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잔잔한 커피 향과 함께 이 봄이 온다.

천천히 움트는 봄처럼 나의 날들도 희망이 움트고 있다.

1994년 열아홉! 고3이던 뜨거운 여름날에 천상병님의 귀천이란 시를 공부하다가 그 삶이 궁금해서 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서 보다가 결국 학교를 몰래 나와서 인사동을 거닐었던 날들이 있었다. 덕분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말도 안되는 무지개 빛으로 변해버렸지만... 그 추억만은 짙은 감성으로 내게 남았다. 그래서 지금은 학교에다가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서 놀고있다~ㅋ

젊던 날에 커피는 내게 별의미가 없었다. 그저 담배 한개비와 어울리는 50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향미를 찾아 손수 로스팅을 하고 또 평소에는 "그런건 내 할 일이 아니야!"하면서 관심도 전혀 없던 바리스타 자격증을 얻었고 지금은 좀 더 나은 드립을 위해서 연습과 생각을 하고 있다~ㅋ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구나~ㅋ"

3년전, 석달간의 병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원한지 체  2주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병원을 찾게된 내가 경험한 것은 척수염과 미각상실이었다. 분명 둘다 몹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미각상실은 너무도 극명했다.

입안에서 맛을 느끼지 못해도 어떻게든 삼키려고 애를 써서 씹어 삼켜도 결국에는 목구멍을 통해서 넘어가는 이질감이 너무도 어색해서 모든 것을 토해내야만 했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심해져서 결국은 물 한방울 마저도 삼킬수가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너무도 괴롭고 힘들어서... 정말로...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운동은 해야 했기에 링거를 꼿고 혼자서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다가 결국엔 지하에 있는 커피점 앞에서 처음으로 울컥?해서 정말로 울컥해서~ 그대로 멈춰서 버렸다.

'난 카페도 한번 제대로 다녀 본적이 없는데... 아니 커피도 한 잔 제대로 마셔 본적이 없는데... 그런데 이제는? 아니 앞으로는 더이상 못하게 되는건가? 그런건가?'

그래서... 그 억울함에 평소에는 부담되는 가격에 외면했던 그 뜨거운 커피를 사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이걸 못 마시고 몽땅 다 토를 하더라도! 그리고 뜨거움을 느끼지 못해서 내 입안이 온통 헐게 되어 버려도!  난... 해!볼!거!다!'

정말... 미친놈 같았지만, 그땐 정말로 그랬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커피는...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를 괴롭히면서 넘어오지는 않았고 또 그렇게 그후로는 커피가 생활이 되면서 없는 살림에 방법을 찾아야만 했기에 직접 로스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이 녀석들은 같이 해보자고 말을 했고 난 올해부터 "카페인"이란 동아리에서 지도교사가 되서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통했는지 선생님도 찾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오랜 교직생활을 마치시고 지금은 시골로 들어와서 아흔이 넘은 어머님을 모시는데 17년 전부터 커피와 인연이 닿아서 지금은 이렇게 찾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전하고 계신다. 그런데 나는 지난 겨울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고 또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제 본인은 가르치는건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그 이야기는 살며시 이어져 서로가 같은 과목을 가르쳤던 이력이나 또 산과 사진을 좋아하는 성향이 맞아서 지금은 이렇게 학생들을 데려가도 선생님은 손주 놈들을 보듯이 좋아하시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다.

그래서 난 참~좋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내 성향이었음이 보여서 더 즐겁다. 돈보다는 관계를 만들고 싶었고, 또 성과보다는 과정에 더 집중하고 싶었던 내 모습이... 이렇게 따뜻함으로 보여져서 더 고마운 봄날이다.

p.s 저 액자는 딱 20년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마음으로 배우고 싶었던 내가 말도 안되게 수영장을 찾아서 허드렛 일과 청소일을 하면서 친해져버린 성님들이 환송회에서 주었던 것이고, 또 뒷면에는 "이쁜 정상이!" "너 같이 그렇게만 살면 재밌을거야!" 란 말들이 적혀 있었음을 이번에 이렇게 이 장면에 어울릴것 같아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보게 되었다. 내 모습을!

산에 들어 배울 때에도! 또 스키를 배우고 서각을 배울 때에도! 난 항상 찾아가서 꾸뻑 절을 하고 빗자루를 들어 청소를 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쫄랐던건데~ 그런데 그때마다 고맙게도 내게는 인연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지금 내게는 스스로 바라는 모습이 있다! 그건 지금까지도 생각을 해왔던 바로 그 선생의 모습?

물론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쫌 거시기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건? 그래서 같이 말해보고 싶은건? 바로 그 태도와 마음이었으니~ 난 앞으로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먼저 가는 삼촌의 모습! 바로 그 모습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지금 이렇게 동서울행 버스 안에서 하고 있다~^^v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 나의 시간은 이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