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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Feb 09. 2020

살고 싶어지는 생태도시  브리즈번

호부 브리즈번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


1월 5일 오후 3시 40분, 다윈을 출발한 비행기는 저녁 6시 40분에 브리즈번 공항에 착륙했다. 브리즈번은 이번 호주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이다. 브리즈번 공항에서 우리는 시내로 가는 에어 트레인을 탔다. 나는 다윈에서 브리즈번 숙소를 미리 검색하여 숙소를 정했다. 브리즈번 백패커스 리조트로 정했는데 기차를 타고 시내 로마 스트리트에 내리면 픽업 서비스를 해준다고 했다. 기차는 오후 7시 10분에 로마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트랜짓 센타로 올라가니 픽업을 나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브리즈번 백패커스 리조트에 도착하여 도미토리를 배정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유럽에서 온 아가씨들 세 사람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 인지라 그들은 거의 비키니 차림 비슷한 짧은 핫팬츠에 가슴이 훤히 드러내 보이는 러닝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미 흔히 경험한 터라 이제 우리는 그런 모습에 개의치 않고 서슴없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하는데 익숙해졌다. 


브리즈번은 호주의 여행지 가운데서도 휴양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관문 역할을 한다. 브리즈번은 호주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후주에서도 손꼽히는 도시다. 퀸즈랜드의 수도인 브리즈번은 열대우림지역으로 겨울에도 따뜻하기 때문에 시드니나 멜버른 등지에서 추위를 피해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 브리즈번이다. 여름에는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선 샤인 코스트나 세계 모든 서퍼들의 꿈의 해변이라고 일컫는 서퍼스 파라다이스가 있는 골드코스트 가는 여행객들의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브리즈번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하루는 선 샤인 코스트를, 그리고 다른 하루는 골드코스트를 가기로 했다. 골드코스트에는 5년 전에 유럽여행 때 만난 친구 조앤과 카멜리언이 있기 때문이다.  조앤은 카멜리언은 유럽에서 한 달간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행을 하는 동안 아주 특별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여행을 한 후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으며 서로 연락하면서 친분을 나누고 있었다. 브리즈번에 도착한 날 저녁 조앤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녀는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까지는 기차로 2시간이면 올 수 있으니 꼭 들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아끼는 인형 마티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가 아끼는 인형 마티도 보고 싶었다. 


살고 싶어지는 생태도시 브리즈번


숙소에서 한국에서 온 10여 명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이번 여행 중에 모처럼 만난 한국인들이라 무척 반가웠다. 그들은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호주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밤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희 부모님 연세와 비슷하신 것 같은데 두 분께서 이렇게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허허, 속 알 머리가 없어서 그래요."

"두 분을 뵈니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부모님께 속만 썩여드렸는데 외국에 나오니 부모님께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대학을 졸업해서 취업을 하면 부모님 효도관광을 먼저 보내드려야겠어요. 어려운 가운데 부부님께서 주신 돈으로 이렇게 여행을 다니다 보니 돈의 귀중함도 알게 되고요."

"중년을 훌쩍 넘어선 나이에 두 분께서 배낭여행을 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고 부럽습니다. 저도 앞으로 선생님처럼 세계일주 여행을 하는 것이 꿈인데 과연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아직 젊은데 꿈과 용기가 있으면 무엇인들 못하겠소. 나도 여러분의 나이에는 세계여행을 다니는 김찬삼 교수님을 무척 부러워했어."

"아직 한참 활동을 하실 연세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다닐 수 있지요?"  

"맞아요. 한참 일을 할 나이지요. 남자가 자기가 쌓아 올린 직장과 사회적인 지위를 모두 놓아버리기란 쉽지가 않지요. 그러나 몇 해전 앞만 보고 달려온 저에게 결정적인 위기가 닥쳐왔어요. 그래서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모든 걸 놓아버리고 아내와 단 둘이서 이렇게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고 있어요."  

"어떤 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자면 좀 길어져요. 흔히 위기는 기회라고들 하지요. 사람은 인생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 결정된다고 생각이 돼요. 그래서 앞만 바라보지 말고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자신의 처한 위치를 잘 살펴가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 그런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며 만난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기가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미루지 않고 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저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기업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디서나 한국산 자동차가 굴러다니고, 가는 호텔마다 전자제품 등 메이드 인 코리아를 만날 수 있었어요."

"맞아요! 머나먼 불모지인 해외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파는 한국의 기업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허구한 날 당파싸움만 일삼는 정치인들은 언제나 정신을 차릴 것인지...  기업들은 선진화를 향해 달려가는데, 정치는 자꾸만 후퇴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언제나 정치 후진국을 면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 됩니다."


해외에서 배낭여행을 하며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우리 세대보다 훨씬 정직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면 효자가 되고 내 나라를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 시절에 배낭여행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물 안에 갇혀만 있던 좁은 마음을 열고 나라밖의 견문을 넓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인 학생 네 명과 함께 도미토리에서 잠을 잤다. 젊은 기운이 방안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남자들의 거리와 여자들의 거리 


다음날 늦게 일어난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백패커스에서 운행하는 셔틀을 타고 로마 스트리트에서 내렸다. 로마 스트리트에서 시청까지는 그리 멀지가 않았다. 브리즈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거리 이름이다. 시내 한가운데로는 브리즈번 강이 'S'자형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그 강의 흐름과 평행인 길은 남자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윌리엄, 조지, 앨버트, 에드워드 등……. 반면에 강의 흐름과 직각인 거리에는 앤, 애들레이드, 퀸, 샬럿, 메리, 마가릿, 앨리스와 같은 여성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 사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브리즈번 거리를 걷다 보면 남자와 여자가 크로스로 서로 얽혀 있는 거리를 걷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진 것 같은 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여기서는 남자 이름과 여자 이름이 만나는 네거리만 기억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네요?"

"지금부터 당신을 퀸이라고 불러줄까?"

"호호,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그럼 당신은요?"

"난 그냥 조지라는 이름이 좋아요. 좀 촌스럽기는 하지만. 하하."

“조지. 부르기도 쉽고 마음에 와 닿는군요.”

“사실 영어식 이름인 조지(George)는 농부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아무튼 농담 삼아 브리즈번에서 나는 아내를 퀸이라고 부르고, 아내는 나를 조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퀸 스트리트 몰에서 아내가 숍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시청 주변의 사진을 찍기로 하고, 우리는 1시간 후에 퀸 스트리트와 조지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트레저리 카지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브리즈번 시내는 바둑판처럼 정리가 잘되어 있어 거리를 찾기가 아주 쉽다. 아내는 아이쇼핑을 좋아하고 나는 사진을 찍기 좋아하니 여행 중에 가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하곤 한다. 퀸스트리트 몰은 쇼핑을 하기에 아주 좋은 거리였다.  


"하이, 퀸! 여기야."


1시간 후에 트레저리 카지노 앞으로 가니 아내가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아내가 웃으며 다가왔다. 퀸이라는 이름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퀸과 조지가 만나는 거리는 한가로웠다. 평화롭고 낙관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퀸 스트리트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빅토리아 브리지 쪽으로 강변을 따라 산책을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강변의 산책로는 살아 숨 쉬는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생태도시 브리즈번


수양버들 나무와 물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이 강심에서부터 하늘을 덮고, 그 사이로 나무로 된 산책로가 놓여 있었다. 나무가 거의 없는 한강 둔치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현대적인 감각을 잘 살리면서도 생태 고리를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생생했다. 


이런 산책로라면 끝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사람들이 들끓는 길보다 한적한 길을 우리는 언제나 좋아했다. 그래서 여행지에 도착한 도시나, 마을마다 우리는 한적한 길을 찾아 산책을 하곤 했다. 이곳 브리즈번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수변 로에는 가끔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다. 길을 걷다 보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하트 모양의 꽃이 눈길을 끌었다. 보테닉 가든이다. 보테닉 가든에는 온갖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우리는 보테닉 가든에서 꽃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늘에 쉬기도 하다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부겐빌레아 흐드러지게 핀 사우스 뱅크 파크랜드


부겐빌레아 흐드러지게 핀 사우스 뱅크 파크 랜드


오후에는 빅토리아 브리지를 건너 남쪽에 있는 사우스 뱅크 파크랜드 길을 걸었다. 전시관에서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녹지대는 브리즈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거대한 전시관은 88년도에 세게 엑스포가 열렸던 곳이라고 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부겐베리아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부겐베리아가 걸쳐있는 그랜드 아치가 마치 허니문의 길을 열어주듯 도열해 있었다. 물결치듯 하늘로 치솟아 오른 아치에는 연분홍의 부겐베리아 꽃이 아치를 칭칭 감아 돌며 꽃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와~ 이건 우리들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허니문 길 같아요!"

"정말,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해 주는 것 같군요."


우린 한 동안 부겐베리아 아치 밑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며 신혼부부처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 서서 감탄사를 쏟아내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 호사다마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까? 


"여보, 왜 그래?"

"갑자기 다리가 마비가 되는 것 같아요."


부겐베리아 물결 밑에서 아내는 쓰러진 채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나는 아내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십분 동안을 나는 부겐베리아 아치 밑에서 아내의 다리를 주물렀다. 1시간 정도나 지나서야 아내는 겨우 일어났다. 당뇨가 심한 아내는 가끔 사지가 마비되는 경우가 있는 데 이번은 좀 심한 것 같았다. 


"더운 날씨에 너무 많이 걸어 다녔어요. 자 저기 그늘로 가서 좀 쉬자고."

"그런 것 같아요."


걷기에 너무 좋은 산책로여서 너무 무리하게 많이 걸어 다닌 것 같았다. 사람의 육체는 지니고 있는 에너지보다 너무 무리하게 쓰다 보면 에너지가 방전되어 경고음을 보내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시원한 밑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했다. 


아내는 컨디션이 좋아져 다시 걸울 수 있다고 했다. 일본식 사원 주변에는 생태공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야자수와 열대식물로 정글을 이루고 있는 그늘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생태공원에는 도마뱀 같은 동물들이 여기저기 헤엄을 치거나 눈을 끔벅거리며 지나가는 낯선 여행자를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생태공원을 지나자 넓은 수영장이 나왔다. 남녀노소가 자연스럽게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수영장은 '코닥 비치(Kodak Beach)'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누구나 지나가다가 뛰어들 수 있는 무료 수영장이다. 브리즈번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어울러 지내는 친환경적으로 일구어 놓은 생태도시다.


시원한 야자수 그늘과 다양한 수목이 어우러진 수영장은 그냥 보기만 해도 좋다. 사람들은 꼭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옷이든 걸치고 들어갔다. 그냥 지나가다가 더우면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사우스 뱅크 파크랜드


"자, 우리도 저 물속에 몸을 좀 담가 볼까?"

"정말요?"

"아마 저 물속에 몸을 담그면 온 몸이 풀릴 거야. 긴장된 다리 근육도 풀리고."

"정말 그럴 것 같군요. 그런데 수영복이 없잖아요."

"저 사람들은 그냥 들어가는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요. 숙소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요."

"좋아요."


다행히 숙소는 멀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가 수영복을 안에 껴입고 간단한 요기를 한 우리는 다시 사우스 뱅크로 갔다. 물결은 감미로웠고, 야자수 그늘은 시원했다. 그렇게 우리는 오후 한때를 수영장에서 보냈다. 자유롭게 수영을 물장구를 치다 보니 아내의 다리 근육도 릴랙스 하게 풀어진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여행의 대미에서 수영을 즐기는 오후의 한 때였다. 우리는 강변에 어둠이 깔리고 가로등이 켜지는 늦은 저녁까지 물장구를 치며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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