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글 쓰기를 시작 했으며 어떻게 사용하는가..
운전할 때 전방을 안 보고 사이드 미러(영어로 리어 미러라고 하던가)를 본 적이 있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우측 미러를 보며 운전하면 나도 모르게 차가 우방향으로 천천히 가게 되고, 좌측 미러를 보며 운전하면 역시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좌방으로 가게 된다. 그것도 천!천!히!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아, 나는 내가 가진 태도대로 움직이는 존재구나"하고 깨달았다.
이게 글 쓰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앞으로 할 행동이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이며, 왜 그렇게 하는 지 글로 써본적이 있는가?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결국 난 그 행동을 하고 있다. 싸이드 미러를 눈으로 보기만 해도 내 몸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 처럼, 내 행동 절차나 강령을 쓰게 되면 조만간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글 쓰기는 내가 해야 할 행동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내가 움직여야 할 행동을 나에게 강권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 아니, 사실은 매일 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틈 날때 마다 쓴다. 내 MBTI 유형이 INTP이다. 그것도 찐, 0.1%에 해당할 정도의 극도의 INTP이다. 그래서 머리로 계획 세우고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 시키는 것을 즐겨하며 그것에 능하다.
글 쓰기도 그 수단이다. 난 독특한 취미 생활이 있는데(사실 INTP 특이기도 하다)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상상하고 실험하는 등, 머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쉴새 없이, 가혹할 정도로 혹사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는 길게는 3일이나 일주일, 또는 경우에 따라서 1달에서 3달 앞을 내다보고 머리로 계획을 세운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글만 써 본 적이 두번이다. 또 다른 INTP 특으로서 꽂히는 데만 미친 듯이 파고들며 덕질을 심하게 몇달이고 몇년이고 한다.
과거에는 철학, 영어 습득, 언어학, 논리학, 역사 등을 거쳐서 지금 미친 듯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민법과 형법, 민사소송법, 그리고 수학이다.
나는 뭔가 특정 대상에 머리를 미친 듯이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머리가 뭐라 말할 수 없는 우울증과 절망감이 나를 사로 잡는다. 그래서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 나에게만큼은 공부는 휴식이지 정신노동이 아니다.그리고 그 공부의 강력한 도구가 바로 글 쓰기 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습적인 글쓰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Active Recall, Retrieval Practice, Paraphrasing, Summary, Compression, Academic Writing, Richard Fynman Technique 등 영어로 공부 글 쓰기에는 수년간 덕질을 하였고 학습적 글쓰기를 한국어로도 수년간 아니 수십년간 써 왔다. 아마 각쫑 논문을 수천 페이지 읽고 또 다시 수천 페이지로 요약문을 써왔을 것이다. 또한 직업적으로도 정보분석과에서 7년을 근무하면서 외국의 논문을 한국어로 2장씩 요약해서 매주 보고서를 쓰는 일을 했다. 지금은 AI가 생겨서 그 일은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갈 방향을 바라보고 글 쓰기를 하면 결국 나도 그 방향으로 공부를 지속하게 되는 놀라운 효과를 발견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앞으로 당분간 민법을 어떻게 공부할 지 글을 쓰면 그대로 되거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영미권에서는 이를 Thinking on papers라고 부르며 이미 존재하는 학문적 글쓰기 방법이었다. 실제 민법에서 내가 하는 Thinking on papers를 간단히 아래에 소개해 보겠다. 관심 없는 분들은 그 부분은 넘겨도 되겠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쓸때 일어나는 의식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항상 글을 그 자리에서 단숨에 써 내려가며 개요나 주제문 쓰기 같은 것은 안한다.
그럼 내 의식의 흐름의 예를 써 본다. 조금 길다.
일단 내가 지금 민법을 얕게 1회독 하고 유투브 강의를 들었으니, 이젠 조금 깊이 있는 민법을 공부해야 겠다. 그러러면 가장 많이 읽는 교수 저 중에 나에게 서술 스타일이 가장 맞는 교수 저인 민법 교재는 김준호 교수의 민법강의와 양형우 교수의 판례민법강의이다. 그런데 내가 재미를 느끼며 논리 흐름을 좋아하는 교수의 글은 곽윤직 교수와 양창수 교수의 글이다. 따라서 곽저와 양창수 교수 저를 읽고 싶다. 그러나 곽 저는 업데이트가 필요하고, 최신 판례가 빈약하다. 양창수 교수 저는 민법을 판덱텐 체제가 아니라 계약의 흐름대로 쓰고 있어서 지금 읽으면 체계가 혼란스러워 진다. 그래서 당연히 김준호 저 아니면 양형우 저가 우월전략이다. 그런데 양형우 저는 판례가 많이 소개 된 대신 리딩 케이스 분석 등이 없고 판례의 허리에 해당하는 핵심 단락들만 가져온다는 점과 자신의 언어보다 판례 원문을 더 선호하는 서술이라는 점이 있다. 아니 그 보다는 자신의 언어속에 판례를 녹여낸 서술이다. 그러나 김준호 교수 저는 양형우 처럼 다양한 판례를 소개하지는 않지만 리딩 케이스에 대해서 일관된 논리에 따른 서술이라는 점에서 리걸마인드를 키우기에는 김준호 저가 더 유리하다. 하지만 객관식 시험에는 양형우 저가 훨씬 유리하다. 그러니 리걸 마인드를 세우려면 초반에 김준호 저를 많이 읽고 다회독을 마쳐 놓아야만 시험 전에는 양형우 저로 정리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김준호 저를 읽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김준호 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 가? 처음부터 민법 교수 저로 다이빙 하면 용어의 낯설음과 법리에 대한 무지 때문에 체계를 못 잡고 허우적 거릴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김준호 저 앞 목차 부분을 따로 잘라 내서 수시로 읽고 다니고, 뒤에 색인도 잘라서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키텀을 떠올리기를 해야겠다. 그동안은 멍 때리는 시간은 영어로 생각하기를 했는데 이젠 민법의 주요용어를 내 말로 풀어보기를 해야겠다. 이 목차대로 정리한 강사 저를 병행해가면서 읽으면 김준호 저의 중요한 부분만 먼저 읽고 뼈대를 잡을 수 있다. 그러러면 이 체계로 쓰인 강사저와 ox 문제를 사서 풀면서 읽어야 한다. 그리고 사례형 문제 대비는 일단 김준호 저 지형도가 드러나면 그때 나가 는게 좋다. 왜냐면 사례형을 풀면 어떤 법리를 동원해야 할 지 몰라서, 내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모범답안이나 예시답안을 외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수학에서 개념을 익힌 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 먼저 풀다가 무슨 개념을 쓸 지를 몰라서 개념 학습을 안하고 문제의 풀이법을 외우는 것과 같다. 마치 실력 정석이나 기본 정석을 써서 예제 유제까지 쉽게 풀었으나 연습문제가 안 풀려 결국 다시 개념과 예제 유제를 반복할 생각을 못하고 각 문제의 풀이법만을 외우려는 것과 같은 단기적 효율, 장기적으로는 극도의 비효율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먼저 ox가 양 날개에 실린 책을 공부할때 효율성이 극대화 되었으므로 신민법, A2Z,단기민법, 고태환 변리사 민법 이렇게 네권을 봐야겠다. 그럼 무슨 책부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런 식이다. 내 생각의 편린만을 중간에 맥락 없이 뚝 떼어 놔서 생뚱 맞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를 머리 속에서만 하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 날라가 버리지만 thinkin on papers를 하게 되면 이를 다시 읽고 어느덧 나도 모르게 김준호 저를 보는데 있어서 요약집과 문제집을 먼저 보고 김준호 저에게 핵심에만 줄을 치고 그것만 반복해서 이해하게 되고, 그 이후에 몇 번 돌리고 나서 나머지 부분을 읽게 된다. 진짜 그렇게 된다. 쓰는 대로 나는 움직이게 된다. 그점이 나에게 글쓰기는 사이드 미러와 같은 것이라는 이유다.
읽는 분들은 눈치 채셨겠지만 나는 시험을 보기 위해 법학 공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법학롸 법리, 판사들의 판결문을 즐기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비중이 더 크다. 그럼 왜 난 쓸 데 없는 수학을 지금 이 나이에 다시 공부하게 된 걸까.
그건 숙명이다. INTP와 성인 고지능ADHD를 앓고 있어서 수년간 장기 치료를 받고 있는 나에게는 숙명이다. 내 머리가 논리적인 인풋과 아웃풋을 강렬히 갈망하고 있다. 십년 이상 스도쿠를 수천문제 풀어서 달래 왔으나 결국 나의 뇌를 달래기에는 스도쿠는 넘 힘에 부쳤다. 나의 뇌는 한 차원을 아니 몇 처원을 넘는 수학 공부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해 주지 않으면 내 머리는 폭발 해 버리고 만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어떻게 아냐고?
지난 수년간 꿈에서 시달려왔다. 수학 문제를 풀고 그 논리를 흡입하는 꿈을. 이젠 더 이상 못 버티겠다. 하고 싶은 일보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지만 뇌의 갈망을 더 이상 억제하기엔 이제 한계상황에 다다랐다. 내 메타인지가 나에게 명령하고 있기에 나는 안다. 사실 그 메타도 다 내 뇌가 명령하는 것이다. 법학 공부로는 채워지지 않는다고. 법학 같이 응용 논리보다는 슌수한 논리와 연역의 세계에서 활동하라고..
수학은 논리와 체계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내가 갈망하던 질서의 세계이다. 난 그 세계에 들어가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소통한다. 바로 수학적 사고와 논리라는 수학의 언어이다. 수학적 사고는 직관과 체계적 절차적 미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정제된 세계이다. 나의 ADHD와 극 내향적 성향에 관념적 사고만 하려는 나의 뇌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도파민이다. 그 동안은 법학에서 그 도파민을 찾아서 먹었는 데, 수학을 새로 시작하면서 나의 뇌가 너무나 기뻐하는 것을 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노벨상을 탄 러셀이 철학자였지만 수학을 더 알고 싶어서 빨리 죽지 않고 오래 살았다는 것이 이해된다.
어쩌다 수학과 뇌와 인지심리학 까지 와 버린 걸까? 그렇다, 글쓰기 때문이다. 이처럼 글쓰기는 나의 몸과 마음과 인지를 글을 쓰는 방향으로 움직여 국제정치학, 철학 등을 거쳐 수학까지 오게한 원동력, 바로 사이드 미러이기 때문인 것이다.
오래 전부터 브런치 글 쓰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난 나 자신의 학습 글쓰기를 매일 수십 페이지를 쓰면서 만족 했기 때문에 구태여 브런치를 선택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젠 가끔씩 나에게도 조그마한 세상과의 소통이라는 창으로 가급적 글을 올려 보려고 한다.
나의 첫 번째 브런치 글쓰기는 이렇게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