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시간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불편하고 서운한 것만은 아닌듯하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여러 장점을 동반한다.
산책을 하면서 자연을 바라다보면 거기 화사한 꽃과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미소 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 뒤엔 나 자신이 어려서 그렇게 소스라치곤 했던 지렁이, 개미, 각종 벌레, 오물 등이 함께 있다. 그렇게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나는 오래도록 좋은 것만 찾았던 것 같다. 물론 좋다는 의미는 이 세상에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가치 개념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것을 깨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 개념이란 것이 몸으로 체험하며 획득한 것인 데다 거부반응이 몸서리 등 몸의 반응으로 나타나고 보니 생각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턴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신호로 시작되는 시력 저하와 함께 그런 작은 사물들이 자세히 보이지 않게 되고부터 그러한 거부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벌레가 내 몸을 타고 가도 툭 쳐버리는 정도로 나는 그것들과 조금 무심해지면서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이란, 생각과 인식이라는 관념의 세계를 자신의 몸으로 현실화시키는 끝없는 적응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작은 풀꽃이 사나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에 방긋 얼굴을 내밀었다가 들이닥친 바람, 더위와 추위, 폭우, 가뭄 등을 겪으며 자신의 존재형식을 환경에 맞추어가면서 자연과 일체감의 모습이 되듯이 인간의 일생이라는 개념도 다르지 않은 듯하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혐오물질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일진대 그 왜곡된 관념의 세계를 극복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 공포감과 거부감의 자연을 향해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늙어감은 그런 편견으로 형성된 가치 개념에 대한 꾸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도전의 시간이자 역사일 것이다.
노화와 함께 찾아오는 육체적 불편함과 함께 그로 인해 새로이 편해지는 부분의 공존!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이 언제 그렇게 평온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열정과 방황으로 점철되곤 하는 젊은 시절, 세대 간 허리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는 중년의 시간을 살면서 끊임없는 변화와 고통이 함께하지만 언젠가 행복한 안정이 찾아올 것이란 희망으로 지침 없이 세월을 이겨낸다.
그런 지난한 삶의 역사를 목격하고도 왜 우린 여전히 삶이 평화롭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가 반드시 행복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단 1시간도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삼라만상의 움직임 속에서 인간인들 그 불안정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속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로소 그 실체를 자각하게 되는 그 '착각'이란 것..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 인간을 매 순간 지치지 않도록 속삭이면서 유혹해 주는 긍정 기제가 되었던 것일까.
일상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인식되는 고독, 갈등이란 것들은 우리의 감정과 의식을 자극하고 힘들게 하지만, 한편 그런 불안정한 의식 상태가 있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한껏 흔들리게 되고 타인·타자들과 교감하게 되면서 삶을 지탱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처럼.
돌이켜보건대 인생에 안정이란 개념은 원래 없었다. 끊임없는 변화를 겪다가 가는 삶, 그것이 인생이었으며 그 변화가 둔해지면서 멈추는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었다.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개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가 다른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