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의 쓰레기 더미에서 태어난 거대한 쥐

조커 (Joker, 2019)

by Charley

제작 단계에서부터 손꼽아 기다렸던 <조커>가 개봉했다. 이미 아이맥스 명당자리를 예매해 뒀지만, 참지 못하고 일반 상영관에서 먼저 감상해 버린 <조커>에 대한 몇 가지 감상을 남겨 보고자 한다.




아서 플렉은 '병리적 웃음 유발(pathological laughter)'에 시달리는 안 팔리는 직업 광대로, 어려운 형편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픈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기까지 하는 성실한 남자다. 언젠가는 웃음이 사라진 세상에 웃음과 행복을 전하는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하찮은 광대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지만 그의 희망과는 달리 세상은 그에게 냉소적이기만 하고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긴다. 그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던 아서 플렉은 재미 삼아 그를 조롱하고 폭행하던 술 취한 엘리트 망나니 세 명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시의 복지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정신병을 치료하고 억누르는 약마저 강제적으로 끊기면서 그는 점차 다른 모습이 되어 간다.


웃기는 거 빼고 다 잘하는 아서 플렉 너란 사람

위의 시놉시스를 언뜻 보면 평범한 인간이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에 짓눌려 괴물로 변해가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영화의 내용과 연출을 조목조목 짚어 보면 마냥 선량한 시민인 아서 플렉이 세상의 억압 때문에 타락해서 조커가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 물론 그의 첫 살인은 과잉방위일지언정 꽤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첫 살인을 저지르고 공중화장실에 뛰어 들어가서 문을 닫고 숨을 고르는 장면을 돌이켜 보면 카메라가 긴장으로 경직된 그의 상반신을 비춘 후, 시선을 하반신으로 내려 서서히 스텝을 밟는 그의 발을 강조해서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이것이 정상인처럼 보이려는 노력과 약물 치료를 통해 억눌려 있던 그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살인이라는 트리거 상황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살인을 저지른 후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즐거이 춤을 출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내 생각엔 영화가 충실할 만큼 아서 플렉을 본인의 복수와 화풀이를 위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정신병자로 그려 놓았던 것 같다. 머레이 쇼에서는 제법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긴 하지만 토크쇼 사회자를 살해한 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의 궤변에 선동당한 시민들을 통해 고담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미친 도시인지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한 가지 더 꼽아 보자면, 아서 플렉이 그를 모함했던 랜들을 죽이고 개리를 살려 보내는 장면을 들 수 있겠다. 언뜻 보기에는 자신에게 친절했던 동료를 좋은 마음에서 살려주는 것 같지만, 겁먹은 그를 놀리면서 즐거워하는 것은 그저 약자를 가지고 노는 행동에 불과했다. 언제든 죽일 수 있고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지고 놀다가 보내준 것뿐이지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의 선한 측면을 보여주는 장면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고담에게나 그 자신에게나 큰 의미가 있었던 첫 살인을 기점으로 미친 듯이 계단을 내달리던 그는 종국에 가서 멀쩡한 척하던 스스로의 가면(아서 플렉)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본인의 모습(조커)을 세상에 내 보인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피로 조커의 시그니처인 위로 찢어진 입모양을 그려내는 장면은 특히 강렬했는데, 아서 플렉은 죽고 조커가 새로 태어났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한 멋진 말미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이 영화에 진짜 감탄한 이유는 바로 그다음 장면이다. 조커의 강렬한 탄생을 알린 뒤 화면이 전환되고 조커가 정신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듯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그는 왜 웃냐고 묻는 상담사에게 "네가 이해하지 못할 조크가 생각나서 웃었다”라고 말한다. 짧은 대사이지만 이로 인해 우리는 앞선 조커의 탄생 이야기가 진짜라고 장담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정신병원에 수감된 조커가 상담사에게 꾸며낸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내용이 그를 잠시 웃게 만든 머릿속의 망상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도 조커는 본인의 과거를 다양하게 지어내지 않던가. 그중에 과연 진실이 있는지는 조커 본인만이 알 뿐, 우리는 절대로 그의 과거를 알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나는 줄곧 <조커>에 등장하는 토마스 웨인 캐릭터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만약에 모든 것이 본인의 과거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는 조커의 말장난이었다면 오히려 이해가 가서 이 가설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싶다. (코믹스에서 토마스 웨인은 좋은 사람의 표본인데, 영화에서는 선민사상을 가진 흔한 기득권 층으로 보여서 의아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위와 같은 관점에서 영화를 관람했기 때문인지 주위의 괴롭힘과 학대 때문에 선한 인간이 악당이 되었다는 식으로 영화를 해석하고 거기에 자신의 불행을 투영하는 의견에는 별로 공감할 수가 없다. 정신병자 악당에게 동정심을 느낄만한 서사를 부여해 주었다고 해서 그가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그의 악행과 초반의 불행은 철저히 별개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 영화는 그 불행한 서사마저 조커가 입에 달고 다니는 수 많은 가짜 조커 오리진 스토리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암시를 주며 끝나지 않던가.




사실 <조커>는 제목이 조커가 아니었다면 DC코믹스의 배트맨을 거의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특유의 오리지널리티가 강하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배트맨의 스토리를 이어 넣었는데, 여러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서도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꼽아 보자면 토마스 웨인과 마사 웨인의 죽음일 것이다. 특히 쓰러진 부모를 눈 앞에 두고 서 있는 어린 브루스 웨인과 그의 뒤를 지나가는 거대한 생쥐는 나의 만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마치 그래픽 노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배트맨 시리즈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청소 노동자들의 장기 파업으로 슈퍼 쥐가 나타난 것처럼 고담의 어두운 이면에서 조커(또는 범죄자들)라는 슈퍼 쥐가 태어났고, 그 때문에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슈퍼 캣인 배트맨이 탄생했음을 암시하는 위의 씬을 영화 <조커>의 가장 의미 있는 장면으로 꼽고 싶다. (* 브루스 웨인은 부모님의 죽음을 계기로 배트맨이 된다.)


모든 것이 조커의 망상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이 영화를 한 편을 통해 조커와 배트맨 모두 탄생한 셈인데, 이건 이거대로 꽤 멋진 일이다!




언급한 것 이외에 좋았던 점을 꼽아 보자면 단연 와킨 피닉스의 인상 깊은 연기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숨에 영화에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강렬한 사운드트랙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나에게 와킨 피닉스는 지난 몇 년간 영화 <그녀>의 테오도르였다. 심지어 그 이후에 <마스터>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새로운 연기에 감탄에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20kg 넘게 감량해서 앙상하게 드러난 흉골 마저 조커를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달까. 그리고 그가 이렇게까지 몸을 잘 사용하는 배우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의 손 끝 발 끝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특별했다. 사실 처음엔 캐스팅에 반신반의했는데, 이걸로 나에게 보는 눈이 없었음이 증명되었다.


<조커>의 음악 감독은 묵직하고 어두운 첼로 선율이 인상적인 아이슬란드의 작곡가인 힐두르 구드나도티르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약간 생소하지만, 그녀는 2019년 최고의 화제작인 HBO 드라마 <체르노빌>의 음악을 담당하여 특유의 능력을 발휘한 경험이 있다. 체르노빌을 볼 때도 느꼈지만, 그녀의 건조하고 어두운 현악기 소리가 둥 하고 울릴 때면 그냥 지루하게 넘길 법한 장면마저도 바짝 긴장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마력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힐두르의 작업물 중 현재 US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인 Bathroom Dance를 첨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