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랑 Jul 03. 2023

가장 따듯했던 위로

헤어짐을 주변과 공유해야 하는 순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나의 근황을 묻다 그의 안부까지 묻곤 했다. 내 친구들에게도 그는 오래 함께 하는 존재였다. 함께 밥을 먹기도 했고, 나를 데리러 오거나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스치는 적도 많았다. 그가 함께 하지 않는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는 화제가 되곤 했다. 그의 졸업, 취업 등 주요한 궤적들. 여러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그의 가치관, 가족관계, 행동 패턴들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헤어짐을 자백하면, 그들은 대체로 이유를 묻곤 했다. 오래 만난 연인이 대체 왜 헤어지는지 궁금한 건 무척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알고 있지만 힘들었다. 헤어진 이유는 필연적으로 상대방 혹은 상대방과 함께 만든 세계를 부정해야 시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 비록 헤어졌지만 그는 나의 일부였다. 때론 나였다. 마주 앉은 그 누구보다 가까웠던, 오래 소중했던 사람을 아무렇게나 가볍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가장 친한 친구를 제외한 사람들에겐 서로 다른 이별 사유를 둘러댔다. 누군가에겐 권태기, 누군가에겐 결혼이 하기 싫어서, 누군가에겐 좁혀지지 않는 견해 차이라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유도 아니었다. 그와 나만의 내밀한 세계에 갑자기 등장한 관찰자들에게 그들이 납득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둘러대는 일은 버거웠다.


물론 통과의례가 끝나면 위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기꺼이 그들의 한 켠을 꺼내 나를 덮어주었다. 많이 울고, 많이 웃었다. 오랜 연인과 헤어지고 어렵사리 새로운 만남 끝에 결혼한 지인은 정말 행복한데, 여전히 눈물이 툭하고 떨어지는 날이 가끔 있다고 했다. 이렇듯 비 오는 날 생각나는 남자 한 명쯤은 품고 사는 게 인생인 거 같다고 말해주었다.

또 다른 지인은 긴 연애 끝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한 사람은 내게, 진짜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다며 나에게도 진짜 인연은 분명 따로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내 위로했다.

그리고 새로운 남자가 생길 때까지 영화는 자기랑 보면 된다던 남사친. 또 내 연애 기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자신보다 부자 아니냐고 했던 친구까지...  다 담지 못한 소중하디 소중했던 나의 모두들.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따듯했던 위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친구였다. 헤어진 이유를 묻지 않은 단 한 사람이었다. 나는 헤어졌다고 말하곤 수순대로 이유를 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 친구는 나를 읽었다.


“ 나... 헤어졌어” 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친구는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곤 “아직 안 괜찮지?” 라고 물었다. 이에 덧붙여 ”헤어진 이유, 지금 말하기 힘들면 나 안 물어볼게. 너 힘든데 겨우겨우 말해주지 않아도 돼. 말하고 싶어질 때, 말해도 괜찮을 것 같은 때가 오면 그게 언제든 말해줘. 응?!“ 이라고 말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안 궁금하겠는가. 하지만 대답 너머의 힘겹게 입을 떼야하는 나를 먼저 살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내 곁에 오래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이유를 묻지 않는 위로도 있음을 배웠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마음이 있었다.


위로는 어렵다. 그럼에도 모두가 기꺼이 스스로를 내어 나를 덮어 주었다. 돌아보면 어떤 모습이었든, 어떤 말이었든, 그 한 켠을 덮고서야 지금의 내가 있음을 안다.





지금 듣는 음악 - 정키, <Alone>



매거진의 이전글 그 성냥의 발화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