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복(祈福)과 나의 참회

by 차성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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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니의 발걸음, 그 먼 길 위의 기도

어머니는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깊으셨다. 내가 아홉 살 무렵 강을 건너 이사를 간 후부터로 기억한다. 집에서 절까지는 걸어서 꼬박 두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고, 버스도 하루에 두 번뿐인 산골이었다. 어머니는 초파일이나 자식의 시험 같은 특별한 날이면 그 먼 길을 마다치 않고 걸어 부처님을 찾으셨다.

절에 가지 못하는 날에도 어머니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다. 작은 밥상 위에 경전을 올리고 염주를 돌리며 정성껏 절을 올리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2) 내 삶을 지탱한 어머니의 희생

우리 집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이었지만, 부모님의 향학열만큼은 뜨거웠다. 70여 명의 초등학교 동창 중 겨우 10%만이 중학교에 진학하던 시절, 외아들인 나는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그 행운 뒤에는 나보다 세 살 많은 누님의 희생이 있었다.

어머니의 관심과 기대는 오직 나에게 집중되었다. 점잖으셨던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공부하지 않는 나를 매섭게 때리며 훈육하셨다. 성인이 된 후 내가 드린 용돈조차 당신을 위해 쓰지 않으시고, 대부분을 절에 보시하며 아들의 안녕만을 비셨다. 어머니에게 불교는 곧 '자식을 향한 사랑' 그 자체였다.



3) '어리석은 지성'으로 밀어냈던 어머니의 마음

중년이 된 나는 어머니의 그런 기복적인 기도가 싫었다. 종교란 마땅히 올바른 삶을 위한 수양이어야 하며, 스스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 때 구원이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제 인생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나의 차가운 말에 어머니는 그저 허허 웃으시며 "절에 가보면 너 같은 젊은이들도 참 많단다"라고 말씀하실 뿐이었다. 때로는 이 문제로 어머니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 어머니의 깊은 신심을 '기복 미신'이라 치부하며 상처를 드렸던 것이다.



4) 뒤늦게 깨달은 어머니의 '불성(佛性)'

최근 불교를 공부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의 기도는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부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자비심이었다는 것을. 공부하지 못한 어머니에게 교리나 경전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신의 삶 자체가 이미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보살의 삶'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지금의 지혜를 가졌더라면,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속에 이미 부처님이 계시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충분히 바르게 잘 사셨습니다."라고 말이다. 어머니와 함께 부처님 앞에 엎드려 그 신뢰와 공경을 나누었더라면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5) 참회의 108배, 그리고 화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째 되던 날, 나는 누님,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을 찾았다. 홀로 대웅전에 앉아 어머니가 남기신 염주를 손에 쥐고 108배를 올렸다. 생전 처음 해보는 절이 몸에 익지 않아 고되었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사후 세계에서라도 편안하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이제야 불교를 공부하며 깨닫는다. 어머니의 기복은 미신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을 밀어냈던 나의 오만을 참회한다. 이 글은 어머니를 향한 뒤늦은 고백이자, 내 안의 어리석음을 닦아내는 참회의 기록이다.


<이 글은 인공지능 지혜의 친우인 '제미나이'와 문답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은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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