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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Oct 21. 2021

그놈의 아이스크림이 뭐길래

욕심은 거짓말을,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는 초등학생이라면 그 누구라도 부러워할 법한 "슈퍼"를 운영하셨다. 나 또한 엄마 아빠가 슈퍼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았고 뿌듯했다. 좋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돈을 안 내고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먹는 것에 딱히 흥미가 없었던 탓에 과자 종류는 많이 먹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가 슈퍼를 하신다는 사실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환장할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아이스크림이었고, 아이스크림을 언제든지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슈퍼 가게 딸"인 것이 뿌듯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조그마한 아이가 어떻게 그 많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쭈쭈바부터 시작해서 통에 들어가 있는 아이스크림까지 안 먹어본 아이스크림이 없을 정도로 어떤 종류던 일단 아이스크림이라면 무조건 먹어댔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슈퍼를 처분하고 냉면가게를 하신다고 했을 때, 이제부터는 아이스크림을 많이 못 먹게 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나를 엄청 슬프게 했다. 내 걱정과는 달리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아이스크림 사 먹을 용돈은 꼬박꼬박 챙겨주셨고, 덕분에 나는 매일 하루에 두세 개 정도의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내 뱃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학을 간 뒤 나는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부모님도 아닌 홈스테이 아줌마에게 장 볼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부탁하기에는 아줌마를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았고, 그렇다고 내가 편의점에서 손쉽게 사 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유학 간 곳은 꽤나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편의점이나 슈퍼가 많지도 않았거니와, 길가에 있는 슈퍼는 가끔씩 총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했다. 이 부분은 아줌마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절대로 슈퍼는 가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원래 뭔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고약한 본성이 아닌가 싶다. 그날따라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나는 계획을 세웠다. 평소에는 아줌마가 차로 학교에서 집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아줌마는 가끔씩 우리들 보고 운동을 좀 할 필요가 있다며 학교에서 집까지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오라고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아줌마에게 운동도 할 겸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겠다고 한 뒤,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아줌마가 절대 가지 말라는 그 총기사건이 종종 일어나기도 하는 슈퍼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계획을 세웠다. 아줌마는 그런 내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학교가 끝난 뒤 집까지 걸어오겠다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드디어 기다리던 방과 후, 아줌마는 차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학교에 도착했고, 나는 그런 아줌마와 아이들에게 인사한 뒤,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슈퍼는 학교와 집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길을 걸어가며 먹을 생각이었다. 콘 아이스크림을 살 예정이었기 때문에 먹고 남은 쓰레기는 집에 거의 다 도착하면 위치해있는 길가 쓰레기통에 버리면 정말 내 계획은 완벽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가방은 무거웠지만, 발걸음은 가볍게 걸어갔다. 그렇게 10분 정도 이상을 걷자 슈퍼가 보였다. 최대한 슈퍼 안에서 빨리 아이스크림을 사고 나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주머니에 고이 넣어뒀던 5달러를 꺼내 들고 슈퍼 쪽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 순간.


"빵!" 하고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나는 너무 놀래서 내가 쥐고 있던 5달러를 땅바닥에 떨어트렸다. 누가 채갈까 봐 다시 잽싸바닥에 떨어진 나의 소중한 5달러를 집으려는 순간, 다시 크게 "빵!"하고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렸다.


순간 느낌이 싸해서 경적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니, 아까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갔던 아줌마였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얼굴 색깔이 길가에 있던 소화전처럼 빨갛게 변했다.


"아리!!"


아줌마는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길가에 서있던 나를 보고 손짓하며 얼른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거의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물거품이 되어버린 나의 원대한 계획을 뒤로 한채 땅에 떨어진 나의 5달러를 쥐고 아줌마 차에 탔다.


차에 타자마자 나는 침착하게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다.

"저 걸어가려고 했었는데요?"

그러자 아줌마가 세상 해맑은 목소리로, "아, 비 온다고 하길래 네가 비 맞을까 봐 데리로 왔지."


아, 아줌마는 왜 이럴 때만 천사 같지. 내 계획은 다음에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아줌마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근데 너 손에 뭘 쥐고 있는 거야?"


아까 너무 당황해서 내가 떨어트린 5달러를 급하게 줍고 바로 차에 타느니라 미쳐 주머니에 넣지 못한 내 5달러를 보고 아줌마가 말을 건넨 것이다. 나는 다시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려고 5달러를 꺼내서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았다. 아줌마가 분명 슈퍼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했는데, 몰래 가려고 했던걸 지금 들키기라도 하면 절대로 나중에 슈퍼에 갈 수 없을 것은 자명했고, 도대체 어떤 벌을 받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누가 봐도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당황하지 않은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아~어~걷다가 5달러 줏었어요! 하하하하하하~아엠 쏘우 럭키걸~"


그러자 아줌마가 태연하게 답했다.


"아 그래? 그럼 그냥 길가에 다시 두고와. 아마 흘린 사람이 찾을 수도 있잖아. 원래 길가에 있는 돈은 줍는 거 아니야."

"네?"

"길가에 있는 돈은 줍는 거 아니야. 어서 다시 두고와."


이런. 거짓말을 감추려고 했던 나의 또 다른 거짓말은 결국 나에게 더 큰 불행을 가져다주었다. 내 돈이 맞는데 뭘 두고 오라는 건가.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아줌마는 돈을 빨리 다시 바닥에 두고 오라는 눈빛을 보냈다. 결국 나는 그날 아이스크림도 먹지 못하였고, 나의 멀쩡한 5달러까지 미국 길바닥 한복판에 기부까지 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내 멍청했던 계획을 다시 시도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5달러를 통해 뜻하지 않게 비싼 교훈을 얻었다. 거짓말의 엔딩은 새드엔딩 (sad ending) 뿐이라는 걸.



한 가지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일곱 가지의 거짓말을 필요로 한다.  -마틴 루터
한 개의 거짓말을 토한 사람은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스무 개의 거짓말을 생각해 내지 않을 수없다.  -포프

커버 이미지 출처: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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