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는 이제 누군가와 말을 시작할 때 필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주제인 것 같다. 특히 인싸의 대표 격이라는 ENFP는 '인간 골든 리트리버'라고 할 정도로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 좋아해 주기보다는 귀여워해주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만.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ENFP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주위에 행복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니던 시절 말이다.
ENFP의 삶은 나쁘지 않다. 특히 MBTI가 유행한 뒤로는 오히려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이전에는 그저 '해맑고 산만한 애'로 치부되던 특징들이 'ENFP' 한 단어로 정리되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모든 것을 용인받고 귀여움까지 받는, 그런 상황들을 누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릴 적에는 내가 ENFP인 채로 평생을 살 줄 알았다. 특히 _NFP라는 3개의 알파벳은 나를 구성하는 주축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난 사람들에게 평생 귀여움 받을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나의 MBTI는 ENFP와는 거리가 먼 INTP이다. 친구들의 고민 상담소였던 내가 어쩌다 공감형에서 현실형이 되어버린 걸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라고 묻는다면 나의변화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ADHD 치료라고 대답할 것이다. 부모님도 느낄 정도로 나의 삶이 극적으로 바뀐 것이 바로 ADHD 치료를 시작한 이후이니 말이다.
성인 ADHD를 진단받고 ADHD에 대해 탐구해 보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다면, 나는 바뀐 것이 아니라 원래 성향이 드러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진짜 ENFP가 아니었다는 것도.
여러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세계 인구 중 단 8퍼센트만이 해당한다는 ENFP 유형. 그중 몇은 ENFP로 위장된 '가짜 ENFP', 즉 ADHD인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그들은 '불안정한 ENFP'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물론 모든 ENFP가 ADHD라는 말은 아니고, 모든 ADHD인들도 ENFP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ENFP를 검색하면 ENFP의 특징들을 적어둔 게시글들마다 몇 가지의 공통된 서술이 나온다.
'ENFP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이며, 생각과 행동이 독특하다. 솔직하고 걱정이 없어 보이나 속이 깊은 이들이 많고, 감정의 기복도 크다. 계획하기보다는 몰아서 일을 처리하고, 회복이 빠른 것이 특징이다. 단순 암기에 취약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변화가 없고 반복적인 일상을 싫어한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ENFP의 가장 큰 특징이다.'
... 무언가가 떠오르는 특징들이 아닌가? ENFP라는 단어를 ADHD로 바꾸어도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이들은 ADHD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해서, 나 또한 이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 ENFP로 나타났지만, ADHD 치료를 시작하자 위와 같은 특징이 일부 사라지고 MBTI 검사 결과는 INTP가 나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나의 'ENFP 스러움'을 싫어했고, 소위 말하는 '불안정한 ENFP'였다. 그래서 나의 MBTI를 숨겨 보기도 하고, 바꾸어 말하기도 해 보았으며, MBTI에 관심이 없는 척도 해 보았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너 엔프피(ENFP) 같아...'였다.
어느 성격유형이나 그 특징이 과하면 단점이 된다. 나의 경우 ENFP 특유의 장점이라고 불리는 나의 특징들이 너무 과하고 버겁게 다가올 때가 있어서 그렇지 않은 다른 이에게 질투나 열등감을 느끼고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지 못했다. 내가 언제나 어느 분야에서든 우위를 점하고 있어야만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불안정한 ENFP 혹은 가짜 ENFP의 위험성이 바로 이것이다. 겉으로는 밝고, 실제로도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본성과 맞지 않아 어둠은 더욱 깊어지고, 이로 인한 죄책감도 함께 커져 결국 자신을 해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불안정한 ENFP는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ENFP는 건강한 ENFP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MBTI로 변하기도 한다. 특히 ADHD의 경우 ENFP의 껍데기가 벗겨지게 되는 것 같다.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현재, 나는 이전보다 인간관계도 많이 좁아지고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다. 말이 없어지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ENFP이던 시절이 그립나?라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아마 'YES'일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받는 에너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걱정 없이 받아들이고 퍼뜨리던 때가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맞지 않는 성격을 억지로 내 몸 속에 욱여넣어 스스로 상처를 받았던 이전보다는 확실히 지금이 편하다. 몸도, 마음도.
혹시 나처럼 장점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화살이 되어버려 스트레스를 받는 ENFP가 있다면, 또한 그것이 어릴 적부터 지속되어 왔다면 한 번 ADHD를 의심하고 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