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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Apr 06. 2022

여행보상

제주도 혼자 여행 - 0

#여행보상

'여행을 자주 다니자'

지난 10월, 혼자 떠난 안동 여행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느꼈던 점이다. 고된 일상을 버텨내고 떠나는, 그러니깐 일종의 보상과도 같은 여행이 아니라 여행 자체를 내 일상으로 만들자는 의미였다.


내게 보상으로써의 여행은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힘들었으니깐 이번엔 싹 풀어야 해', '맨날 지루해 죽겠네. 진짜 다음 여행에서는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봐야지'. 물론 계획한대로 여행이 흘러가면야 좋겠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잖아. 거기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여행의 성격을 내 멋대로 제한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그래서 여행을 자주 다녀서 떠나는 것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과 친해지면 여행이 가자는 대로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10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11월, 12월 여행 일정을 세웠다. 마치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처럼 매월 하나의 여행기를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가장 마지막에 퇴근하는 건 일상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비웃기나 하는 듯, 11월부터 내가 맡은 서비스는 전면 리뉴얼에 들어갔고 21년 말과 22년 초는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보냈다. 반드시 결과를 내야만 하는 기획이었고, 수치로 증명되는 결과였기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좋아서 하는 것이었으나 과정보다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일'인 경우엔 맥락 자체가 달랐다. 달력 구석, 소박하게 표시해두었던 여행 일정은 업무 일정에 가차 없이 덧칠해졌고 그렇게 새해의 설렘을 느낄 새도 없이 1월이 지나가고야 말았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中

'제발 좀 그만해~이러다 다 죽어~'


정신 없이 일하는 나를 돌려 세운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마치 오징어 게임 할아버지가 죽어라 외치듯 내 안에서도 이젠 좀 그만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빠듯한 업무에 적응됐던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시기를 지나와서도 관성처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서비스가 시작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2월 말, 나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식으로 4 연속 연차를 내버렸다. 떠나는 것도 어중간하게 떠나는 게 아니라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다. 또, 오~래 머물고 싶었다. 현실과 타협하는 선에서 해외가 아닌 제주를 택하고 일 년이 아닌 한 주로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또 일상 속 여행이 아닌 '보상'으로써의 여행을 택했지만...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전날 공항 근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저렴한 방값과 함께 공동 화장실, 낯선 사람들, 쾌쾌한 냄새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내겐 여행의 설렘으로 다가왔다. 여행 일정이 명확하지 않아도 좋았다. 지금부터 짜면 되니깐. 또다시 친숙한, 그러니깐 일상의 여행이 아닌 기대감과 부담감이 공존하는 그런 낯선 여행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렴 어때. 여행의 본질은 떠나는 거고 나는 나를 붙잡는 모든 유혹(?)들을 뿌리치고 마침내 다시 그 출발점에 섰다는 게 중요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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