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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릿한 달팽이 Dec 03. 2020

엄마는 나에게

가벼운 모녀 이야기 2부

나는 어릴 때부터 줄곧 아빠 닮았다는 얘기를 들다. 그래서 성격도, 수학 못 하는 것도 아빠를 닮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엄마닮은 건 아마 작은 키 하나?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 내 안에 아빠보다 엄마 모습이 더 많이 보기 시작했다.




엄마도 나도 남 듣기 좋으라고 하는 빈말뿐 아니라 칭찬, 자랑에 익숙하지 않다.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초등학교 1, 2학년 때쯤이었다. 하루는 잠자기 전 엄마를 가운데 두고 동생이랑 셋이 나란히 누워있을 때 엄마한테 물어봤다. 동생이랑 나랑 누가 더 예쁘냐고. 어릴 때 동생은 얼굴이 뽀얗고 귀여웠다. 반면 나는 눈도 좀 째진 눈에 표정도 밝지 않았다. 낮시간에 우리를 봐주던 아주머니 언니들이 나보다 동생을 더 예뻐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엄마한테서라도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엄마 내 질문을 받고 똑 부러지게 대답을 안 했다. 나는 하나하나 어가며 물었다. "눈은 누가 더 예뻐?" "코는 누가 더 예뻐?" 엄마는 눈도, 코도, 입도 동생이 더 예쁘다고 했다. 집요하게 물어서 결국 얻어낸 대답은 귀는 내가 더 예쁘다는 것. (어린아이도 바보가 아니다. 발가락이 닮았다는 말이랑 똑같잖아.)


나도 가끔 아이들한테서 서로를 비교하는 난감한 질문을 받거나 마음에 없는 반응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어휘력과 사회 지능을 총동원한다. 내 양심과 아이들의 감정 모두를 지키기 위해. 그냥 빈 말하고 넘어갈 일에 그렇게 고민을 한다.


얼마 전 남편이 누구랑 얘길 하다가 "사모님이 미인이실 것 같아요." 하는 말을 들었단다. (대체 무슨 근거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마음이 예뻐요." 했다는 거다. 그 말 나는 내내 찜찜했다. 몇 시간 지나 남편한테 말했다. "자기, 앞으로 그런 말 들으면 좀 말이 되는 얘기를 해. 마음이 예쁘다니 그게 정말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아무리 빈 말이어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게 그렇게 기어이 짚고 넘어갈 일이었나.



엄마도 나도 칭찬과 자랑에 영 숙맥이다. 어릴 때 엄마한테 비난이나 질책도 별로 듣지 않았지만 칭찬을 많이 들은 것도 아니었다. 상을 타거나 뭘 잘했을 때도 엄마는 밝게 한 번 웃으면서 잘했다고 하는 게 끝이었다.


엄마는 자랑할 법 한 일도 남들에게 굳이 자랑하지 않는다. 둘째 큰엄마는 자식 자랑하는 걸 아주 좋아하신다. 옛날부터 그렇게 틈만 나면 ‘우리 지희가..’, ‘우리 은희가..’ 하면서 남들 보기엔 엄청 대단하지도 않은 사촌동생들을 자랑했다. 다행히 많이 거북하지는 않았다. 듣는 우리 모녀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을 뿐.


언젠가 엄마가 할머니 기일에 친척들 만난 얘기를 했다. 둘째 큰엄마가 또 아이들 자랑을 했다며 “근데 어쩜 그렇게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자식 자랑을 하니.” 하면서 웃었다.


나 역시 SNS나 단톡 방에 가끔 올라오는 아이 자랑이 어색하고 민망하다. (근데 내가 왜?) 적절하게 반응해주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매번 고민하는 우스 모습이라니. 칭찬과 자기 홍보가 대세인 이 시대에 참 난감한 성격을 물려받았다.



엄마는 정서도 생활도 나와 일정 거리가 있다.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필요할 때 손 뻗치면 도움받을 수 있는 한 척 거리쯤? 엄마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친구들 모임에 왔다가도 근처에 왔다 간다며 전화만 하고 가신다.


내가 미국에서 1년 동안 살 때도 비슷했다. 미국은 한 번도 여행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있는 동안 미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항공권과 현지 지출 비용을 따져보니 우리 집에 오는 것보다 패키지여행이 훨씬 저렴했던 것이다. 결국 엄마는 친구 두 분과 아빠 이렇게 네 분이 미국 동부 패키지 상품으로 미국 여행을 하셨다. 수박 겉핥기 식 강행군 패키지여행에 반대했지만 패키지여행에 익숙한 엄마는 괜찮다며 밀어붙였다. 결국 우리는 집에서 40분 떨어진 허름한 한인 식당에서 엄마, 아빠와 3,40분 같이 밥 먹는 걸로 만남을 대신했다. 엄마는 내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내가 있다는 명분으로 미국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내 아이들에게 애정 표현은 많이 하지만 아이들과 일상생활이나 마음이 밀착되어 있지는 않다. 아이들 숙제할 때도, 학교 가는 날 아침에 늦잠 자서 등교 시간이 빠듯할 때가끔은 거들지만 내 일이라는 생각이 없어서 느긋하다. 아이의 장점이 보일 때는 '어머, 넌 좋겠다.' 싶고, 아이의 단점이 보일 때는 '안 됐다. 난 안 그런데.' 한다. 아이들과 단짝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친한 선생님과 제자 같은 사이로 지내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든 감사한 일, 좋은 일을 찾는 것 역시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습관이다. 몇 달 전 엄마가 안과 정기검진을 받을 때 한쪽 눈에 황반에 주름이 생겨서 추적 관찰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6개월 후 다시 볼 때 그대로면 다행이고, 황반 변성으로 진행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엄마는, 그래도 일찍 발견했고, 다음날 종합병원 예약 취소된 시간에 운 좋게 갈 수 있었고,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성당에 들러 혼자 기도하고 오셨다고. 듣는 나도 덩달아 맞장구를 다.


나도 습관처럼 다행인 점이나 좋은 점을 찾아내곤 한다. 얼마 전 둘째 아이가 학교 온라인 학습자료가 너무 유치하다며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어른들이 노래에 맞춰 직업을 소개하는 알파벳 송이었다.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4학년 자료 치고 조금 유치하긴 했다. 남편은 영상을 보고 “이 사람들은 속으로 어떻겠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했을 걸.” 했다. 나는 그 말을 낚아채듯이 “아니지. 좀 유치하긴 해도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거라 생각하고 재미있게 했을 걸.” 했다. 그 말을 들은 첫째 아이 “그건 참 ㅇㄱ이다운 생각이군.” 하는 거다. 나다운 건 뭐지? 내가 깔깔대며 ㅇㄱ이다운 생각은 뭐냐고 물으니 그냥 그렇게 좋게 생각하는 거라나.    



인생이 긴 산책길이라면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그 산책길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길동무들이다. 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 중에 엄마는 산책 출발점부터 한동안 내 손을 잡고 걸어준 사람이다. 내가 다른 동행들을 만나 정신이 팔려엄마는 다른 길을 걷는 줄 알았는데 실은 항상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같이 걷고 있었던 거다. 엄마도 다른 동행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엄마는 나에게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오랜 동행이었다.


훗날 갈림길을 만나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어도 그전까지는 오래도록 같이 걸을 수 있기를. 나도 엄마에게 그렇게 든든한 동행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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