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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이슬 Jan 05. 2023

한국어가 제일 어려워

매일 하나씩 배웁니다



어제 편집을 하다 "어느새 창밖엔 비가 들었다."라는 문장을 보았다.

여상하게 넘어가다, 다시 그 문장으로 돌아와 한참을 노려봤다.

예쁜 표현이지만, 사실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가 듣다'는 표현을 처음 봤을 땐, 별생각 없이 '비가 ()내렸다.'라고 수정했었다.

초교 때 작가님도, 사수도 아무 말이 없기에 그냥 그러려니 넘어갔다가,

재교 때 확실히 수정 반영을 하려다 혹시나 싶어 사전을 찾아봤다.



놀랍게도 듣다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소리를 듣다'와 같은 의미.

그리고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다'라는 의미.


황급히 교정부호를 지우고, 원문을 되살렸던 기억이 있다.

'듣다'의 활용형이 '들어', '들으니', '듣는'이니

"창밖에 비가 들었다"는 문장은, 창밖으로 빗물이 방울져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 문장을 한참 동안 노려본 건, 앞서 말했다시피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책에 실린다면, 독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일 터다.


1) 별생각 없이 쭉 넘어간다.

2) 뭔 헛소린가 하고 사전을 찾아보거나, 출판사에 항의한다.


여기까지 생각해 보곤, 원문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다.

사전을 찾아보거나 출판사에 항의하는 독자분들은, 우리말에 '비가 듣다'라는 예쁜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새삼 또 생각했다.

대체 우리말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어떤 건 떼도 되고 붙여도 되고(띄어쓰기엔 원칙과 허용 법칙이 있다),

어떤 건 무조건 떼야 하고, 어떤 건 무조건 붙여야 하고(예외의 법칙도 있다),

어떨 땐 띄어쓰기 하나에 의미 자체가 달라져 버리질 않나,

생전 처음 보는 별 희한한 단어가 버젓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질 않나,

그 와중에 맞춤법은 또 매년 분기별로 개정 발표를 한다.

표준어가 아니지만 자주 쓰이는 단어를 새롭게 등재하기도 하고, 사장된 단어를 없애기도 하고,

표기를 달리하기도 하고, 어떤 단어에 내재된 의미를 없애기도 하고 추가하기도 한다.

편집자라면 당연히, 전부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 행복.^^


분기별로 개정되고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이렇듯 '표준어'는 그대로 멈춰있는 게 아니라,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바뀌고 있어서 시대에 따라 맞춤법과 자주 쓰이는 단어들이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같은 원고를 편집한다고 하더라도, 50대와 30대 편집자가 잡아내는 오탈자가 다르다. 지저스.

아주 멀리 간다면, '~읍니다.'체가 있겠고, 조금 덜 간다면 '짜장면, 자장면'이 있겠고 좀 가까이 간다면 '로브스터, 랍스터'가 있겠다. 얼마 전까진 '로브스터'만 표준어였다. 빌어먹을


그래서 편집을 볼 땐, 보통 크로스 체크(담당자와 담당이 아닌 편집자가 서로의 원고를 한 번씩 체크해주는 것)를 한다. 물론 그래도 오탈자는 어디선가 자연발생해 책 속에 나타난다. :)




그래도... '윤슬'이라는 단어가 꽤 생소할 때도 있었지만 여기저기 사용되면서 이제 대부분 익숙하게 쓰는 것처럼, 언젠가 아이유 님이 <비 듣는 밤> 같은 곡을 딱 내면서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어요. 호호호." 하시면 '듣다'는 표현도 모두에게 좀 익숙해지지 않을까.

가끔, 아니 사실 자주, 한국어가 참 지읒리을맞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예쁜 표현들은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편집자의 아주 작은 바람을 담아. :)




여기서 우리말이 아주아주 지읒리을맞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실 수 있도록 간단한 퀴즈 하나만 내보겠습니다!

아래 두 문장의 띄어쓰기는 어떻게 될까요?


1) 온데 간데 없을 뿐더러

2) 나 너 안본지 한달 다 돼감

















정답은, 1)은 전부 붙이고 2)는 한 글자 한 글자 전부 떼야 합니다. :)

비 듣는 날에 소주 한잔해야 하는데, 파주는 내내 눈만 내리네요. 후후.

여기서 '한잔하다'도 띄어쓰기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데...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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