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출입처
“사쓰마와리 도나요?” 기자 지망생들이 언론사를 지원할 때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왜 기자 지망생들은 매번 언론사에 사쓰마와리가 있는지 물어보는 걸까.
나는 한 번도 출입처 기자였던 적이 없다. 주간지 기자는 출입처를 두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서 출입처를 잘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얄팍한 경험으로 왜 출입처 제도가 없어지지 않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이 글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조국 전 장관 사태’를 거치며 기자들의 출입처 제도가 국민으로부터 유례없는 지탄을 받았다. 검찰 기자단의 폐쇄적인 운영방식·검찰발 받아쓰기 기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의 조국 수사 당시 출입처 제도가 ‘검찰·언론 유착’의 상징이 됐다. 최근에는 채널A 기자와 검찰 고위 인사가 제보자를 압박해 유력 정치인의 비위를 캐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또다시 출입처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출입처 제도는 언론사들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취재관행이다. 한국 언론의 역사는 출입처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입처 기자단의 폐쇄적 운영, 특권 논란은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됐다. 언론계는 언론 개혁이란 ‘출입처 제도 폐지’라고 말할 정도다. 수년간 출입처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지만, 여전히 강력한 취재관행이자 구조다. 출입처 제도는 한국 기자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욕망의 출입처
메이저와 마이너
기자사회에서 출입처는 아주 중요하다. 기자의 생로병사가 출입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재, 기사 작성, 이직, 인간관계까지 출입처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온갖 개개인의 욕망이 나타난다. 이 욕망이 출입처를 작동시키는 강력한 메커니즘이 아닐까 한다.
기자는 메이저와 마이너로 나뉘는 계급사회다. 출입처 기자실 안에서 기자들의 계급 분화가 일어난다.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은 출입처로부터 각종 취재 편의와 특권을 누린다. 그 어떤 기자보다 가장 먼저 기삿거리를 받을 수 있으며, 이게 곧 ‘단독’ 기사가 된다. 기자가 궁금한 걸 물을 때면 출입처는 언제든지 신속하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출입처 기자실에는 메이저 언론사 기자를 위한 지정석도 마련돼 있다. 반면 마이너 언론사 기자들은 이런 보이지 않은 차별 혹은 다름(?)으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매 순간 느낀다.
우선 언론계에서 메이저와 마이너를 나누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창간 횟수와 신뢰성 그리고 영향력 등이다. 메이저 언론사는 국내 10대 종합일간지, 주요 경제일간지, 공영 통신사, 지상파 3사로 분류된다. 준메이저 언론사는 종합편성채널, 유명 인터넷 언론사, 기타 통신사 등이 양분하고 있다. 그 외는 다 마이너 언론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쉽게 말해 기자가 명함을 건넬 때 취재원이 단번에 알아차린다면 메이저, 갸우뚱하면 마이너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기자의 힘은 '명함'에서 나온다.
하지만 기자세계에서 다른 기준이 있다. 그게 바로 출입처다. 출입처는 언론사의 기득권 혹은 특권을 상징한다. 해당 언론사가 각 정부기관에 얼마나 많은 출입처를 두었느냐가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른다. 정부기관 출입처의 개수가 그 언론사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언론계에서는 이런 등식이 있다.
‘출입처 확보 빈약=취재환경 어려움=매체력 약함=처우 열악’
이 등식은 적중률이 상당히 높다. 기자 지망생들 사이에서도 이 등식은 아주 유의미하게 작용한다. 출입처가 중요하다는 언론계 생리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기자 지망생들은 언론사를 지원할 때 얼마나 많은 출입처를 확보했는지부터 알아본다. 기자 지망생들조차 먹고사는(처우·복지·월급) 문제보다 출입처가 얼마나 있느냐를 묻는 건 의미심장하다.
기자 지망생들이 매번 언론사를 지원하기 전에 “사쓰마와리 도나요?” 물어보는 건 결국 출입처가 기자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특히 사쓰마와리는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출입처 문화의 꽃이다. 일단 사쓰마와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사쓰마와리는 일본말이다. 언론계 은어다. 사쓰마와리는 갓 입사한 수습기자가 서울에 있는 경찰서를 순회하며, 기사를 쓰게 하는 제도다. 일명 ‘마와리 돈다’라고 한다.
수습기자들은 사쓰마와리를 하는 동안 인간 이하의 삶을 체험한다. 일단 퇴근이 없다. 매일 경찰서 숙직실에서 2~3시간 쪽잠을 자며, 사건을 찾아 새벽 거리를 헤맨다. 시간마다 선배에게 취재 보고를 해야 한다. 전화할 때마다 선배는 온갖 욕설과 미션임파서블에 가까운 지시를 내린다. 그동안 많은 수습기자가 이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 사쓰마와리는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는 통과의례였다. 심지어 옛날에는 사쓰마와리를 돌지 않은 기자는 기자로도 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사쓰마와리는 폐지되는 추세다. 또 언론계 안팎에서 사쓰마와리가 속보성 위주의 기사를 난발하며, 무리한 취재로 저널리즘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쓰마와리는 기자 지망생들이 언론사를 선택할 때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자사회에서 사쓰마와리가 메이저와 마이너 언론사를 가르는 핵심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출입처의 꽃
사쓰마와리
사쓰마와리는 서울지방경찰청(서울시경) 기자단(출입처)에 가입된 언론사 기자만 할 수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울시경 출입 기자단은 대체로 메이저 언론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경 출입 기자단은 언론사들이 가입하기 가장 어려운 출입처다.
투표를 거쳐 출입 기자단 가입을 승인해야 한다. 준메이저에 속한 TV조선조차 지난해 8년 만에 서울시경 출입 기자단에 가입했을 정도다, 서울시경 출입 기자단은 가입사를 늘리고 싶지 않다. 출입 기자단이 많아질수록 특종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비판을 받고 있는 검찰 기자단 또한 서울시경 기자단과 똑같은 구조다. 그래서 이런 등식이 또 성립된다.
'서울시경 기자단 가입=취재환경 좋음=매체력 좋음=메이저 언론'
출입처에서는 기자의 명함에 따라 대접이 달라진다. 기업 홍보팀은 메이저-준메이저-마이너 언론사에 따라 밥값을 책정한다. 각종 단독성 기사는 메이저 기자들이 가장 먼저 받는다. 취재 편의도 메이저 기자가 우선이다.
동료 기자들에 따르면 마이너 언론사는 출입처에서 푸대접을 받는다. 메이저 언론사 기자에게는 취재협조를 잘해주지만, 마이너 언론사 기자에게는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거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한국에 언론사가 1만8969개나 있다. 출입처 관계자들은 마이너 언론사 기자의 명함을 보며, “흠…이런 언론사가 있었군요”라고 면전에 무의식 말하기도 한다. 과거 기업은 언론사에 꼼짝을 못 했지만, 이제는 그 관계도 역전됐다. 언론사는 광고주인 기업이 갑이다. 출입처 담당자들의 언론사 차별은 어쩌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메이저 언론사 기자 입장에서는 "마이너 언론사 기자의 지나친 열등감이 아니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동료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일어난 차별로 상당한 감정 소모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술을 마실 때마다 자신이 출입처에서 겪었던 일들을 술안주로 꺼낸다.
그 내용이 대체로 출입처에서 일어난 차별과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이 누리는 특권 혹은 편의에 대한 시기 질투였다. 열패감에 다시 메이저 언론사 공채를 준비하는 기자도 많다. 더럽고 서러워 기자를 관두는 사람도 있다.
출입처 속에서 버티다 보면 마이너 기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감정이 뒤섞인다. 메이저 언론사라는 기득권에 대한 증오와 동경이다. 대체로 동경이 증오를 압도하는 것 같다. 마이너 언론사 기자는 어떻게든 더 좋은 언론사에 이직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정공법은 출입처에서 단독 기사를 많이 쓰는 거다. 마이너 언론사 기자가 더 좋은 매체로 점프를 하려면 기사로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 기자들에게 이런 출입처 내부의 열등감은 취재의 원동력이 된다. 꾸준히 단독성 기사를 쓰면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진다. 출입처 기자들이 사이에서 점차 인정도 받는다. 퍼포먼스를 유지하면 타사 출입기자 선배를 통해 더 좋은 언론사로 이직할 기회가 분명히 생긴다. 이를 발판으로 이직에 이직을 거듭하면 어느새 나름 기자 세계에서 클래스 있는 계급을 성취할 수 있다.
출입처에 숨어 있는
기자의 생로병사
기자 이직은 출입처 안에서 만든 기자 인맥으로 이루어진다. 보통 기자들은 같은 언론사 기자들보다 타사 기자들과 더 친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매일 출입처 출근하며, 타사 기자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커피도 한 잔 하게 되고, 서로 출입처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출입처 담당자들과 밥이나 술을 같이 먹다 보면 안 친해질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둘 출입처 타사 기자들과 인맥을 만들면 이직할 기회도 많이 생긴다. 일종의 스카우트이라고 보면 된다.
출입처 홍보팀 관계자가 기자의 이직을 주선하기도 한다. 기업 홍보팀 관계자들은 방대한 기자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출입기자부터 언론사 고위직 간부들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홍보팀 관계자들이 자신과 돈독한 출입기자를 다른 언론사에 추천해 이직하는 일도 기자 사회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기자들이 홍보팀 관계자들에게 출입기자의 평판을 묻기도 한다. 그래서 기자는 홍보팀 관계자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 혹은 출입기자를 하다가 해당 기업 홍보팀으로 스카우트되는 일도 많다.
출입처 제도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은 기자실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기자 개개인들의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기자에게 출입처는 인간적 욕망을 실현하기에 충분히 효용성이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단맛 쓴맛 짠맛을 맛보며, 좌절도 하지만 기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도 크다.
출입처는 한국 기자에게 생로병사와도 같다. 신출내기 기자가 가장 먼저 하는 건 출입처에 찾아가 명함을 돌리는 거다. 수년간 수없이 많은 출입처를 옮기며 기자 생활 대부분을 기자실에서 보낸다. 그곳에서 평생 함께할 동료 기자들도 만나고, 수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기자에게 출입처는 저널리즘을 넘어서 인간적인 삶이 묻어 있는 공간일 수 있다.
많은 기자가 출입처 폐지를 반대한다. 그들에게 출입처는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출입처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건 기자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그동안 서 있던 공간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 공간에서 누구보다 자부심 가지고 일했던 기자들 입장에서는 출업처 폐지에 강한 반감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PS: 여행 다니는 동안 글을 하나도 못 썼네요.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도저히 다닐 수 없어서, 2주 전에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내일이면 자가격리가 끝나네요. 앞으로 꾸준히 글 올리겠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