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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Oct 21. 2021

차가운 양상추가 가져다준 따뜻한 말

가끔씩 뜻하지 않은 곳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Can you pass me the salsa?"

(살사 좀 건네줄래?)


이게 내가 미국 유학 가서 홈스테이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금발머리를 가진 셋째 언니에게 처음 들었던 말이다. 설사? 살사? 가뜩이나 처음 먹어보는 멕시칸 음식이어서 어떻게 먹는 건지 힐끔힐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보면서 먹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살사를 달라니 도대체 무슨 음식인가 싶었다.  다시 금발머리 언니가 나를 쳐다보며 내 옆에 놓여 있던 빨갛게 으깨진 토마토소스 같이 생긴 것을 가리켰다.


'아, 이거 이름이 설사?살사?이구나...'


이제는 살사가 멕시칸 음식의 일종으로 칩에 찍어먹는 토마토소스인걸 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햄버거, 피자 등 외국음식이라면 질색하는 한식만 먹어본 토종 한국인이었다. 그러니 멕시칸 음식은 태어나서 당연히 본 적도 없었기에 이름을 듣고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과연 유학 온 게 잘한 걸까.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데. 잠시 미쳤었나 보다.'


사실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게 공부를 잘한다거나, 영어를 잘해서 유학을 가게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것은 물론이었고, 전체적으로 영어 문법뿐만 아니라 회화 배우는 게 너무 느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초등학생 성적표에 유일하게 "노력 바람"이라는 최하점수의 성적을 받은 것도 영어과목이었으니 내가 유학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약간 황당해하긴 했다.

 

그래서 유학이라는 건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을 때, 엄마의 지인분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의 조카가 원래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일이 생겨서 갑자기 조카가 못 가게 되어 빈자리가 나는데 혹시 나를 유학 보낼 생각이 있냐고. 미국으로 벌써 자신의 아들과 딸을 유학 보내신 분이라 우리 엄마 아빠를 설득하시면서 미국 유학을 가면 다른 건 몰라도 영어 하나는 제대로 배워오니깐 보내보라고 넌지시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는 지인분의 말을 듣고 나를 유학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내 초등학교 동창들이 유학을 많이 가고 있었고, 나한테도 남들이 누리는 건 다해주고 싶으셨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가족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는 그 말을 듣고 큰 결심을 하셨다. 나중에 내가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을 유학시켜주자고.


이렇게 이 악물고 어떻게 서든 돈을 벌어서 유학을 보내야겠다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중학생이었던 나는 너무 철이 없었다. 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였나 보다.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었고, 엄마 아빠가 갑자기 유학 갈 생각이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앞에 닥친 중간고사를 벗어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 갈래."라는 말과 함께, 엄마 아빠 없이 홀홀단신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섰다.


철없이 엄마 아빠가 해준 밥이나 먹고살다가 갑자기 준비도 없이 남의 나라, 남의 집에 살게 되었으니 힘든 건 당연했다. 영어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 생활 등 그 모든 것을 배우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했으니 말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생소해서 나는 이 홈스테이 집에서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영어도 맨날 버벅거리고 학교 공부도 어렵고, 이대로 있다간 한국으로 돌아가서 중학교 1학년부터 다시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다행히도 나는 점차 학교생활에도 익숙해졌고, 핵가족인 우리 가족과는 달리 아들 둘과 딸 둘이 있는 이 대가족 미국인 집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내가 한동안 적응 못하고 버벅거렸던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음식 준비였다. 아줌마는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항상 음식은 다 같이 준비해야 한다며 언니들과 나에게 음식 준비를 시켰다. 그렇게 따지면 다 같이 먹는 음식이니깐 사실 아들들도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어쨌든 언니들과 나에게만 시켰다.


그러나 평범한 중학생 1학년 짜리가 태어나서 음식 준비를 해봤으면 얼마나 해봤겠는가. 물론 어릴 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한번 음식 준비를 해본 적이 있긴 하다. 내가 초등학생 3학년이었을 때 한창 드라마 대장금이라는 프로가 방영되고 있을 때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주인공이 음식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던 나머지, 드라마 주제가인 "오나라 오나라~아주오나~"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엄청난 양의 미역국을 끓여버리는 바람에 고기도 안 들어있는 밍밍한 미역국을 3일 내내 먹은 적은 있다. 이렇게 미역국을 준비해본 것 외에는 음식 준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처음 보는 미국 스타일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니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메인 요리는 항상 아줌마 담당이었고, 그 외 것인 샐러드와 디저트만 우리 담당이었기 때문에 나름 준비할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줌마가 나에게만 샐러드 준비를 맡겼다. 주로 언니들과 함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샐러드에 필요한 재료 따위는 외우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언니들이 학교에서 늦게 오는 날이어서 나 혼자 샐러드 담당을 맡게 된 것이다. 혼자서 샐러드를 만들기 싫었던 나는 내 나름 반항아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며 아줌마에게 말했다.


"저 이거 한 번도 혼자 해본 적 없어서 잘 몰라서 못하겠어요."


하지만 아줌마는 그렇게 호락호락 한 사람이 아니었다.


"괜찮아. 원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어. 일단 해봐."

"그러다가 이상하게 만들면요?"

"괜찮아. 잘할 때까지 또 하면 돼. 나 집에 다시 올 때까지 샐러드 만들어줘~고마워~"


역시 아줌마에게 이런 변명 따위는 먹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기억을 더듬으며 냉장고에서 차례로 당근, 피망, 토마토, 오이, 적배추, 비트, 해바라기씨, 건포도, 그리고 양상추를 꺼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찬물을 콸콸 틀어놓고 야채들을 씻은 뒤에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먼저 양상추를 뜯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뭐지? 엄청 뻑뻑한데? 안 익었나?'


위층에 있던 오빠한테 물어보려고 했지만 이내 한 번도 샐러드 준비도 안 해본 오빠가 뭘 알겠느냐며 혼자서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양상추를 손으로 뜯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태까지 이렇게 단단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이상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양상추 분해작업을 하고 있었던 나는 이내 양상추를 내려놓고 식칼을 집어 들었다.


'그래, 안 뜯어지면 칼로 잘라버리면 되지. 이런 게 바로 생각의 전환.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거다. 후후후'


그렇게 나는 그 단단한 양상추를 무자비하게 칼로 분해해버렸다. 양상추 분해작업을 마친 뒤, 여유롭게 원래 해왔던 것처럼 나머지 야채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드라마 대장금을 떠올리며 내가 장금이가 된 것 마냥 야채들을 송송송 썰은 뒤 샐러드를 마무리 지었다.


'크으, 이 정도면 됐다. 훌륭하다.'


나는 중학생이 이 정도 했으면 엄청나다고 생각하며 왠지 모를 자부심을 느낀 뒤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 내 방으로 올라갔다.


아줌마는 집에 돌아온 뒤 평소처럼 메인 요리를 준비했고, 다들 저녁시간이 되자 한 명 한 명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내려와!!! 저녁 먹자!!!!!"


아줌마가 1층에서 우리들을 크게 부르자 나를 포함한 오빠, 언니 그리고 동생이 쪼르르 차례로 내려가 완벽히 세팅된 테이블에 앉았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다들 샐러드를 그릇에 담고 드레싱을 뿌려먹나 싶었는데,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샐러드가 엄청 딱딱한데?"


그러자 다들 샐러드를 뒤적거리며, "그러게?"라는 말을 덧붙였다.

알고 보니 내가 열심히 칼을 들고 힘들게 분해한 건 양상추가 아니라 바로 양배추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분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었다.

오빠가 양상추와 양배추를 구분도 못하는 내가 웃겼는지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거 만들 때 이상한 점 못 느꼈어?"


모를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해서 한 건데 왠지 억울했다. 물론 오빠는 나를 혼내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악의 없이 물어본 건데 괜히 짜증도 나고 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울컥했다. 심지어 내가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한 결과물이 완전히 망했으니 더 속상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텐데 타지에 있어서 그런지 엄마 아빠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아줌마가 나 대신 입을 열었다.


"모를 수도 있지. 오늘 혼자서 처음 해본 거니깐. 누구나 실수는 해. 괜찮아. 혼자서 처음 해봤다는 게 대단한 거야. 아리. 수고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혼자서 샐러드 만들라고 한 아줌마가 원망스러웠는데 아줌마의 그 한마디가 나에게 꽤나 위로가 되었다. 별거 아닌 것에 울컥했으니, 별것 아닌 것 같은 말에 위로를 받았나 보다. 다행히 내 눈에서 뛰쳐나오려고 했던 눈물은 다시 속으로 자취를 감쳤고, 비록 평소와는 달리 매우 딱딱한 샐러드였기 했지만 우리들은 무사히 그 딱딱한 샐러드를 메인 요리와 함께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일 이후에는 내가 딱딱한 샐러드 따위를 만드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무려 15년 전에 일어났던 별것 아닌 것 같은 그날의 나의 양상추 에피소드는 아줌마의 한마디 한마디와 함께 내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누구나 실수는 한다는 것. 하지만 해낼 때까지 일단 해보면 되는 거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발전도 없는 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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