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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Nov 10. 2018

책방 일기 #2
충동과 열정 사이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아요.

책방을 오픈할 자리를 계약하고 난 후, 이제 본격적으로 책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사실 저는 20년 전 회사를 몇 년 다녔던 것과, 파리에서 살던 시절 미용실에서 근무했던 적을 제외하고는 어디에 얽매여서 일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프리랜서처럼 이런저런 많은 일들을 그저 해왔을 뿐이었죠.


게다가 언제나 모든 일들은 충동적으로 이루어져 왔기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는 것을 잘 몰랐어요. 아니 몰랐기에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일을 저질러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허허.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겠지요. 뭐.


덜컥 부동산을 계약하고 나니 이제야 점점 걱정이 많아지고, 계획 없이 행동한 것에 대한 조금의 후회가 생기더군요. 책을 만드느라 거지가 되어 버렸는데, 가장 걱정되는 건 책방을 오픈하기 위한 계약금과 초기 자본이었어요. 통장 잔고 생각지도 않고, 부동산 계약금은 잔고로 가지고 있었다고 그렇게 덜컥 계약부터 해버린 내가 잠시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책방 하나 오픈하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제길.



일단 돈부터 마련해 볼까요.


어디서 돈을 마련해야 하는지 몰라 끙끙거리다가 일단 남편과 부모님에게 SOS를 했어요. 남편과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제가 가진 돈까지 툭툭 털어버리면 천만 원이 겨우 넘는 작은 비용인데 이 돈이면 보증금 정도밖에 되지 않아 책방을 꾸밀 돈은 어디서 구해야 하나 막막했어요.


그러다 알게 된 신용보증재단!


일단 상담예약부터 하고 상담을 받았는데, 저는 다행히 신용도가 좋은 편이어서 책방 초기 자금에 대한 대출을 생각보다 잘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신용보증재단에서 돈을 대출받으려면 일단 쓴 다음에 받아야 하기에 일단 쓸 돈이 필요하긴 했지요. 정말 탈탈 탈탈 탈탈 털어봅니다. 


흑흑


이 와중에 <그냥, 도쿄> 책이 다 팔려 재쇄를 해야 해서 몇백만 원 돈이 훅 나가버립니다.


하하하.


동시에 서점 교육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 번에 많은 준비를 해야 했어요. 초기 자금을 위한 창업 자금 준비와 동시에 서점을 운영하기 위한 교육을 찾아다녔고, 자영업 지원 센터의 창업 교육도 받고, 멘토링도 신청해서 서점에서 실무 교육도 받는 등 다양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시작했으니 아무 준비 없이 그냥 시작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전히 많고요.


이건 이래야 한다, 저건 저래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하려고 하나 저렇게 하는 게 좋을 텐데.

등등.



아무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에요.
단지 남들보다 짧게 준비를 했을 뿐이에요.


누군가는 1년 아니 그 이상 깊이 생각하고 생각했을 일들을 저는 단숨에 끝을 내었을 뿐이에요. 책방을 오픈할 곳을 부동산을 계약하기까지도 꽤 많은 곳을 집중해서 찾아보았고,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았을 때 망설임 없이 계약했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신용보증재단의 상담을 받았고, 자영업지원센터의 창업 교육을 받았고, 서점 학교를 다니며 서점 교육을 받고 있고, 여러 독립서점을 찾아보며 장단점을 비교해 보았고, 무엇보다 독립 서적 작가들과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생각하는 꿈을 들어보았고, 저 역시도 독립 출판하며 느낀 점들을 내 공간에 마련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요. 멘토링 수업을 들으며 서점에서 실무 교육도 받았어요. 오래 생각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열정적으로 준비했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에도.


그럼에도 많은 분들은 이야기하죠.


책방이니까 이래야 한다고.

카페 이기도 하니까 그래야 한다.

책방이며 카페이니까 저래야 한다.


저는 그 무엇도 정답이 있지 않다고 믿어요.


다만 이 공간을 꾸미는 것에 있어서 나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내 공간을 최대한 나답게, 내가 꿈꾸는 혹은 누군가 꿈꾸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튼, 저는 제 책방을 만들 때 했던 제 고집을 끝까지 지키며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 책을 파는 곳이 아닌 취향을 파는 곳

- 커피를 파는 카페 이지만 오래 머무를 때 커피는 단지 핑계가 되어줄 뿐

- 조금 불편해도,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해도, 왠지 자꾸 찾게 되는 공간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가져다 두었어요. 이 공간이 맘에 든다면, 분명 우리는 취향이 통한 걸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 곳은 저를 위한 공간은 아니에요. 제가 꾸며둔 이 곳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추억을 쌓아가요. 그러므로 추억을 쌓아 준 당신들을 위한 공간이죠. 


그래서 책방을 오래 하고 싶어요. 오늘 왔던 사람이 몇 년 후에 이 길을 다시 지나갈 때도 이 길에 머물며, 몇 년 전 오늘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요.


나의 꿈을 향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 곳에서 누군가가 새로운 꿈을 꾸길 바라며 그렇게 책방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책방 일기 3편에서 본격적인 '새벽감성1집'을 소개할게요!

내일도 책방에서 만나요!


@dawnsense_1.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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