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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Jun 24. 2024

여름 선칠(禪七)

올해도 여름 선칠을 시작했습니다. 여름 선칠은 겨울과 달리 짧은 편이라 이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올 여름의 선칠 중 영화 스님은 샌프란시스코 법장사(Dharma Treasury Temple)에서 머무르시면서, 매일 법문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기간동안 법장사에서만 선칠을 하는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위산사와 산호세 금림사, 한국 도량에서도 사람들이 모여서 선칠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선칠이란 중국 정통 선가에서 내려오는 집중적으로 좌선 수행을 하는 기간을 뜻합니다. 이 기간동안 우리는 모든 걸 멈추고 좌선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새벽 3시부터 밤 12시까지 1시간 앉고, 20분 걷는 일정을 반복하는데, 영화 스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법문을 해줍니다. 주말엔 『유마경』과 『화엄경』 강설을 합니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는 일년내내 선칠을 위해 복을 짓고 준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이 기간은 실로 중요합니다.


저는 출가 전부터 선칠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렜습니다. 선칠 수행이란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과정이지만, 그걸 버텨내면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망가진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출가 전엔 사업을 했었는데, 선칠을 위해서 미리 선칠 일정을 플래너에 적어놨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업 제안이 들어와도 이 기간엔 모두 거절했습니다. 직원들에게도 이 기간동안 절에 가서 있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사실 선칠이 없었다면 저에겐 사업에서의 성공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마음의 명료함을 가져다 주고,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매일 명상을 해도 사업에서 오는 극심한 스트레스는 조금씩 조금씩 날 잠식시켰지만, 선칠 덕분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선칠 기간동안 사람들이 많이 와서 정진하지 않으면 안타깝습니다. 나 같으면 모든 걸 제쳐두고 절에서 먹고 자면서 선칠 수행을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누구든 수행하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일정표는 매우 어려워보이지만, 그냥 도전하는 마음으로 하면 되는 겁니다. 


저도 처음 선칠에 참여했을 때 결가부좌는커녕 그냥 법당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선칠 하러 갔습니다. 영화 스님은 잘 앉지 못하는 사람도 선칠 동안 절에서 다른 일을 돕는 것도 수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앉아서 한 시간 만에 계속 도망가고 싶은 마음만 생겼습니다. 앉아있는 시간보다 공양간에서 돕고, 사람들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선칠은 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더 


그 후에도 선칠은 늘 괴로웠습니다. 선칠 시작 후 3~4일은 늘 너무 괴롭고 졸립니다. 그래도 그냥 버티고 버텨야 합니다. 그 후에는 표현할 수 없는 환희로움이 시작됩니다. 결가부좌와 마찬가지로 선칠에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선만 다하면 됩니다. 의지만 있다면 실패를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실패하면서 계속 또 도전하고 도전하는 겁니다. 결가부좌로 앉아서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결가부좌처럼 선칠에서도 인내심을 얻습니다. 도망가고 싶어도 참고 참아내는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어도 계속 참아내는 것, 그 ‘끈기’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올여름엔 더 많은 이들이 선칠을 경험해보면 좋겠습니다. 정말 많은 걸 얻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앉아서 자신과 하루종일 직면해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지만, 그 보상은 정말로 환희롭습니다. 앉아서 구질구질하고 보고 싶지 않은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버리고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그곳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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