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이가 태어난 지 725일
민형이에게.
우리 아가 안녕? 엄마야.
민형아, 오늘은 민형이가 태어난 지 725일. 그러니까 23개월 24일이 되는 날이야.
이제 일주일 후면 민형이가 세상에 나오고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셈이 돼. 너의 두 번째 생일을 맞거든.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아이의 성장을 가장 효과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것은 사진 같아.
그래서 민형이가 태어나고 난 후 엄마, 아빠의 폰 앨범은 너의 사진으로 가득해졌어.
사실 그전에는 시월이 사진이 대부분이었거든? 그런데 이제는 시월이 사진이 많이 줄었어.
그 부분은 우리 고양이한테 미안할 때가 많아.
시월이는 항상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데, 단지 사진만 줄었을 뿐인데, 엄마는 괜히 여러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져. 늘 옆에 있지만, 나중을 위해 의식적으로 시월이 사진도 많이 남겨두어야지 다짐하고 있어.
수많은 민형이의 사진을 보면 엄마는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러면서도 정말 저런 때가 있었나 싶은 묘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더라. 당장의 하루하루가 새롭고 바쁘니까, 이전의 날들은 조금씩 희미해지면서 오랜만에 사진으로 마주하면 더 새롭고 낯설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나 봐.
그런데 사진을 봤을 때 '감정'이 전해지는 것도 참 좋지만, 자식으로서 나중에 사진 속 혹은 영상 속 생생한 모습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려.
엄마에게는 할머니가 남겨주신 짧은 육아일기가 있는데, 그 글들을 읽으면 할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엄마는 몰랐던, 아마 할머니도 기억나지 않을 사소한 일들이 적혀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반대로 더 생생하달까?
그래서 엄마도 틈나는 대로 민형이에게 편지를 남기려고. 육아일기이자, 엄마의 기록이 될 수 있겠네.
흔히 사람들은 "두 돌이 되면 사람이 된다"라고 얘기해.
얼마나 큰 변화가 있으면 "사람이 된다"라고 표현하는 걸까, 궁금했지만 그 궁금함에 취할 틈도 없이 숨 가쁜 육아를 해 왔던 것 같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에 엄마에게도 그 두 돌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어.
두 돌을 바라보는 8월은 엄마에게도 특별한 시기였어. 지금의 9월은 더더욱 특별하고.
그 이유는 민형이의 언어, 인지 발달이 눈에 띄게 이루어졌다는 거야. 정말 이렇게 사람이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오늘 아침에는 아빠가 일이 바빠 일찍 출근하셨어.
민형이는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거실에서 잠깐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엄마를 열 번 이상 불렀어.
"엄마~", "엄마~"
"응, 민형아 일어났으면 여기로 나와봐~"
간단한 일이지만 급하게 보내줘야 할 일이어서 엄마는 침실로 바로 달려가지 못하고 목소리만 높였지.
예전 같으면 눈 떴을 때 그저 "으앙~"하고 울었을 텐데, 이제는 또렷하게 엄마를 부르며, 엄마가 와 주기를, 안아주기를 표현하는 모습이 귀여웠어. 더 어릴 때 자다 깨면 울었던 것도, 짐작은 했지만 엄마와 아빠를 찾았던 거구나 싶고.
아빠가 출근하고 엄마와 둘이서 어린이집 갈 준비를 하려는데, 잠에서 덜 깼는지 거실 소파에 앉아 칭얼거리더구나. 처음엔 "엄마, 안아, 안아." 안아달라고 요구해 놓고서는, 안아주려니까 "엄마, 가. 가." 다시 가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
간단한 표현은 할 줄 알지만, 엄마가 왔으면 좋겠는지 갔으면 좋겠는지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질지 스스로도 모르고 또 표현할 줄 몰라서 어리숙하게 얘기하는 거라고 생각해.
또 한 번 민형이의 언어 발달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 아니 차근히 발달하게 되면, 이 부분도 나중에는 차분하게 설명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겠지?
어쨌든, 민형이가 자꾸 "저기로 가" 멀리 가라고 얘기하길래, (가라고 하는 김에) 침실에 있는 민형이 옷 수납함에서 옷을 꺼내러 갔어. 그런데 순간 엄마가 안 보이니까 깜짝 놀랐는지, 엄마가 침실에 가 있는 것은 모르고 작은방을 들락거리며 "엄마, 안 보여. 엄마, 안 보여." 하며 칭얼거리는 거 있지?
너무너무 귀여웠어. 엄마가 안 보여서, 엄마가 사라진 줄 알고 눈물을 흘렸구나 공감해 주며 안아주고 토닥여주었지.
그러면서 자꾸만 민형이가 더 어릴 때가 떠올랐어. 엄마를 보며 눈을 맞추고, 소리 내어 웃지 못할 때 마치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또 소리 내어 웃게 되었을 때는 눈을 맞추며 깔깔 웃고, 울거나 짜증내기도 했던 모습들.
그때도 민형이는 엄마를 찾거나, 엄마와 함께 있어서 즐겁다거나, 엄마가 좋다거나, 마음이 편하거나, 불편하거나 하는 것들을 표현했던 거겠지 싶어서 애틋하고 고맙더라고.
요즘 엄마는 업무량이 많고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맡아서 정신이 없는 상태야.
민형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몰입해서 속도를 내야 하는데, 이것저것 확인하고 소통하며 감정 노동을 꽤 한 터라 머리도 식힐 겸 이렇게 잠시 글을 남기고 있어.
오늘은 아빠가 모처럼 저녁 약속 때문에 늦는다고 하셨어.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민형이 하원 후에 할머니댁에 가려고 해. 아침에 잠깐 얘기해 줬는데 민형이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서 할머니, 고모, 이슬이랑 같이 좋은 시간 보내자. 아마 4시간가량 있다가 오게 되겠지만 민형이에게는 엄청 길고 즐거운 시간이 되겠지? 엄마는 그때 짬을 내어 조금이라도 일을 하려고.
며칠 전에는 민형이 이모할머니, 삼촌이 왔다 가셨는데 오늘은 서울할머니, 고모를 만나니 민형이는 좋겠다.
앞으로 남겨갈 이 편지들이 민형이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할머니가 엄마에게 육아일기를 남기시면서 했던 말인데, 엄마도 똑같이 하게 되네.
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엄마에게 글을 남기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기쁘고 감사하다.
지나고 보면, 엄마는 할머니의 소소한 것들, 일상적인 생각과 사소한 일들이 궁금해지더라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셔서 직접 여쭤볼 수 없지만, 남겨진 것들을 통해 기억하고 상상해 보며 아쉬움을 채우고 있어.
그래서 엄마는 민형이에게 더 많은 것들을 남겨주고 싶어.
그동안 민형이에게 편지나 글을 자주 남겼으면 좋았겠지만, 지금도 늦지 않은 거라 생각할게!
엄마 개인적인 생각인데, 두 돌은 참 상징적이거든.
그전에는 민형이와 단순한 감정 교류만을 했다면, 이제는 좀 더 세세한 감정 교류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엄마도 두 돌을 기점으로 편지 쓰는 것을 시작하게 된 거라고, 운명적이고, 필연적인 시기라고 위안하며 이제라도 쓰기 시작한 스스로를 칭찬하려고 해.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어가네. 낮잠도 잘 자고, 오후 간식 맛있게 먹고 나서 놀고 있겠지?
엄마가 곧 데리러 갈게!
2025년 9월 10일 수요일 오후, 민형이에게 쓴 첫 편지. (혹은 일기, 아니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