고등학교. 상위권 학생들이 선호하는 외국어고등학교와 같은 특수 목적 고등학교. 인문계 고등학교 중 교육과정 운영 편성이 보다 자유로운 자율형 사립고와 자율형 공립고. 그리고 마이스터고등학교와 특성화고등학교도 존재한다.
도시가 개발되면 자연스럽게 학교가 생긴다. 사람들은 누구나 신도시에 가면 새로운 집에 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학교에 가려고 한다. 하지만 특성화고등학교는 생기지 않는다. 아무도 원하지 않으니까. '질 낮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란 인식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에서는 특성화고 출신자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 간다. 아마 얼마 가지 못해 대부분의 특성화고등학교는 분명 사라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성화고에서만 근무하는 전문교과 교사로써 직업교육과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기록하고자 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특성화고등학교) 1. 교육감은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 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자연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이하 '특성화고등학교'라 한다)를 지정 고시할 수 있다.
과거에는 실업계 고등학교, 전문계 고등학교라는 용어를 거쳐 특성화 고등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이 고등학교는 이론보다 체험 및 실습 위주의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하는 고등학교이다. 대한민국이 생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을 때에는 대학에 들어가기가 참 어려웠기 때문에, 농업고등학교나 상업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부산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고, 그 때는 인식이 현재의 그것에 비해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다. 현재 사회에 각계각층에 이런 실업계고등학교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다.
현재도 이런 특성화고등학교의 명맥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고졸취업 활성화를 목표로 마이스터고가 생긴 이후, 특성화고등학교와 마이스터고등학교의 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농고, 공고, 상고의 교육과정을 보면 마치 대학교 수업 교재를 축소한 수준으로 가르치므로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학업 수준은 높지만, 입학생들의 기초학력 미달 수준이 매우 높아 제대로 된 수업을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런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전국에는 아직도 많은 특성화고등학교가 남아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급변하는 산업 현장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국 약 139개 학교가 존재하고 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애니메이션고등학교, 반도체고등학교 등 다양한 모습의 특성화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취업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서울에 있는 특성화고 학생은 가까운 취업처가 없다. 경기도만 해도 취업처는 화성 이하로 내려가야지만 존재한다. 대기업은 마이스터고 학생들을 뽑아가거나, 초대졸 이하 군필자 중 우수한 자원을 채용한다. 사실 요즘엔 경기 불황으로 인해 얼마 없던 채용도 멈췄다. 자연스레 생존을 위해 서울 인근에 있는 학교들은 진학을 목표로 학교를 싹 갈아엎었다.
선린인터넷고가 바로 그 시작이었다. 현재는 대다수 4년제 학교에 존재하는 sw특기자전형과 특성화고 특별전형을 이용하여 4년제 대학에 우수한 진학 실적을 낸 것으로 포문을 여니, 한국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부속소프트웨어고등학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OO공업고등학교 또는 OO상업고등학교라는 이름도 이미지에 걸맞게 싹 갈아엎었다. OO과학기술고등학교 혹은 OO미래생활고등학교와 같은 정체불명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안내한다.
나는 특성화고에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학교가 지역사회와 학부모, 학생 들이 모두 원하는 장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 지에 대해서 자주 고민했다. 그 방법으로는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우수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해야 하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우수한 실적으로 연결되고, 우수한 실적이 나오면 우수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특성화고등학교를 찾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믿었다. 따라서 나에게 주어지는 학생들에게 때로는 친형처럼 친근하게, 때로는 삼촌처럼 신뢰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돌아오는 꼬리표는 냉혹했다. 매년 해가 가면 갈수록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는 신입생들의 모습을 보고 때론 좌절했다.
특성화고의 3년을 돌아보면 참 재미있다. 1학년때는 중학생 시절의 티를 벗지 못하고 마음대로 행동한다. 중학생 때는 아무렇게 행동해도 통제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특성화고에서는 1학년 때 분위기를 흐리고 교칙을 마음대로 어기며 통제가 불능인 학생들은 선도위원회에 바로 회부되고, 대부분 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된다. 2학년이 되니 그나마 성인이 되려는지, 학교에 잘 오지 않게 되는 학생들과 성실한 학생들로 나뉘게 된다. 3학년이 되면 1학년 때 부리던 가오는 대부분 사라진다. 따라서 특성화고의 3년은, 사실 1학년 담임교사가 매우 중요하다. 초기에 잘 솎아 내지 못하면 3년이 힘드니까.
만약 이 글을 읽는 학부모가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필자는 절대로 '특성화고 오지 말라' 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분명 아니다. 특성화고에서 방황하는 학생들은 본인이 뭘 하고 싶고 뭘 잘 하는지 모른 채로, 그저 '성적이 안 되서' 오다보니 본인이 원하는 학교가 아니라고 하면서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을 방황해서 특성화고에 왔다고 '인생이 망하는' 것도 사실 아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열심히 하면 길은 있는 법이다. 다만, 특성화고에 아이를 보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특성화고를 평가하고, 어떤 진로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고, 해당 학과의 수업이 학생의 흥미 및 적성, 성향과 맞는지를 꼭 확인해야 한다. 사실 중학교 3학년 담임 교사도 특성화고에서 근무해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필자처럼 특성화고에서만 근무하는 전문교과 교사도 아니기에 이해력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큰 도움이 아니더라도 이 글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특성화고가 단순히 명맥만 붙어 있는 학교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올바른 진로를 설계하고, 새로운 희망의 플랫폼이 되는 모습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