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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Oct 13. 2021

스물네 번째 날.

끝없이 이글거리던 땅, 스페인

A said : 

 

7.16 Tortosa PM ??:??


 아침 일찍부터 Joan이 주방에서 분주하다. 주말을 맞이해 Joan도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가기로 했는데 마침 방향이 비슷해 길도 안내해 줄 겸 같이 가기로 한다. 수십 일 동안 자전거에 붙어있느라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다른 두 명과는 달리 Joan의 얼굴은 들뜬 기색이 역력하다. 함께 갈 동행임에도 불구하고 그 들뜬 모습을 부러워함이 묘하다. 음식을 건네는 든든한 Joan의 얼굴을 보아하니 오늘 하루는 길 헤매는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한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지만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는 그 상투적인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날씨다. 일찍 길을 나선 터라 지나가는 시내 골목길은 자전거 기어가 굴러가는 쇳소리만 가득하다. 온 거리를 홀로 차지한 듯 까닭 모를 뿌듯함에 기분 좋게 Joan 뒤를 따라간다. 곧 Joan의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모습을 드러낸다. 첫 대면이지만 웃는 얼굴만 봐도 유쾌해진 다. 역시나 다들 자전거와 친숙한 듯 드러낸 몸들이 튼튼하다. 이내 친구들이 다 모여 출발하고 앞서 달리는 그들을 따라 마음 편하게 달린다. 달리면서도 계속 몇 명씩 일행에 합류한다. 둘을 제외한 다른 자전거들은 산악용이었던 터라 가끔 거친 길을 지날 때 덜덜 떨리던 이빨과 엉덩이를 주체하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무리 지어 다니는 길도 꽤나 재미있다. 


 신나게 달리다 갑자기 모두들 길을 멈춘다. 말다툼을 하나 착각할 정도로 열띤 토론을 하던 Joan과 친구들이 이내 무언가 설명을 해 준다. 오늘 그들이 가려던 방향은 멈춘 곳부터 길이 갈라져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Joan이 친구들과 잠시 헤어지고 객들이 갈 길을 더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하루를 재워주고 여기까지 데려다 준 일도 너무 고마운데 그래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던 지라 손을 내젓는다. 지도로 보이는 길이야 얼마 안 되어 보이지만 만약 Joan이 바래다준다면 친구들에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은 수십 km. 그런 민폐를 끼치기에는 신세 진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내젓는 손과는 반대로 숨겨지지 않는 불안한 표정을 본 것인지 Joan은 끝끝내 함께 가겠단다. 마지못해 내젓는 손을 본 것인지 만 것인지 Joan은 친구들과 신경 쓰지 않고 다시금 앞으로 갈 길을 주제로 열띤 논의를 벌인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불과 수 분 전 괜찮다고 깃털 같이 가벼운 거절을 했던 기억이 부끄러울 정도로 되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길이 맞나 전전긍긍하던 대부분의 날들과 달리 길을 잘 아는 누군가가 앞에 있는 그 시간은 마음도 몸도 너무나 즐겁다. 스페인에 와서는 항상 길을 잘못 찾았는지 고속도로에 붙어 다니느라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기 일쑤였지만 이 구역의 주인인 Joan을 따라다니는 길은 너무도 다르다. 멋진 풍경들에 여유로워 보이는 이 곳 사람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고, 아기자기한 골목 곳곳을 어렵지 않게 쏘다닐 수 있다. 뙤약볕이긴 하지만 바닷가의 벤치에 앉아 간단히 먹는 점심도 여느 때와 다르게 즐거운 마음으로 먹는다. 튼튼한 두 다리로 종횡무진하던 Joan과 달리 한 짐씩 짊어지고 낑낑대는 두 객은 한참 뒤로 처지거나 넘어지고 민폐인 경우가 많다(특히 빨간색의 탈 것을 타던 누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고 조용조용 말을 붙여주는 Joan은 끝끝내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곳까지 바래다준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서도 가는 길을 일러주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마지막까지 든든해 보인다.

 얼마 가지 않아 오늘의 목적지인 Tortosa에 도착한다. 쨍쨍한 햇빛과 무더운 날씨와 닮은 듯 거리와 건물들에는 밝은 색이 가득하다. 다만 걷는 데도 땀이 송골 맺히는 한낮의 날씨 덕에 길거리에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데다 훌륭한 인솔자를 따라온 덕에 다행히 가장 더운 시간이 오기 전에 도착한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도 빨랐고 드물게 있는 일에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오늘 만날 친구 Marc의 집 주변은 행인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터라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도착했다고 연락을 한 후 주인을 기다리는 그 잠깐이 짧지 않다. 찰나의 걱정을 뒤로하고 멋있게 머리를 뒤로 묶은 채 나타난 Marc 역시 대책 없는 자전거광이다. 전날 만난 다부지고 튼튼했던 Joan과 다른 점이라면 중년 아저씨의 푸근한 자태 정도이지만 만나자마자 온 얼굴에 싱글벙글한 미소를 가득 띄우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하는 그 역시 이전의 반기던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마을에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이사를 준비하는 중이라는 집은 어수선했지만 안내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집주인 덕에 불편함은 느끼지 못한다. 짐을 놓고 잠시 숨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가 들어도 무모하게 들렸을 계획에 대해 당사자보다 훨씬 심각하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언을 한다. 한껏 조언을 하다 말로만은 한참 모자랐는지 집 어딘가에 박혀 있던 거대한 지도까지 들고 온다. 두 손으로 들고 보기에는 너무 큰 지도를 침대에 한껏 펼치고 이런저런 방도를 함께 고민한다. 잔뜩 이마를 찌푸리며 고민해주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한껏 더러워진 몸을 깨끗이 한 후 무더운 날씨에 지지 않기 위해 주점에서 간단히 맥주 한 잔을 들이켠다. 불그스레한 얼굴에 나눈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고마운 마음에 몰래 술값을 내려던 이방인을 손님에게 그럴 수는 없다고 붙잡는 엄한 Marc의 표정이 왠지 훨씬 웃기다. 간단히 음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자신의 이웃과 함께 하자는 제안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가족도 아니고 갑작스레 생면부지의 이웃과 식사를 하는 것도 생소한데 심지어 그 장소도 식당이 아닌 이웃집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웃집에 들어서자 미리 이야기를 해둔 듯 한참 분주하다. Marc도 오늘 처음 만난 마당에 당연히 처음 마주하는 이웃의 가족이 사는 집에 있자니 민망함이 몰려든다. 괜스레 하릴없이 집 안을 서성이자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여주인이 웃으며 간단한 주전부리와 맥주를 권한다. 취기에 기대어 다행히 서먹함이 없어질 때쯤 저녁식사가 시작된다. 자국어를 사랑하는 이웃집 가족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서는 중간에 Marc의 수고로움이 필요했지만 왁자지껄 만찬을 벌인다.


 난생처음 보는 맛있는 음식들에 술까지 모자람이 하나 없다. 다음 날 겪을 후유증이 영향을 줄까 주로 맥주 한 캔 정도로 음주의 강도를 유지해 왔지만,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한국인들이 기특해 보였는지 계속해서 내오는 이런저런 술병들을 오늘은 사양하기가 힘들다. 간만에 만나는 도수가 있는 술을 무리 없이 들이켜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오고 가는 술잔은 바쁘기만 하다. 계속 내어오는 음식의 접시만큼 웃음도 점점 쌓여간다. 갓 배운 동방예의지국의 주도(酒道)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며 두 손으로 술을 받는 여주인의 킬킬대는 모습에서 즐거운 저녁시간의 모습이 대번 드러난다. 항상 허기가 졌던 두 여행객이 음식을 사양할 정도로(이건 꽤나 심각한 일이다.) 마시고 먹고 나서야 겨우 식사가 마무리된다. 처음 겪어 본 ‘옆집 이웃’과의 식사였지만 늘상 있었던 일처럼 인사를 하고 잠자리로 향한다. 

P.S.1 Joan과 함께 오는 길이 즐거웠던 만큼 허둥대며 길을 헤맸을지도 모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Tortosa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날은 너무나도 덥고 한시라도 빨리 찌든 몸뚱이를 편한 곳에 누이고 싶었지만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일찍 도착했음을 알리기가 망설여졌다. 눈치를 보아하니 T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둘은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선다. 각자 달콤한 마실 거리를 하나씩 달고 파라솔 아래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무더위를 피한다. 워낙 건조한 날씨여서 그늘 밑에만 들어가도 더위는 훨씬 가신다. T형은 노트북으로 보고 싶었던 영상을 감상하고 다른 한 명은 내내 다 읽지 못한 책을 꺼내 들어 읽는 것인지 조는 것인지 애매한 자세를 취하며 각자 한껏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카페에 들어서기 전에 둘 사이에 나눈 이야기 중에 좀 쉬고 싶다는 말이 겹쳤다. 생각하기에 따라 우스울 수도 슬플 수도 있겠지만 이 날 Marc에게 연락을 하기 망설였던 이유는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힘들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핑계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오던 일에서 느꼈던 ‘피로’ 정도이다. 줄곧 신세를 졌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삶의 운을 이 여행에 몰아 쓴 것만 같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과장을 일절 보태지 않고 가정해 봐도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여정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런 고마움들과는 별개로 항상 스스로가 ‘이방인’ 임은 자명했나 보다. 즐겁기만 했던 식사 시간이나 대화들에서 느낀 행복과는 다른 무언가가 줄곧 쌓여왔음을 느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몸이 고달플수록 그 피로를 해소하기 위함에는 혼자만의 편안한 시간도 필요했나 보다. 줄곧 고단했던 여정에서 생각을 정리하든 혹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점점 커져왔고 쌓여온 그것들이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넘은 분기점이 딱 이맘때였을까. 카페 앞에서 T형과 눈을 마주치며 나온 묘한 웃음의 저의는 스스로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P.S.2 Marc가 저녁 식사를 옆집에 사는 이웃들과 함께 하자는 말을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 했다. 언어적으로 이해를 못했다기보다는 이웃과 저녁을 함께 한다는 행위가 생소했다. Marc 본인과도 만난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다짜고짜 일면식도 없는 옆집 가족을 끌어들이다니.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였다. 안장 위에 오르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배가 불렀던 날이고 혈중 알코올 농도가 가장 높았던 날이었다. 유쾌한 부부와 시도 때도 없이 부모님의 뽀뽀 세례를 받던 사춘기의 딸과 말도 통하지 않는 두 검은 머리 사이에는 어색함은 찾을 수 없었다. 중간에 끼어 열심히 통역하는 Marc를 두고 외교관 뺨칠 만큼 훌륭한 문화교류를 해내었다. 한국과 옆 나라 일본에서 난 오토바이니 타이어니(정작 그 나라에서 온 이 들은 그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이것저것 비교하며 치켜세워주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귀여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주머니의 호탕한 웃음소리나 뜻은 모르지만 정신없이 빠르게 움찔거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주인아저씨의 입담은 Marc가 미처 설명하기도 전에 이해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소하게 느껴졌던 만찬은 그때 마셨던 스페인의 막걸리를 한 잔 더 하고 싶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T said : 

 

DAY 22

-

사람 좋은 마크 아저씨가 말하길, 

여행을 가는 이유는 

건물도, 유적지도, 음식도 아니고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란다.


그래서 우리가 버스를 타던 비행기를 타던 신경을 쓰지 않는 거겠지.

사람 좋은 마크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다.


어제 후안의 답변과 사뭇 다른 답변이다. 

사람들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들 살아간다. 

다른 이를 흉내 내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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