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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라 Feb 17. 2020

홈 스위트 홈!

세계일주 마지막회

하늘과 땅이 보이지 않는 홍콩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다. 홍콩은 이번 세계일 주 여행은 출발점이자 마지막 여정이었다. 지금까지 19번의 비행기를 탔다. 이제 홍콩에서 서울로 가는 마지막 20회 항공여정만 남아 있다. 홍콩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 날짜는 1월 13일이다. 작년 9월 28일 서울을 출발하여 1월 13일 날 귀국을 하게 되니 공교롭게도 108일간의 여정이었다. 마치 108 번뇌를 조금이라도 씻어내라는 여정처럼 느껴졌다. 일정을 더 늘리고 싶어도 아내의 약 때문에 늘릴 수가 없었다.      


난치병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108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했다. 생각해보면 ‘세상 끝에서 세상 끝’으로 떠난 여정이었다. 그동안 아슬아슬한 고비도 많았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무사히 오겐 된 것은 나와 아내의 여정에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는 그 무엇을 세상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인생살이의 모든 것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번쩍 지나가고 만다.      


항공 스케줄이 홍콩에서 12일 날 출발하게 되어 있었으나 항공사 측의 사정으로 하루 늦은 13일 날 서울로 가도록 잡혔다. 우리는 홍콩 국제공항에서 메트로를 탔다. 총알처럼 달리는 메트로는 금세 홍콩 다운타운인 션완(Shun Wan)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보이지 않고 초고층 콘크리트 빌딩 숲이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드넓은 호주의 황야와 벌판, 그리고 탁 트인 해변을 여행을 하다가 콱 막힌 콘크리트 숲에 갇혀 있게 되니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땅을 내려다보니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이층 버스와 택시, 자동차들이 헤아릴 수 없이 도로를 가득 메워 땅도 보이지 않았다.    

 

“여보, 빌딩 숲에 갇히다 보니 숨이 턱턱 막히는군요.”

“여긴, 홍콩이 아니겠소?”     


초고층빌딩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 홍콩


홍콩의 숙소는 자키 클럽 마운트 데이비스 유스호스텔(Jockey Club Mt. Davis YHA)로 정했는데 션 토크 센터에서 무료 셔틀을 운행했다. 무료 셔틀을 타고 마운트 데이비스에 위치한 호스텔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해발 269m의 데이비스 산에 위치한 호스텔은 우선 사방이 확 트여서 전망이 매우 좋았다. 접근성은 좋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콘크리트 숲을 벗어나 친환경적인 환경이 마음에 들었다. 높은 우치에서 홍콩의 야경을 바라보기에는 아주 좋은 위치였다.  영국인 안내원이 수다를 떨며 매우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마침 바다 전망이 좋은 트윈 룸이 여유가 있어 가격은 좀 비싸지만 우리는 트윈 룸에 머물기로 했다.  

    

“바다가 보이는 이 방은 잡기가 매우 어려워요. 그런데 이 방을 예약을 한 사람이 사정이 있어 취소를 하는 바람에 손님이 머물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거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전망이 좋은 자키 클럽 마운틴 데이비스  유스호스텔


짐을 풀어놓고 샤워를 한 뒤 커피를 한잔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먼저 침실로 들어갔다. 명상을 하기가 좋은 방이었다. 나는 가부좌를 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지나온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은 버리려고 할수록 자꾸만 더 떠올랐다. 에이~ 저 바닷물처럼 자꾸만 흘러 보내자. 강물이 흘러가면 결국 바다로 흘러가 한데 합쳐지듯이 내 생각도 바다를 만날 때가 있겠지.     


홍콩에서 꼭 가보아야 할 빅토리아 피크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바다를 바라보니 무역선들이 뱃고동을 울리며 홍콩 항을 수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홍콩에서는 여행을 마무리하며 쉬는 시간으로 정했다. 그러나 홍콩에서 딱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그것은 빅토리아 피크(Victoria Peak)로 올라가서 홍콩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빅토리아 피크는 환상적인 밤 풍경 때문에 홍콩 최고의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홍콩에 도착하여 마트에서 산 라면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다운타운으로 가는 셔틀을 탔다. 중앙역에서 피크로 가는 트램을 탔다. 트램은 도저히 꺾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각도를 돌아 위태롭게 케이블카 선로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올라 해발 554m의 빅토리아 피크에 도착했다.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스카이 테라스 428’ 전망대에 오르니 홍콩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날씨가 스모그 현상이 나타나 그렇게 맑은 전망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시내 전경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곳 빅토리아 피크는 날씨 변화가 심해 예측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밑에서는 맑은 날씨였는데 정상에 올라서면 안개가 자욱이 끼어 한 치 앞도 내려다볼 수 없다는 것.      

 

빅토리아 피크에서 바라본 홍콩


빅토리아 피크는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홍콩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다. 과거에는 높은 지역이라 시원해서 부유층과 명사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지금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화려한 풍광 때문에 여전히 부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초저녁에는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풍광을, 콘크리트 빌딩 숲으로 어둠이 깔리면 마치 은하계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스카 라인의 불빛을 감상할 수 있다. 불빛이 은하계의 별처럼 반짝이는 초고층빌딩의 밤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빅 부다와 행운의 268계단 


홍콩의 마지막 날 란타우 섬으로 갔다. 지하철을 타고 통총역(Tung Chung)에서 내려 포린 사원으로 가는 23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옹핑 빌리지를 지나니 불국(佛國)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만났다. 문짝이 없는 중국 특유의 ‘패방’이란 문이다. 문에는 ‘남천 불국(南天佛國)’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청동불상인 빅 부다(Big Buddha)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빅 부다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청동대불이 연화좌에 앉아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중생을 굽어보고 있었다. 빅 부다는 중국식 발음으로 티엔탄대불(天壇大佛)이라고 불린다. 


난타우 섬 포린사 청동대불  빅 부다

     

중국의 향은 매우 크다. 높인 34m 무게 250톤에 달하는 거대한 청동대불은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불단과 불상을 제작하는데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넉넉했다. 저절로 안기고 싶은 부처님이다.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향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이 향불을 피우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아내와 나도 향을 사르며 부처님 앞에 섰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이곳에 서 있는 순간이 그저 기적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우리는 소원을 빌기보다는 감사기도를 올렸다. 행불을 피우고 268계단을 올라가 부처님 품에 안겼다. 중국에서는 268계단을 행운의 계단이라고 불린다. ‘2’는 ‘쉽다’, ‘6’은 ‘이어진다’, ‘8’은 ‘부자’라고 풀이한단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감사하는 마음! 아, 감사하는 이 마음은 아무리 강조해조 다함이 없다. 난치병에 걸린 아내와 단 둘이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란타우 섬 포린 사원  빅 부다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덴마크에서 만난 둘리자매, 프라하로 가는 기차에서 만나 숙소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 니키, 자신의 집에서 따뜻하게 재워준 칠레 산티아고의 김 사장, 라파스 잉카식당의 한국인 주인 최여사, 파타고니아의 하숙집 주인 마뉴엘, 이스터 섬의 미히노아 가족, 호주의 조앤과 카멜리언, 그리고 인형 마르티… 심지어는 수중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간 라파스의 택시강도, 아내의 약이 든 배낭을 훔쳐간 라마의 도둑들에게도 한줄기 추억으로 간직하게 해 주어 그들에게도 감사를 드렸다. 지나고 보면 모두가 다 사소한 일이다. 그들은 내게 있는 것들을 잠시 빌려간 것뿐이 아니겠는가? 놀라운 풍경, 우리를 태워다 준 비행기, 버스, 기차, 배, 음식…  이 모든 것들이 일순에 휙~하고 스쳐 지나갔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길그 길은 길고도 먼 여정이었고 우리들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순례 길이었다  

   

지금 이 순간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세계일주 대장정을 잘 견뎌준 아내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우리는 붓다의 넉넉한 품에 안겨 향을 사르며 감사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올리는 마음은 항상 경건하다. 아무 바람이 없는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있기에 그것은 신성하다. 우리는 여행을 하는 동안 성당에서, 교회에서, 사원에서, 산과 바다, 비행기, 버스, 후미진 뒷골목에 위치한 민박집에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기도는 용기를 준다. 기도는 행복과 평화를 안겨준다.      


홈 스위트 홈!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연어에게만 귀소의 본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만물은 귀소의 본능이 있다. 하물며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집으로 돌아가면 따뜻한 보금자리와 아이들과 낯익은 가구, 익숙한 골목의 풍경,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고향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아픈 아내와 함께 ‘희망’ 하나를 품고 떠난 세계 일주 순례길. 그것은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눈에 어른 거렸다. 집이 그리웠다. 돌아올 집이 있기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행은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 마음속 번뇌를 비우고 그 빈자리에 산소 같은 희망을 배낭에 가득 채우고 돌아오는 것이다.           


나를 기다려주는 가족과 익숙한 집, 친구들과 나의 조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편한 언어로부터의 해방……. 여행을 떠날 때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낯선 곳으로 떠나지만, 오랫동안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것들이 그리워진다.  


1월 13일, 우리는 마침내 108일간의 긴 세계일주 여정을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공항 대합실로 나가니 영이와 경이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네, 엄마 아빠 무사 귀국을 진심으로 환영해요!"

"그래, 그동안 너희들도 잘 있었니?"

"네, 보시다시피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었어요."

"고맙다! 봉이도 잘 있니?"

"네, 봉이도 잘 먹고 잘 놀아서 살이 피둥피둥 쪘어요. 호호."

"그래? 여기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호주에서 입양을 해온 스탠리란다."

"호호호, 아이고 귀여워요."

"봉이랑 친구를 하면 되겠네요. 어디서 났어요?"

"응, 호주 친구 조앤이 선물로 준거야. 스탠리가 일곱 살이라고 하니까 봉이가 누나가 되겠구나."

"호호호, 봉이도 동생이 생겨서 좋아할 것 같아요."


호주에서 입양을 해온 스탠리(좌)와 봉이의 만남


아이들에게 호주의 조앤이 선물한 스탠리를 소개하니 너무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경이가 오랫동안 애지중지 아껴오던 '봉이'라는 인형이 있다. 아마 경이가 세 살 적부터 가지고 놀았던 인형인데, 닳고 닳아서 겉모양이 다 헤질 정도로 낡은 인형이다. 집에 돌아와 경이는 봉이에게 말을 걸며 스탠리를 소개했다. 경이는 혼자 있을 때는 봉이랑 늘 말을 걸며 놀았다. 


"봉이야, 여기 호주에서 건너온 스탠리란다. 이제부터 네 동생이 되었으니 사이좋게 놀아야 한다."

"호호호, 봉이가 무척 좋아하는데요?"

"하하하, 식구나 하나 더 늘었으니 먹여 살리려면 아빠가 부지런히 일을 해야겠구나."


오랫동안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아"처럼 나는 가족의 품에 안겼다. 아아, 나를 반겨줄 가족과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홈, 스위트 홈! 모든 것이 편안했다. 세상 끝에서 세상 끝으로 돌아온 여행! 세상의 끝은 없다. 세상의 끝은 다시 시작점이 되지 않겠는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지붕 아래에서 달콤하게 잠을 잘 수 있고

아이들과 정원 그리고 개가 있다. 아, 그런데

지난 방랑길에서 돌아와 겨우 휴식을 취했을까,

또다시 먼 타향이 그대를 유혹한다.

향수에 시달리면서

드높은 별들 아래 나만의 그리움을 지니고서

홀로 있는 것이 더 좋다.

심장이 느긋하게 뛰는 사람만이

앉아서 쉴 수 있으리라.

그러나 방랑자는 번번이 기대가 빗나가도

여행의 수고와 고난을 견뎌낸다.

방랑의 온갖 고통스러움이

고향의 계곡에서 평화를 찾는 것보다 더 편안할지니.

고향의 기쁨과 근심이 맴도는 데서는

오로지 지혜로운 사람만이 자기 행복을 만들 수 있다.

나를 따스한 고향 가까운 곳에 옥죄어두기보다는

혹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찾아다니는 것이 더 좋다.

행복한 순간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나는 그저

손님일 뿐, 결코 주인이 될 수 없기에.


-헤르만 헤세,  아프리카를 바라보며-


     

*그동안 이 여행기를 구독해 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계일주 연재를  마치며  찰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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