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 Knowledge vs Wisdom

현안 스님의 수행 이야기

by 현안 XianAn 스님

작성일 2021년 2월


우리가 선(禪)이라고 부르는 이 명상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선(禪)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명상법과 구별 짓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이걸 젠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그냥 단순하게 명상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위빠사나라고도 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우리의 목적이 다른 명상법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가르치는 이유는 여러분의 지혜를 열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선을 가르치는 유일한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인가요? 이건 지식과 어떻게 다른가요?


절에 다니시는 분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지혜이고, 그 밖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획득된 것이 지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말씀 이외의 모든 말은 다 지식일 뿐인가요? 그렇다면 지식은 다른 이들로부터만 올까요? 만약 지혜는 모두 부처님의 것이고, 지식은 모두 다른 사람 것이라면, 지혜와 지식 둘 다 여러분의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지식은 획득하는 것이며, 지혜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지혜로운 자가 “난 모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지혜일까요? 어떤 분들은 불교 공부를 해서 얻은 이해가 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불교인이 아닌 사람이나 불교의 지혜를 한 번도 공부하지 못한 사람은 어떨까요? 그런 사람들은 지혜가 없을까요? 그렇다면 불교만 유일하게 지혜에 대한 독점권이 있겠군요.


불교에서는 지혜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왜 불교에서 이렇게 지혜를 강조할까요? 우리는 지혜 없이 살 수 없나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가요? 여러분은 지혜가 삶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왜일까요?


여러분 모두 지혜와 지식에 대한 개념은 어느 정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우리는 살면서 모두 지식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우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구직을 위해 이력서를 쓰거나, 이사하기 위해서 임대계약서를 쓸 때 갖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이 무엇인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들 이야기하는 지혜가 무엇인가요? 특히 참선 수행자는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사실 지식(智識)은 배움의 과정을 통하여 얻는 것인데 반해 지혜(知慧)는 생각하지 않아야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마음을 써서 지식에 도달합니다. 즉 우리는 생각하는 마음을 통해서 배웁니다.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해낸다면 그것도 지식에 해당합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문제를 풀면 그것을 지혜라고 부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십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것은 경험을 통한 지식으로 간주됩니다. 불교의 선(禪)에서는 지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선에서 지혜란 우리가 생각을 멈췄지만, 문제를 풀 수 있음을 뜻합니다. 이것이 선(禪)의 비밀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도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을 멈춘 대신 지혜는 앞으로 나오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생각을 멈추면 우리의 지혜가 작동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을 멈췄을 때 내면에서 오는 것이 직관(直觀)인지 습기(習氣)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혜에서 온 것인지 습관에서 온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생각을 멈추고 해결책을 얻었지만 그 해결책이 별로 좋지 않다면 어떻게 하죠?


또는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우리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완전한 조증의 상태 (완전한 분노의 상태)에 들어가서 내린 결정은 어떤가요? 이런 경우 우리 중 어떤 이는 생각이 완전히 멈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겹겹이 여러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생기는 여러 정신활동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이 멈췄는지 멈추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불행히 우리에게 자각하지 못하는 정신활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활동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생각이 너무 복잡한 거 같아요” 또는 “걱정이 많으시네요”, “너무 불안해하지 말아요”라고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지만,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조차 못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서 “이걸 읽는 게 도대체 나한테 무슨 도움이 되지?”, “이거 읽을 시간에 부동산 공부나 하는 건데!”, “이 사람은 정말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러 생각 중에서도 우리가 항상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게 나한테 좋을까?”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항상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우리 대부분은 항상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인식조차 못합니다.


지혜란 지식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훨씬 더 잘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지혜란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의 또 다른 정의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식은 축적하면서, 그런 지식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은 훈련받지 못합니다. 달리 말해서 평생 지혜는 얻지 못하면서 지식만 획득한다면, 결국 지식을 잘못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식으로 우리 스스로를 다치게 할 것입니다. 지식만 축적하면서 지혜를 열지 못한다면, 그 지식을 바르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해치고 다치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직관은 어떨까요? 직관도 지혜일까요? 우리가 “직관적이다”라고 말하면, 그건 보통 생각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직관적으로 안다는 것은 추론이나 추정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그냥 아는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고 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관도 지혜의 일부입니다. 직관은 생각이 멈추면 작동됩니다. 여러분이 어떤 위험이나 위기에 처했을 때, 생각 없이 즉시 피하거나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때 직관이 작동됩니다. 하루는 한 꼬마가 미국 노산사 법당에서 놀다가 유리잔을 하나 깨뜨렸습니다. 그 순간 아이는 본능적으로 도망갔습니다. 생각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건 본능이었습니다. 그것도 지혜입니다. 이런 본능은 동물이 배고플 때 먹고, 목마를 때 마시는 살아남기 위한 본능과는 다릅니다.


지혜란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운영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항상 무언가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 우리는 꽤 자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반드시 지혜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지혜는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살만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아무런 지혜도 없다면 인생이 정말 비참할 것입니다.


불교의 선(禪)은 지혜를 작동시키는 체계적인 방법입니다.

우리 스타일의 참선법에서는 학생에게 아픈 다리를 참으라고 가르칩니다. 다리 아픔을 계속 참고 또 참아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 아픔이 지나가 버립니다. 다리를 풀거나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도 그렇게 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단련해서 경험한 바입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쓴 글을 이미 읽어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는 참선을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일단 결가부좌를 권하고, 아예 결가부좌가 불가능한 경우라도 “나도 언제 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도전하고 노력하시라고 알려드립니다. 처음 참선 자세를 시도할 때 반가부좌나 평좌밖에 할 수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어떤 자세로 어떻게 앉든 마음가짐은 계속 노력하면 할 수 있고,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앉는 사람도 오래 앉아있으면 다리의 아픔과 불편함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렇게 아픔과 불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선 훈련의 기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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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훈련이 여러분의 인내심을 키워줄 것입니다. 다리의 아픔을 참으면 참을수록, 여러분의 인내심도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꾸준히 단련하면, 살면서 겪는 많은 도전을 더 잘 견디고 다룰 수 있게 갖춰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매우 아프고 괴로운 곳입니다. 오직 불교의 선(禪)에서만 여러분이 삶을 더욱 살만하게 만들 수 있는 체계적 훈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선 수행은 우리가 현생에서 겪는 고통을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선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필수이며,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괴로움이 많습니다. 안 그런가요?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어떤 분은 젊었을 때 고생이 막심했기 때문에 지금이 더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몸은 어떤가요? 우리의 몸이 더 젊어지진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리의 육신은 쇄약 해집니다. 이렇게 우리가 참선수행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인생은 우리가 나이 들수록 더욱 괴로울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만족하기 어려워집니다. 아는 게 많이 질수록 만족하기 어렵고, 요구사항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서양 음식을 먹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한국음식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단조롭고, 기름기 없고, 건강한 음식이 불만스러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유럽, 중동, 인도,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의 음식을 모두 맛보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그동안 그리웠던 한국의 토속음식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거의 일 년이 되니 간혹 미국 음식이 그립기도 합니다. 저에게 아직 깨달음의 길은 멀리 있나 봅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압도적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든 중요치 않습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돈이 많든 적든,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건강하든 쇄약 하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상관없습니다.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내면의 압박감이 증가되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선 수행은 이런 삶에서 오는 압박감을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리가 선을 수행하는 이유는 삶에서 도망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선을 제대로 배우고 수행한다면 우리의 안전지대 (comfort zone)이 더 커집니다. 즉 인생에서 오는 괴로움은 선 수행으로 인해 예전만큼 힘들지 않고, 다스리기 더욱 수월해질 것입니다.


전 예전에 미국에서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했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운동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름다운 바다가 창문으로 넓게 펼쳐지고, 화려한 건물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바쁜 스케줄에도 몸 관리를 철저히 합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60세, 70세가 넘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삶을 사는데 모든 노력과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이렇게 성공적이고 천하무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마치 황제처럼 사는 이런 사람도, 젊고 이쁜 아가씨 앞에서는 무너져 버립니다. 왠지 아시나요? 여러분이 얼마나 철저한지, 얼마나 강한지 상관없이, 이 세상에는 당신을 압도할 누군가가 있습니다. 삶을 이겨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능력을 벗어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문제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희생자가 될 뿐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살면서 지식만 획득하면, 그걸로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비참해질 것입니다. 게다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인생은 더 비참해질 것입니다. 반대로 참선 수행을 통해 안전지대를 넓힐 수 있고, 통제능력과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삶에서 겪는 우여곡절을 더 잘 다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참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18-02-19 14.09.48.jpg 노산사에서 참선 중인 미국인과 유럽인들

참고자료: 영화 선사의 법문 https://youtu.be/_uL_GdZ_YEw

영화 선사의 참선 법문 : 지혜와 지식 (영어)


청주 보산사에서 비대면 온라인 참선 교실, 참선 법문, 정토 법문 등을 주최합니다. 모든 수업은 오픈 강좌로 무료입니다. 참선/명상을 배우고자 하는 여러분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도록 많은 공유 바랍니다.


참선 워크숍 매주 목요일 오후 6시 30분

누구나 참여 가능 (종교, 나이, 인종, 숙련도 상관없이 모두 배울 수 있습니다)

신청 방법 010-9262-8441 문자 하신 후 답장 유무에 상관없이 시간 맞춰서 아래 줌 미팅으로 들어오세요.

줌 미팅 ID: 839 875 9712 / 비번: chan

줌 미팅 링크

https://us02web.zoom.us/j/8398759712?pwd=UnhwTzVlMUhjK1hlSmNaUmU5Y1p1UT09


저자 소개 현안 賢安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영화 선사永化禪師(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처음 접한 후 수행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종교, 인종,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영화 선사의 지도하에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미국 전역과 캐나다, 콜롬비아, 쿠바 등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 수행법을 소개해왔다. 영화 선사의 한국 방문 시 동행하면서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 불법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현재는 스승의 뜻에 따라 한국의 보산사 (Jeweled Mountain Temple)에서 참선(챤 메디테이션)을 지도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다.


저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 - 어의운하 출판 (2021)

http://www.yes24.com/Product/Goods/9778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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