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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os 지니 Sep 15. 2017

감성의 결정체 '문화'

'릴케'의 '포도'가 떠오르는 계절


습기를 온전히 걷어낸 채 드러낸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살만이 부신 오후. 바람도 햇살을 즐기는지 이따금 살랑거. 그 살랑거림에 나뭇잎들도 따라 살랑이며 이리저리 햇살의 그늘을 옮겨 놓는다. 그대로 고요함이다.


가만 생각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역동성은 다름 아닌 공기의 흐름 때문이었다. 태풍을 만들고 비를 만들고 바람을 만들고 모두 공기의 역할이다. 그 공기의 흐름을 주도하 것은 조용히 내리쬐는 태양, 그로 인한 온 변화는 역동하는 자연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런 자연현상을 인간 삶의 패턴으로 단순화시켜 우리는 계절이라고 불렀다. 이 가을 하늘도 태양열이 이끌어낸 역동성의 한 자락이다.


복잡한 자연현상을 계절의 싸이클로 단순화시켰던 것은 삶의 반인 식량수확의 연간 실행계획서가 필요했던 탓이다. 그 계획서를 어떻게 행하는가에 따라 풍작이 되기도 흉작이 되기도 했으니. 작물이 성장해가는 과정과 결과를 따라 농부의 마음과 감정도 따라 움직였고 하늘을 향한 제례로써 간절함을 기원하니 바로 기쁨과 슬픔과 감사의 마음이었. 그리고 그런 감성들은 고스란히 그들의 문화가 되었다.


수확에서 멀어져 간 산업사회에서 계절은 다른 의미가 되었다. 문학하는 이들에겐 다채로운 변화의 소재로, 음악이나 미술처럼 감성을 표현해내는 이들에겐 영감의 배경이 되었다. 이를 통칭해 우리는 문화, 예술이라고 부른다.


확의 과정에서 발현되는 감성과 그저 자연현상인 계절의 느낌은 많이 달랐다. 자연에 실존하며 순응하는 감성은 단순했다. 그러나 삶의 기반이던 자연과의 교감에서 멀어져 간 산업사회의 감성은 멀어진 거리만큼 모호해지고 복잡해진다. 삶의 기반과 일체화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인지부조화 때문일까. 곁가지로 병리 현상들 따붙는. 인간 역할의 변화로 달라져간 복잡한 감성들도 그대로 시대의 독특한 문화가 되었다.


이제 자연에서  작은 할조차 더 이상 허락되지 않을 미래사회의 감성은 어떻게 변해가게 되는걸까. AI의 활약으로 삶의 역할에서 소외되어갈 인간 존재가 자연을 대신해 감성의 소재가 될까? 자신이 태어난 자연을 점차 그림 속 추화로 마주하게 될 미래사회의 감성이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향유하게 될 그 문화 놀음도.


아직도 가을이면 문득 떠오르는 '릴케'의 '익어가는 포도'가 기억에서 사라지게 될 그 어느 가을날 그들은 무엇을 사유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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