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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그 가슴시리도록 아름다운

Ⅱ. 여름. 첫사랑, 그녀를 처음 만나다.

by 이서

그해 여름방학은 왠지 모르게 설레었다.

햇볕은 아침부터 뜨겁게 내리쬐었고, 공기마저 이미 묵직한 더위를 품고 있었다.


“야! 준비물 다 챙겼어?”

“당연하지! 바닷가로 가는 수련회는 처음이라서 잠도 잘 못 잤어.”


교회 모퉁이를 돌아나가며 친구와 떠들던 그때, 그녀가 보였다.

뽀얀 피부, 해맑은 웃음, 바람에 흩날리는 긴 생머리, 선배와 가볍게 대화하는 손짓. 낯선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선이 멈췄다. 뭔가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았지만, 나는 그저 친구들 뒤에 숨어 서성일 뿐이었다.


“아! 인사해. 이번에 나랑 같이 왔어.”


선배의 소개로 마주한 그녀에게 멋쩍게 고개만 끄덕였다. 이름을 듣고도 제대로 되뇌어 볼 틈 없이 곧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창밖 풍경은 늘 보던 들판과 마을길이었는데, 오늘따라 낯설게만 보였다. 내 시선은 자꾸만 그녀에게 향했고, 그녀가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모습이 괜히 신경 쓰였다. 억지로 창밖을 바라보는 척했지만, 어느 순간 눈길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가끔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들려온 선배의 한마디가 마음을 툭 건드렸다.


“내 친구니까 나랑 같은 나이야.”


‘나보다 누나라고?’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마음 한쪽이 괜히 시든 듯했다. 아직은 어렸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서툴렀다.

그녀는 계속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몇 살이야?”

“중3이요…”

“수련회 자주 와봤어?”

“그냥… 몇 번요…”


무뚝뚝한 대답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웃었고, 그 웃음은 오래 머물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수련회에서는 마니또 미션이 주어졌다. 누군가의 숨겨진 친구가 되어 작은 배려를 건네는 게임이었다.


“이거 가져.”

“…네?”

“안마 쿠폰이야. 마니또 심부름이야.”


그녀가 건넨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안마 쿠폰’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에도 초콜릿, 사탕, 짧은 쪽지를 내게 건넸다. 나는 모른 척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내 마니또는 그녀라는 걸. 단순한 게임이었는데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가슴이 자꾸 설레었다.

그녀는 같은 조도 아닌데도 굳이 나를 찾아와 말을 걸었다.


“이제 좀 덜 어색한가 보네?”

“조금은요…”

“처음엔 너 말 별로 안 하더니, 이제는 한 마디는 하네.”


그녀는 웃었고, 나는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그 미소조차 마음속에서는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았다.

어느덧 수련회의 마지막 밤. 모닥불 앞은 웃음과 노래로 가득했지만, 나는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바닷가 모래밭에 홀로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도 소리가 규칙적으로 밀려왔다.

잠시 뒤, 그녀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여기 있었네?”

“…네.”


그녀는 말없이 별빛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봤다. 우리 사이엔 침묵이 길게 흘렀지만, 그 침묵조차 이상하게 편안했다.


“내일이면 끝이네.”

“…그러네요.”


그 말은 유난히 쓸쓸하게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일 그녀와 헤어지는 게 싫다는 걸.

수련회가 끝난 날, 버스는 사람들을 각자의 집으로 흩어놓았다. 그녀도 돌아갔다.

나는 손바닥에 남은 ‘안마 쿠폰’을 꼭 쥔 채, 그리워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해 여름, 나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또렷하게 배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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