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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Oct 22. 2020

어머니의 새우젓과 아이의 알초

27.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해마다 시월이면 두 어머니를 모시고 광천 젓갈 시장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광천까지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아흔 안팎의 노인들에겐 쉬운 길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 분은 시월만 되면 마음이 설렜다. “사위(혹은 셋째), 새우젓 사러 언제 가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어조로 두 분은 물으셨다. 아니 채근하셨다. 

그 설레는 여정을 지난해엔 하지 못했다. 홍은동 어머니가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탓이었다. 김장을 한두 달 앞두고 매번 재촉하시던 마곡동 어머니도 아예 입을 떼지 않으셨다. 어찌 신발을 한 짝만 신고 다닐까. 지난해엔 시월이 되고 시월이 지나도, 김장철이 다가오고 또 김장을 끝내고도, 어머니나 우리는 광천의 ‘광’자도 꺼내지 않았다. 

추석 연휴 때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다. “올해는 가셔야지요?” “글쎄다, 가보고는 싶지만~.” 두 눈이 반짝 빛나다가 어두워졌다. “홍은동 어머니가 그러신데 어떻게 갈까 싶다.”

“엄마, 오늘 요양병원을 들러서 왔는데, 어머니랑 통화만 했어. 마곡동에서 부친 녹두빈대떡이랑 송편 두고 간다고. 포도도 한 상자 가져왔으니까 다른 할머니들이랑 나눠 잡수시라고 했어. 어머니가, 잠깐 말을 잇지 못하더니 ‘마곡동 어머니는 건강하시지? 고마워서 어쩌나, 잘 먹겠다고 전해달라’고 말씀하셨어.” 

아내가 에둘러 설득했다. 마곡동 어머니는 잠자코 듣기만 하셨다. 그 틈을 노리고 내가 끼어들었다. “홍은동 어머니도,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혼자라도 젓갈 시장에 나녀오시길 바랄 거예요. 올해는 다녀오시죠.” 어머니는 ‘그러마’고 어렵게 동의를 했다.  

얼마나 더 오겠니? 실컷 사자!

때마침 아내에게 홍은동 어머니 전화가 왔다. 저편 목소리가 모처럼 밝았다. “송편 맛있더라. 여기 있으니 어디 송편 맛이라도 볼 수 있겠니. 사부인께 고맙다고 말씀드려라. 콩 소가 담백하면서 달고, 떡살은 부드러워 먹기 좋았다. 사부인과 통화라도 하면 좋겠지만~.” 아내는 마곡동 어머니에겐 내색도 하지 않았다. 통화하다가 두 분이 갑자기 울컥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아이도 데려갈까 싶어 말씀드렸다가, 한마디로 ‘킬’ 당했다. 그 먼 길을 아이 데리고 어떻게 가니? 아이 힘들다. 안 된다. 

아이와는 동네 산책으로 대신했다. 아이는 다음 세 가지 조건만 채워지면 어디든 따라나선다. 첫째 산이와 함께 간다. 둘째 산책 중간 지점의 편의점을 골라 아이스크림 그것도 알초(초코아이스크림) 먹는다. 셋째 무동 태워준다는 확신을 준다. 그러면 백사실도 가고 개천 따라 동네 한 바퀴를 할 수도 있다. 이번 목적지는 자하수퍼다. 

산이를 데려가면 할아버지도 유리하다. 아이가 힘들다며 목말 태워달라고 조르면 산이를 핑계 삼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아이는 나보다 산이를 더 아낀다. 내가 산이 목줄을 쥐고 있는 동안은 무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이는 산이와 간식도 나눠 먹는다. 개 간식으로 주로 싼 알래스카 산 명태포를 주는데, 아이는 산이에게 하나 주고 저도 하나 입에 물고, 산이에게 두어 개 더 준다. 평소엔 명태포 달라는 일이 없지만, 산이와 함께라면 맛도 있고 재미도 있나 보다. 아이 엄마가 개 소시지를 구해왔는데, 그것도 산이에게 주고 저도 하나 먹으려고 해서 기겁한 적이 있다. 무슨 찌꺼기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데~.

추석 연휴가 끝나던 날이었다. 아이 엄마 아빠와 함께 마곡동 왕할머니네 갔다 나오는 길이었다. 이번에도 다짜고짜 산이네서 자겠다고 졸랐다. “산이에게 인사도 안 하고 왔다”는 게 이유였다. ‘인사는 다음에 하고 오늘은 엄마 아빠랑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다’고 달랬다. 길동 할머니네, 세검정 할머니네를 돌아 마곡동 왕할머니네를 순회한 터였다. 아이는 한마디로 우리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럼 인사만 하고 올게.” 돌아서면 보고 싶은 산이였으니, 산이 목줄을 잡은 할아버지한테 목말 타겠다고 떼를 쓸 리 없다. 

세검초 다니지 않을래? 얼집 가기도 싫거든!

집에서 5분쯤 비탈을 내려가면 세검정초등학교다. 신라 무열왕 때 전장에서 순국한 화랑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절 장의사가 있던 곳이다. 조선 성종 때까지 대과 급제자들이 그곳에서 공부를 심화하도록 했을 정도로 중시하던 절이었다. 그런 절이 연산군 때 파괴됐다. 연산군이 도성 안 원각사를 기생들이 거주하는 주색청으로 바꾸고, 정릉을 지키던 흥천사를 왕실 마구간으로 쓰면서 장의사를 연산군의 주색잡기 놀이터로 바꿔버렸다. 전각은 없애버리고 화계를 만들어 꽃밭으로 꾸미고, 이궁을 지어 시쳇말로 ‘룸살롱’으로 만들었다. ‘용재총화’에서 성현이 “도성 밖 유람처 중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나다”고 했던 장의사는 그렇게 사라졌다. 학교 운동장 구석에 남아 있는 당간지주가 장의사의 영화를 말없이 증거한다.

숙종 때 한양도성의 북쪽을 지키는 군사들을 훈련하던 연무대가 설치되었고, 1747년 영조 23년엔 한양성 외곽 경기도 지역의 군사 일을 맡았던 총융청을 두어 3백여 칸의 건물이 들어섰다고 한다. 고종 때는 신식부대인 별기군의 훈련장이 되기도 했다. 일제 말기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세검정초등학교는 우리 가족과 인연이 특별하다. 나와 딸, 아들은 이 학교 동문이다. 나는 60년대 말에, 아이들은 1990년대에 이 학교를 다녔다. 서울에선 아니 요즘 대한민국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연이다.

“여기가 할아버지, 엄마와 삼촌이 다니던 초등학교야.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전학 와서 5학년 때부터 다녔고, 엄마와 삼촌은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이 학교에 다녔지. 주원이도 내년엔 유치원에 가고 그 다다음 해엔 초등학교에 가게 될 텐데, 그때 세검정초등학교를 다니는 건 어때? 그러면 할아버지, 엄마, 삼촌의 후배가 되는데, 그러면 참 좋겠다.”

아이는 생뚱맞은 표정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지금 어린이집도 가기 싫은데.’

학교 밑 큰길가 버스정거장에는 조정에 한지를 공급하던 조지서가 있었다. 공장에서 화학 종이가 생산되기 전까지 종이 제조는 국책사업이었다. 국가기관에서 노비들이 만들거나, 아니면 절집 등 천민 취급을 받던 집단에 할당해 생산하도록 했다. 특히 절집은 물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터라 한지 공출의 부역에 시달렸다. 당시 절집의 가장 큰 민원이 한지 공출량을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충남 공주의 마곡사는 드나들던 권세가들을 설득해 공출량을 대폭 줄였다고도 한다.  

조지서 자리엔 목재소가 있다. 50여 년 전 처음 서울로 이사 왔을 때부터 있던 목재소다. 나무를 다루는 곳이니 한지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옛날엔 가공도 했는데 요즘엔 판재나 각목 등 가공된 것들만 판다. 

육교를 건너면 홍제천으로 이어지는 세검정천이다. 신영동 삼거리에서 평창동 개천과 복개된 구기동 개천이 합쳐서 흐르니, 수량이 제법 된다. 그러나 반석과 모래뿐인 건천이어서 일주일쯤 가물면 실개천만 남거나 웅덩이만 남기고 물이 마르기도 한다. 올해는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진 덕분에 그야말로 우당탕 여울져 흐르는 장관을 실컷 봤다.

개천 따라 산이가 세 번쯤 오줌으로 영역 표시를 할 때쯤 나타나는 곳이 ‘자하수퍼’다. 내가 세검정 동네에서 두 번째로 살던 집이다. 그때도 그 자리에 가게가 있었다. 한 칸 정도의 그야말로 구멍가게였는데, 거기에 딸린 한 칸 방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내가 살던 곳이다. 지금은 방을 터서 가게 내부가 제법 커졌다. 

서울에 연쇄점이 열 집 건너 하나씩 생길 정도로 많아졌는데 어떻게 저 구멍가게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까? 나는 자하수퍼 앞을 지나칠 때면 매번 궁금했다. 마침 그곳을 찾아온 일본인 관광객에게 방문히게 된 사연을 듣고 나서야 의문이 풀렸다.

수려한 세검정천은 하천정비로 반쪽이 됐다. 멀리 세검정 정자.

부끄럽게도 나는 자하수퍼를 포함해 세검정에서 50년 가까이 살았지만, 이곳 풍광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매일 놀던 곳이 개울이고 반석이었으며, 매일 보는 것이 북한산 능선과 산자락이었다. 그저 뛰어놀기 좋고 물놀이하기 좋은 곳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죽 보기 좋고, 놀기 좋았으면 왕이나 권력자들의 이궁이나 별서가 즐비했을까. 겸재 정선은 세검정 계류와 산세를 진경산수로 남겼다. 세검정 정자 위로는 탕춘대가 있고, 개울 따라 조금 더 내려가면 석파랑 별채(대원군의 별장)가 있다. 맞은 편 산비탈엔 춘원 이광수의 서실이 있었다. 

하천 정비 사업으로 옛모습을 대부분 상실했지만, 눈부시게 희고 넓은 반석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울물, 물속을 떼지어 몰려다니는 버들치, 그것을 노리고 꼼짝않는 해오라기와 오리들은 여전하다. 그런 풍광은 서울 시내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연산군은 탕춘대 말고도 계류의 반석에 수조를 파 음탕을 즐겼다고도 한다. 

자하수퍼 주변은 이런 모습을 한눈에 불 수 있는 곳이니, 세검정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눈 밝은 드라마 촬영지 사냥꾼이라면 그런 곳을 놓칠 리 없다. 자하수퍼는, 한때 뜨거웠던 드라마 ‘내조의 여왕’의 주요 촬영지였다. 윤상현이 김남주를 기다리며 쭈쭈바를 먹던 곳이다. 잘 나가던 드라마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그대’의 주요 촬영지도 이곳이었다. 일본인 관광객은 ‘사랑스런 그대’를 보고 이곳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그곳 물소리의 푸른 빛은 남아 있지 않다. 선잠에 가끔 들리곤 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숨죽인 말다툼 소리만 전해줄 뿐이다. 희고 너른 반석 위에 부서지는 물방울은 밤마다 밀려오던 치통에 찔끔거리며 흘러나오던 눈물로만 기억된다. 

자하슈퍼 평상. 막걸리 수만 병, 아이스크림 수만 개의 흔적이 묻어 있다.

자하수퍼 앞 평상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것은 그런저런 시름겨운 사연과 풍광 때문일 것이다. 아이에겐 그저 아이스크림 먹기에 딱 좋은 곳이겠지만. 

수퍼에서 아이는 초코아이스크림, 할머니는 멜로나를 먹었다. 나는 우선 양쪽에서 한 입씩 베어 먹었다. 한입에 다 삼킬 듯하다가 엄지손톱만큼만 베어 물자 아이의 얼굴이 낮달처럼 환해졌다. 그래도 아이는 불안했던지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서둘러 먹어치웠다. 조그만 입 주변이 온통 초코아이스크림 범벅이다. 못내 아쉬웠나보다, 막대를 빨다 못해 씹기까지 한다. 

그때다. 나는 숨겨두었던 내 아이스크림을 불쑥 내밀었다. 아이가 감동한다.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다. 얼굴에선 햇살이 부서져 흩어진다. 반석을 흐르는 계류도 그만큼 맑고 밝지는 않다. ‘할아버지는 역시 믿을 만해.’ 

마곡동 어머니와는 시월 둘째 주에 광천젓갈시장에 다녀왔다. 단골인 형제상회 매장으로 들어가자 매니저인 주인장 딸이 몹시 놀라고 궁금한 표정이다. 아내와 눈을 마주치면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눈치챈 아내가 털어놓았다. “시어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셔서 못 왔어요. 왜 안 오셨나 궁금하셨죠?” “어른들이 많이 오시는데, 같이 오던 분이 안 오시면 왜 안 오셨는지 묻지를 못해요. 혹시나 해서요.” 

새우젓 외에도 창란 명란젓 오징어 낙지 어리굴젓 등 모두 60만 원어치 가까이 샀다. “얼마나 더 오겠냐. 왔을 때 실컷 사야지.” 아내는 홍은동 어머니가 즐기시는 짭짤이(새우젓에 가진양념을 버무려 만든 짭짤한 반찬)용으로 최상품 육젓 500g을 더 샀다. 

싱싱한 간첩엽은 마곡동 어머니의 기쁨이자 원기소다

돌아오는 길에 홍성 5일장에서 볶음용 고추, 장아찌용 도라지, 꼬지 나물용 호박 등을 바리바리 산 뒤, 구항리 홍성한우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마곡동 어머니가 즐기시는, 싱싱한 간 천엽이 서비스로 거의 무제한 나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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