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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 글감 많다더니

글쓰기는커녕 스스로 돌보기도 힘들다.

by 미쓰한

시험 끝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그러고도 발표일까지 무려 두 달이 남았다. 어이없다. 그간 바쁘게 살려고 나름 노력을 했다. 예전에 읽다만 소설을 끝내고 새로 흥미로운 소설도 몇 권 읽었다. 글모임도 다시 시작하고 꽤 마음에 드는 문장도 몇 줄 썼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자격증 공부를 몇 개 하고 하나는 합격도 했다. 학원일도 늘렸고 남는 시간엔 생전 해보적 없던 영업일도 배우고 있다. 나의 부산함에도 불구하고 발표일만 생각하면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 느껴진다.


문우들에게는 그동안 글감이 많이 모였다고 아주 부자인 척을 했었다. 집중적으로 고시생 에세이를 써보겠노라고 선언까지도 했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남자친구와 크게 다투고서 헤어지네 마네하고 집에 돌아오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딱 사라져서 글모임 마감시간도 어겼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망할 점쟁이가 했던 하반기에 이별수가 있다는 말만 자꾸 떠올라서, 점 보러 갔던 글을 억지로 쓰고 하루 늦게 꾸역꾸역 제출했다.


마감일은 또 빨리 돌아왔다. 영원히 오지 않는 발표일을 생각하면 반가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지난주 마감기한도 어긴 판에 과감히 이번 주는 글쓰기를 때려치워볼까 고민도 해본다. 이런 무기력감..


나는 에세이를 쓸 때 출구부터 만들어 놓고 입구와 전체틀을 지어나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나에게 결론 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든 여러 생각들을 그러모아 글을 쓰고 있지만, 출구는 아직 없다. 고시생 에세이가 환희에 찬 합격으로 끝날지, 정신승리로 포장한 아쉬운 불합격으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러니까, 남자친구랑 이별수에 탁 걸려서 헤어질 건지, 다시 잘 극복해서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건지 알 수가 없다.)


발표일은 마치 다른 차원에 있는 다른 세계 같다. 그곳의 나에게 끝없이 질문해 보지만, 언제나 그 질문은 미래로 일방통행일 뿐. 정직하게 시간을 통과해서 나는 오로지 현재의 대답만을 가질 수 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그래도 방법은 이것뿐이니 마감을 지켜서 몇 줄이라도 글을 써본다. 저장된 글쓰기만큼 정확히 미래에 닿을 질문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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