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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약을 이렇게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루비의 엉뚱 발랄 유쾌한 생존기 #5 바다가 보이는 교실 대신 복도

by 창창한 날들


루비는 30년 동안 종사한 사교육에서 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10개월 동안 몸과 마음을 쉬었어요.
다른 직종에 문을 두드렸지만 면접에서 연거푸 떨어지고 쿠팡의 1년 계약직에도 채용되지 못한 날 현타가 왔죠.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 아무도 나를 채용해 주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나를 채용해야지 별 수 있나.'
루비는 막다른 길이라는 심정으로 학원을 개원합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고, 제일 잘하던 것도 그것이니까요. 다만 이혼의 상처가 있는 안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열기로 해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학원에 학생이 쉽게 모집될 리 없지요. 2개월 만에 드디어 신입생이 한 명 생기지만 그걸로 끝. 상담전화도 없는 학원. 과연 루비는 성공, 아니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창창한 날들이 '루비'라는 3인칭 인물을 내세워 서술해 가는 수기입니다.



프랜차이즈라서 일정 거리를 두고 개원해야 했다. 기존 지점의 위치를 보며 이 정도 떨어지면 충분하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루비 원장님, K 원장님이 거기로 오시면 안 된다고 하네요. 10월에 자기네가 확장해서 들어갈 사무실이 옆 건물이래요. 배곧초 근처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던데... 어때요?"

지사장은 학원생이 많은 K 학원 원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한 역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루비는 아니었다.

학원생이 많은 학원은 드라마나 영화로 치자면 주연 배우나 다름없다. 본사는 K 원장의 말을 우선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식 계약을 한 것도 아니면서 그 장소로 가지 말라는 K 원장도 이해가 안 되고, 루비를 퍽 아끼고 챙기던 지사장이 조율을 하기는커녕 수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의아했다.

루비는 K 학원 규모만큼 크게 차릴 형편도 못 되었고, 기존 지점의 견제를 부담으로 안은 채 보란 듯이 성공할 자신도 없었다. 축복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미움과 시기를 받고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아직도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신이 웃겼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루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루비는 지도앱을 열고 배곧초등학교 주변을 살펴보았다. 상가 건물이 여섯 개가 있었다. 배곧신도시 전체에서 구석진 곳이었다.

영화관, 쇼핑몰, 식당 등이 밀집해 있는 중심상가의 반대편이라 학부모나 학생들의 이동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장점이라면 보증금과 월세가 매우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루비는 배곧초 근처에 빈 사무실이 있는지 검색한 뒤 세 군데 부동산과 약속을 잡았다.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검색하니 어중간한 위체에 정류소가 있어 결국은 걸어야 했다. 루비는 오월의 그날처럼 카카오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동네를 눈으로 확인할 겸, 주민들의 동선도 파악할 겸.

배곧초를 향하여 S 아파트 한가운데를 달렸다.


조경을 잘해 놓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삼사십대로 보이는 여성들, 유치원생과 초등생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마침 저학년들이 하교하는 시간인 듯했다.

루비는 아이들을 보니 반가웠다. 미래에 함께 공부할지 모르는 아이들이라니.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는 루비에게 아직은 습한 팔월의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배곧의 바람은 안산과 확실히 달랐다.



두 부동산이 보여준 사무실은 입주 날짜나 조건이 루비와 맞지 않았다.

루비는 세 번째 부동산에서도 마음에 드는 곳을 못 찾으면 귀가하기로 했다.

여섯 개 건물이지만 제각기 규모가 제법 컸고, 학원이 많았다.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 무리를 보니 안심이 됐다.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건물마다 공실이 많다는 것이었다. 중심상가에서 본 사무실 건물도 그랬는데 배곧 전체의 문제 같았다.


세 번째 부동산을 찾아가면서 루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잘 생각해라. 싸다고 덜컥 계약하지 말고. 늘 싼 걸 택하는 습성이 여기서도 터지는 것이냐?'

자기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가진 돈에 맞춰야지 어떡하냐? 아니면 시작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


세 번째 부동산(하늘부동산) 문을 열자 키가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한 여성이 루비를 맞았다. 통화할 때 자기만 아는 저렴한 곳이 있으니 바로 보러 가자고 했던 그녀의 말을 떠올리며 백수 생활 1년 만에 다시 개원하려는 상황을 밝혔다.

"저도 수학 학원 20년 했어요. 어떤 게 어려우신지 잘 알죠. 잘 봐 드릴게요."

대표는 신뢰 가는 말로 루비를 안심시켰다.


루비는 대표가 임대인과 통화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어느 쪽에도 기울게 행동할 것 같지 않았다. 루비는 그녀의 꼼꼼함과 정확성도 마음에 들었다.

루비는 사무실 계약을 한 뒤 언니 동생으로 사귀어도 좋겠다고 덜컥 마음을 열었다.


다리가 짧은 편인 대표가 뛰듯이 걸어가는 뒤에서 루비도 바짝 붙어 걸었다. 도대체 어떤 사무실이기에 그렇게 싼 걸까.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루비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뜸한 지역이라는 것과 별개로 창밖으로 하늘이 가득 보이는 게 시원했다. 창가로 다가가니 야트막한 전원주택이 보였다.


상수도가 없어 정수기 설치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 에어컨은 있지만 난방기구가 없다는 점 등이 저렴한 월세의 이유였다. 루비에겐 나중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 대수롭게 보이지 않았다.

복도에서 저녁놀이 물들어가는 바다가 보였다. 루비는 웬만한 어려움은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약할게요."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정경
전원도시 풍경이 주는 여유로움
복도에서 보이는 바다와 저녁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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