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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강D Oct 17. 2024

우실장과 웃기는 외야석

2막. 제주의 그라운드, 1루. ep8.

차례.     


프롤로그.

서울의 외야석

   원아웃

   투아웃

제주의 그라운드

   - 1

   - 2

   - 3

다시웃기는 외야석

에필로그.


연습은 보통 오후 시간에 서너 시간 정도 했다. 캐치볼을 하거나 배팅 볼을 치거나 펑고를 받는 식이었다. 기초훈련이랍시고 달리기도 했다. 짧은 구간을 왔다 갔다 하는 훈련이었다. 제법 야구단 흉내를 낸다 싶었는데 프로그램은 대부분 한철이 짰다고 했다. 선출이라더니 여기선 나름 리더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우 실장은 우선 외야 수비 훈련을 했다. 우 실장은 초보로 분류됐다. 초보자의 자리는 외야였다. 그것도 코너 외야수. 우 실장은 우익수, 옆에는 양승필이 있고, 그 옆에는 김만정이 있다. 저 녀석들이 이 팀에서 가장 야구를 못한다는 말이었다. 우 실장의 시선을 의식한 듯 양승필이 글러브를 팡팡 치면서 소리쳤다.

“형, 내가 다 받아줄게. 나만 믿어.”

바보 녀석. 우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멀리서 깡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왔다. 하얀 공을 쳐다보면서 위치를 가늠했다. 플라이 볼은 눈을 감고 잡을 정도다. 대충 위치를 가늠하고 글러브를 가져다 댔다. 툭. 하지만 공은 우 실장이 선 곳과 한참 먼 곳에 떨어졌다. 충격이었다.

“형, 공은 눈으로 좇는 게 아니야. 소리를 듣는 거야, 소리. 귀를 쫑긋 세우라고. 나를 봐봐.”

양승필이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잔소리를 했다.

그대로 자리에 서서 멍하니 생각했다. 아무래도 잘못됐다. 내 야구 실력이 정말 운동 한번 안 한 아재 수준이 됐다.

다시 한번 깡 하고 공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눈으로 끝까지 공을 좇았다. 공이 날아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공은 글러브를 맞고 픽 떨어졌다.

“아니, 형. 그게 아니라니까.”

양승필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우 실장은 당분간 수비 훈련은 혼자 몰래 하기로 했다.

이어지는 훈련은 배팅이다. 배팅도 사실 여기 있는 아마추어 무리들과 겨룰 수준이 아니다. 설마 배팅도 안 될까 싶었다.

양승필이 시범을 보인다면서 앞에 섰다. 하지만 양승필이 치는 공은 전부 땅볼이다. 빌빌거리면서 땅을 굴러간다. 타격 폼도 완전 엉망이었다. 공을 치기도 전에 달려 나가려는 포즈다. 지가 무슨 이치로라도 되는 줄 아나.

“험, 오늘은 잘 안되네.”

양승필이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 실장이 보기에 딱 그 정도의 실력이다. 몇 번 더 땅볼을 굴리던 양승필이 고개를 숙이고 내려갔다. 쌤통이다. 풀 죽은 양승필의 뒷모습을 보니 괜히 통쾌했다.

드디어 우 실장의 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배팅볼 투수를 노려봤다. 공이 날아왔다. 하나, 둘, 셋. 타이밍을 재다가 힘껏 방망이를 휘둘렀다.

부웅 소리와 함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배트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공은 뒤 편 그물망에 떨어졌다. 헛스윙이었다. 젠장, 배팅까지 안 되다니.

“형, 공을 잘 보고 휘둘러야지. 스윙이 너무 크잖아.”

어느새 기운을 차린 양승필이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감만 잡으면 된다. 스윙은 감이다. 우 실장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후, 깊게 호흡을 내쉬었다. 침착하게. 하나, 둘… 하지만 이번엔 공이 먼저 들어왔다.

“아니, 형. 그게 아니라니까.”

양승필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결국 우 실장은 공을 스치지도 못했다. 수비보다 더 엉망이어다. 분명 맞을 것 같은데 공은 방망이를 빗나갔다. 약이 올라서 더 크게 스윙을 했다. 하체에 힘을 집중해서 휘둘렀다. 과거의 감을 떠올리려 했다. 그럴수록 공은 더 멀어졌다. 결국 지쳐버렸다.

양승필과 고병규가 옆에서 위로를 건넸다. “처음엔 다 그래”라면서. 대답할 힘도 없었다. 무엇보다 우 실장 자신이 충격을 받았으니까.

아무래도 체력부터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을 던지는 어깨엔 근육통이 왔고 온몸엔 알이 배겼다. 너무 오랫동안 운동을 쉰 건지도 몰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운동과 담을 쌓았다. 헬스클럽을 끊어놓고 사우나만 하다 끝났다. 사우나에서 크게 한숨을 쉬며 내일부터는, 이라고 다짐했다. 다짐은 매일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지하철을 탈 때 걷는 게 운동의 전부였다. 그마저도 실장을 달면서 끊겼다. 회사에서 나온 승용차만 타게 됐다. 동시에 체형은 점점 외계인을 닮아갔다.

“스트레칭이 중요해요.”

한철이 스트레칭하는 법을 알려줬다.

“운동의 기본은 몸풀기예요. 가장 기본적인 건데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요.”

한철과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스트레칭부터 시작했다. 어깨 근육을 푸는 법을 알려주면서 한철이 말했다.

운동뿐만이 아니야. 우 실장은 생각했다. 기본은 대체로 지루하고 무시당하기 일쑤다. 한때 우 실장은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질주하다 보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운동을 하면서 팀원들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미선과 바람이 난 녀석을 찾기는 어려웠다. 미선은 팀의 모든 사람들과 격의 없이 지냈다. 누구에게나 밝게 웃고 친절했다.

“매니저잖아요.”

미선이 우 실장의 어깨를 툭 치더니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매니저라… 하긴 원래 저런 모습이었다. 처음 만났던 미선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사람이었다.

양승필도 용의자에서 제외했다. 양승필은 오히려 연습에 종종 자신의 아내를 데려와 함께 어울렸다. 그렇게 말이 많던 녀석이 아내하고만 있으면 의젓해졌다. 말수도 줄어들었다. 말 잘 드는 애완견 같았다.

미선과는 나이를 뛰어넘는 누나 동생 사이인 것 같았다. 일단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야구단의 러브라인은 오히려 고병규와 라봉 쪽이었다. 고병규는 틈만 나면 애가 타는 눈빛으로 라봉을 쳐다봤다. 라봉은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녔다.

“짝사랑한 지 오래됐지.”

양승필이 옆에 다가와 떠들기 시작했다.

“누나야, 누나. 라봉이. 저렇게 보여도 나이가 꽤 많거든. 한 다섯 살 넘게 차이 날걸? 그런데도 고병규 저 녀석, 그렇게 좋은가 봐. 그럴 바엔 고백이라도 좀 해보라고, 주변에서 밀어준다고 그러는데 워낙 숫기가 없어, 원…”

이뤄지지 못할 사랑을 꿈꾸는 녀석으로 보였다. 나이차도 그렇고, 성격도 전혀 달라 보였다. 포기하는 게 편할 텐데. 괜스레 고병규 녀석이 안쓰러워 보였다. 하긴, 하고 고개를 저었다. 지금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니지. 내 코가 석자다.

우 실장은 다시 마음을 바로 잡았다.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 실장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온몸에 알이 배겨 밤새 몸이 배배 꼬였다. 특히 어깨가 자신의 몸이 아닌 듯 따로 움직였다. 어깨를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났다.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켰다. 몸에서 두둑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마당 밖에서 들렸다. 못을 박는 소리 같았다. 그 소음 사이로 누군가 까르르 웃는 소리도 들렸다.

어깨를 주무르며 그 쪽으로 갔다. 마당 뒤편이었다. 웃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미선의 웃음소리 같았다. 정신이 번적 들었다. 밀회 현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뒤뜰에서 미선이 어떤 영감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번엔 영감탱이인가… 미선의 스펙트럼에 기가 찼다. 그런데 영감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웃고 있느라 눈은 풀렸지만 부리부리한 눈매에, 고집스럽게 솟은 콧대, 여기에 코밑에 난 커다란 점까지… 호박 집 할배였다!

할배는 미선을 보면서 좋아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우 실장이 보던 그 냉정한 영감이 아니었다. 인자한 얼굴이다.

미선도 마찬가지다.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바람 같은 건 아니겠지. 설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큼큼 헛기침 소리를 냈다.

“어머, 일어나셨어요? 손님.”

미선이 우 실장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여전히 눈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하여간 웃음이 헤프다니까. 옆에 있던 영감은 우 실장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여긴 저기 뒷집에 사는 한수 옹이세요. 평소에 이것저것 도와주시는데, 이번엔 집수리 도와주러 오셨어요. 참, 손님 온 날 드셨던 횟감도 한수 옹이 주신 거예요. 호호.”

우 실장과 한수 옹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우 실장이 한수 옹을 째려보자 그쪽도 질 수 없다는 듯 쏘아봤다.

“일단 이쯤에 출입문을 만드는 게 낫겠죠?”

미선의 말에 한수 옹은 다시 눈이 반달이 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벨도 없는 노인네였다.

“저기, 저도 도울 게요.”

우 실장은 충동적으로 말했다. 왠지 이 틈새에 끼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손님이신데…”

“아닙니다. 제가 이래 봬도 시골 출신입니다. 손으로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호탕하게 웃으며 팔을 붕붕 돌렸다. 근육이 아파서 찌릿했다.

“그래도 죄송한데…”

미선이 말끝을 흐리며 우 실장을 봤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슬쩍 한수 옹을 보니 이쪽을 매섭게 째려보고 있었다.

“그럼 손님, 한수 옹 좀 도와주실래요? 제가 점심 서비스할게요.”

미선이 눈을 찡긋하고 자리를 비웠다.

저 여자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완전 다른 여자 같았다. 마누라 미소 따위에 흔들리다니. 까마득한 옛날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한수 옹은 크게 헛기침을 하더니 못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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