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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Dec 29. 2022

첫 이삿날, 내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개똥벌레......



생각보다 이삿날은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계약한 원룸이 애초에 비어있던 방이었기에, 최대한 빠른 날짜로 잡았거든요.


이사 박스 몇 개를 옷가지와 책들로 채우고 나자, 더는 담을 게 없었습니다.

침대와 책상, 책장은 너무 커서 원룸엔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았고,

냉장고와 TV, 식탁, 컴퓨터는 물론 식기부터 수저, 물컵 하나까지 전부 다 부모님의 것이었으니까요.(사실 침대랑 책상 등도 다 부모님 꺼...)


당시 그래도 직장생활을 5-6년은 했을 때인데, 내 돈은 모두 어디로 갔나 잠깐 반성 겸 현타 시간을 가지고...

(대충 술값과 뱃살에 투자했겠죠 뭐...)

생각보다 더 단출한 짐을 가지고 파주로 출발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짐이 워낙 없어서 용달차 하나만 부르면 되었다는 것...




침대 대신 사 온 토퍼를 깔고, 책들을 대충 쌓아두고 나니 더 이상 정리할 게 없었습니다.

가재도구라고는 원룸에 딸린 옵션인 작은 냉장고와 세탁기, 그보다 더 작은 TV와 TV받침이 끝.

아, 그래도 자식놈이 독립한다고 부모님이 3구짜리 인덕션과 전자레인지를 사주셨는데

둘 곳이 없어서 일단 대충 던져두었습니다. 인덕션은 도저히 자리가 없어서 곧 반납...했고요... 또르르.

아직까진 그래도 넓고 휑해 보이는 원룸을 바라보며 잠깐 철없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오... 이 정도면 훌륭한 미니멀리스트인 것 같은데... 돈 쓸 일 없겠는데...?'


살아보니 그럴 리가요. 혼자 사는 데도 갖춰야 할 게 왜 그리 많은지,

가뜩이나 얼마 없던 통장의 숫자들이 빠르게 사라져 갔습니다. :)

아무튼, 필요한 것들은 차차 채우기로 하고 일단 생필품을 사러 마트로 향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칫솔부터 세제, 식기, 수저, 각종 조미료... 등등등...!)


1차 장보기를 마친 모습. 자취생의 필수품은 역시 소주와 갈아만든배... 읍읍.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 모든 게 다 돈이었음을...!

장을 보고 나서, 부모님이 사준 인덕션을 당근에 팔아버려야 되나 하는 고민이 잠깐 들었지만

그건 너무 불효자새ㄲ.. 아니 불효자식인 것 같아서 일단 보류하고...


이삿날은 역시 수육에 소주지!!! 라는 생각으로 수육용 고기도 호기롭게 사왔는데

김치가 없는 건 차치하더라도, 수육용 냄비조차 없다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 ^^... 너무 행복...




아무튼, 첫 자취다 보니 생각보다 사야 할 게 너무 많았고, 장보기 한 번으론 택도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이사하고, 짐 정리하고, 장 보고 했더니 배가 너무 고팠는데...

수육용 고기는 그림의 떡이 되었고...

자취를 시작하면서 했던 다짐인, '음식은 웬만하면 만들어 먹자!'는 결심을 첫날부터 멋지게 때려치우고,

배민을 켜서 식사를 시켰습니다... :)


밥상도 없던 슬픔...


다행히 배달되는 곳은 꽤 많더라구요? 그래도 이사 첫날 기념으로 참치를 한번 시켜보고...

그리하여 시작된 소주 타임...이 아니고

천천히 마시... 아니 먹으면서, 찬찬히 공간을 둘러봤습니다.

나에게 더, 꼭 필요한 건 무엇인지. 무얼 더 채워야 하는지...


우선 꼭 필요한 냄비, 그릇 등은 식재료가 상하기 전에 빨리 요리해서 먹어야 하니 마켓컬리에서 시키고...

(마켓컬리 만세! 네이버 장보기 만세! 사실 마트를 또 가긴 넘나 귀찮았습니다...)


가재도구들은 인터넷 쇼핑을 이용했습니다.

밥솥, 공기청정기, 작은 책상과 의자, 전자레인지 등을 놓을 서랍장, 에어프라이어 등등.

쭈욱- 하나씩 사다 보니 돈이 아주 술술 써지고 술도 술술 취하고 아주 좋더라구요...................

(이제 혼자 집에서 술쳐먹는다고 등짝 때릴 부모님도 없고...ㅋㅋㅋ)


그리고 결제내역을 보다가 깨달았습니다.


몇달 안에 취직 못하면... 나, 파산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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