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다리를 건너 네팔로...

- 티베트와 네팔의 경계에서

by 찰라


국경의 출입문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우리는 잠시 파곡하 계곡을 흐르는 폭포를 감상하였다. 티베트 고원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긴 순례길을 걸어온 우리들의 모습은 다소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희열에 차 있었다.


에베스레트 배이스캠프에서 곤두박질치듯 하강하여 장무(2300m)에 도착하니 마치 비행접시에서 뚝 떨어진 느낌이 든다. 푸른 숲, 물, 그리고 숨쉬기 편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신들의 세계에서 지상 낙원으로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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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경을 넘으려고 여권을 내밀었더니 여권 속의 아내의 사진과 현재 아내의 모습이 다르다고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 아내의 여권에는 단발머리 소녀처럼 보이는데 지금은 더부룩한 머리에 중년 여인처럼 보이니 그럴 만도 하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머리도 길고 모습도 많이 변했다. 중국 국경 직원이 짜증을 부릴 만도 하다. 무려 1시간여를 지체하여 겨우 중국 국경을 통과해 <우정의 다리>로 걸어갔다. 이 다리만 건너가면 네팔이다.


나는 우정의 다리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이 다리는 오늘의 국경이지만, 오래전에는 서원이 오가던 길이었다. 철과 콘크리트로 세워지기 훨씬 이전, 믿음은 이미 이 협곡을 건너고 있었다. 나는 다리 위에 서서, 천삼백 년 전의 한 여인을 떠올렸다. 네팔의 공주, 부리쿠티.


티베트와 네팔을 이어주는 '우정의 다리'(Friend Bridge)

그녀는 다리를 건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발걸음은 이보다 더 깊은 계곡의 경계를 넘어 티베트로 향했다. 히말라야를 넘어 송첸감포 왕에게로 시집가던 그 길에서, 그녀는 왕관보다 먼저 불상을 품고 갔다고 전해진다.


부리쿠티가 가져간 것은 혼인이 아니라 신심이었고, 혈연이 아니라 가르침이었다. 그때부터 이 길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불 법(佛法)이 오가는 길이 되었다.


나는 다리 위에서 낮게 진언을 외웠다. “옴 마니 반메 훔.” 부리쿠티 공주가 품에 안았을 불상의 무게를 상상하며. 그녀의 걸음마다 티베트의 땅은 조금씩 달라졌고, 티베트 신들이 머물던 곳에 사원이 세워졌다. 조캉 사원의 첫 기도는 어쩌면 이 길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송첸감포 왕과 부리쿠티 공주의 혼인은 역사로 남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수행의 이야기였다. 한 사람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 그 세계를 부수지 않고 바꾸는 일.


검이 아니라 연민으로,

명령이 아니라 합장으로.

그들이 건넌 것은 국경이 아니라 무명(無明)이었고, 그들이 놓은 다리는 돌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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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다리 아래로 파곡하 계곡에서 흘러 내려온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이 흐른다. 윤회의 강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흐름. 다리는 그 위에 잠시 놓인 하나의 생애 같다.


우리 또한 이 다리를 건너지만, 공주처럼 무언으로 건너고 싶었다. 말없이, 다만 기도를 안고. 티베트에서 비운 시간을 네팔의 삶 속으로 다시 내려놓기 위해.


이 길은 처음부터 우정의 다리였다. 나라와 나라의 우정이 아니라, 신앙과 신앙의 우정. 네팔의 불심이 티베트로 흘러가고, 티베트의 수행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원형의 길. 부리쿠티의 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그 오래된 행렬의 맨 끝에 서 있을 뿐이다.


네팔의 땅에 발을 디디며 나는 합장했다. 송첸감포 왕을 향해서도, 공주를 향해서도 아닌, 이 길을 가능하게 한 모든 무명의 순례자들을 향해.


다리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깊이 울렸다. 역사란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건너고 있는 기도의 형식이라는 것을.


우정의 다리를 건너면 코다리란 네팔 국경 도시에 도착한다. 다리 하나를 두고 한쪽은 장무, 한쪽은 코다리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같은 마을이지만 나라가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코다리의 허름한 이민국에서 네팔 비자를 받았다.


네팔은 나에게 티베트에 비해 비교적 익숙해진 나라다. 나는 2001년부터 네팔을 오갔다. 처음에는 네팔의 문화와 눈 덮인 히말라야에 이끌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길을 나섰다. 페와 호수에서 안나푸르나의 신비한 설산을 바라볼 수 있는 포카라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잔잔한 페와 호수 위로 아침저녁으로 표정을 바꾸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자연스레 평정되고 무언가 깊은 영감을 건네받는 듯했다.


그러다 네팔 여행은 곧 산골 오지의 가난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봉사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열두 명의 아이를 선정해 초동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돕는 작은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인연은 해마다 이어졌고, 어느새 장학생들 수는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의 성장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매년 네팔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자 네팔은 여행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 돌아가 쉬는 고향 같은 땅이 되었다.


그런 인연이 있는 네팔을 이번에는 티베트 순례길 끝에 우정의 다리를 건너 밟게 되었다. 낯선 땅을 지나 익숙한 땅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오래된 기억과 감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길은 같지 않았지만, 마음이 향하는 곳은 여전히 그곳이었다. 그래서 이번 네팔행은 여행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마음속에 품어온 고향을 다시 찾아가는 귀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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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지프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카트만두로 가기로 했다. 지프는 카트만두에서 온 지프라 다행히 저렴했다. 카트만두로 가늘 길 위에서 우리는 어느 계곡에서 네팔 음식 달 바트로 점심을 먹었다.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에 들어서면 신의 형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힌두교의 신들은 침묵 대신 서사를 가진다. 이름과 얼굴, 상징과 계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인간의 삶과 세계를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불교가 세계로부터 물러나려는 지혜라면, 힌두교는 세계 안에서 질서를 세우려는 지혜다. 하나는 해탈을, 다른 하나는 조화를 말한다.


이 두 신앙의 대비는 충돌이 아니라 질문을 만든다. 과연 인간은 세계를 떠나야 자유로워지는가, 아니면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해야 하는가. 티베트에서 나는 욕망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지만, 네팔에서는 욕망이 신성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꽃과 향, 음식과 음악이 제물로 바뀌는 순간, 삶은 신앙과 분리되지 않는다.


카트만두 타멜의 밤거리 풍경


카트만두, 그리고 타멜 거리는 이 질문의 실험장이 된다. 이곳에서 불교와 힌두교는 교리로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같은 골목에서 살아간다. 불상 옆에 힌두 신상이 놓이고, 진언과 세속의 소음이 같은 시간에 울린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공존이며, 혼합이 아니라 병존이다. 타멜은 종교가 서로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타멜의 혼잡은 종교적 결핍이 아니라, 존재의 과잉이다. 사람, 소리, 색, 욕망이 넘쳐나지만, 그 속에는 질서가 있다. 신은 이곳에서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누구도 완전히 고요해질 수 없기에, 누구도 완전히 고립되지 않는다. 수행은 더 이상 산속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걷는 방식과 바라보는 태도로 옮겨진다.


이 길 위에서 나는 깨닫는다. 불교적 침묵은 힌두적 충만을 부정하지 않고, 힌두적 충만 또한 불교적 비움을 배제하지 않는다. 두 신앙은 서로의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하나의 방식으로는 완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간은 비워야 하고, 동시에 살아야 한다.


우정의 다리는 그래서 단순한 국경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두 태도를 잇는 은유다. 세계로부터 물러나는 길과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 다리 위에서 교차한다. 나는 그 사이를 건너는 순례자이며, 어느 한쪽에 머무르기보다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다.


타멜의 밤거리에서, 나는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다. 대신 내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묻는다. 고요를 잃지 않은 채 소란을 통과하고 있는가. 침묵을 품은 채 세계와 관계 맺고 있는가. 아마도 수행이란, 이 질문을 놓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티베트에서 시작된 침묵은 네팔에서 해체되고, 타멜에서 다시 하나의 사유로 재구성된다. 신은 하나의 이름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여러 방식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이 길은 말없이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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