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흔들리는 초보 투자자의 하루
요즘처럼 정부가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을 연이어 발표하고, 증시 부양 기대감이 언론을 통해 자주 언급되는 시기라면, 누구라도 이런 상상을 해보게 된다. 주식이 적금처럼 원금이 보장된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의심 없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지도 모른다. 나 역시 훨씬 덜 망설이고, 덜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주식은 현실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가가 하락할 때는 원금만이라도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원금만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시대가 만든 불안에서 비롯되었다.
1990년대 초, 저축이 미덕이던 시절은 점점 저물고, 사람들의 관심은 투자를 향해 움직였다. 정부는 주식시장을 활성화하려 했고, 언론도 '증권 저축', '주식 투자'라는 말을 앞세워 분위기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통장에서 주식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1991년 한 해 동안 주식시장은 약 12% 하락했고, 손실을 본 투자자들 사이에는 불안과 실망이 번져갔다. 이어진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세계 금융위기처럼 반복된 큰 하락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는 '주식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았다.
부동산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4년쯤, 정부는 집값을 띄우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했고, 사회 전반에는 '빚내서 집 사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졌다.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조급한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 실제로 집값은 오르면서 가진 사람은 더 부자가 됐지만, 이미 비쌀 때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들 중에는 이자 부담에 시달리거나, 집을 팔아도 큰 이익을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경제 뉴스에 무관심했다. 주식은커녕 재테크 자체가 내 삶과는 먼 이야기였다. 경제는 어려웠고, 주식은 무섭기만 했다. 나도 주식으로 가정경제가 위험해져서, 이혼까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기에, 주식은 내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적금만이 정답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현실적인 불안이 커졌다. 노후 준비는 물론, 아직 완전히 독립하지 않은 자녀에 대한 책임, 예기치 않은 의료비나 생활비까지…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계산이 오갔다. 과연 나는 노동 외의 방법으로도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돌아보면 그동안 재테크에 너무 무관심했던 탓에, 이런 불안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했다. 경제 뉴스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정부 정책의 흐름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이 시류에 휩쓸리고 있었다.
수익을 기대하면서도 손실은 감당할 수 없었다. 원금을 지키고 싶고, 동시에 큰 수익도 내고 싶은, 모순된 마음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의 2023년 개인투자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투자 경험이 2년 이하인 초보 투자자일수록 시장의 급격한 가격 변화에 감정적으로 쉽게 반응하며 손실 회피 성향이 뚜렷한 경향을 보였다. 나 역시 그랬다. 계좌 잔고가 오르면 기대감이, 떨어지면 불안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다. 숫자는 나의 하루 감정을 좌우했다.
혹시 나도 과거 시류에 휩쓸려 투자했다가 실패하고 낙담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되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은 마음 한구석에 뿌리처럼 남아 있었다.
첫 투자는 운이 좋았다. 내가 산 종목이 하루 만에 50% 가까이 상승했다. 적금에 묶여 있던 자녀 등록금까지 투자하며 수익을 기대했다. '이제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고,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기업 정보를 찾아보며 점점 더 빠져들었다. 그렇게 나는 주식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주가가 급락한 날, 나는 휴대폰 화면 앞에서 무기력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제발 원금선만 지켜줘…"
손가락으로 화면을 문지르며 숫자를 붙잡아 보려 했지만, 주가는 멈추지 않았다. 벽시계는 손으로라도 잠시 멈춰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휴대폰 속 숫자는 내 손과는 아무 상관없이 흘러갔다. 나는 마치 그 숫자를 조정할 수 있을 것처럼 화면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장 마감까지 애타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이건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감정의 소모전이었다.
계속 속상해하며 주식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는 나에게, 남편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냥 다시 통장에 넣는 게 어때? 당신 마음이 좀 편하게."
정부가 제시한 방향, 시장의 낙관론, 주변의 분위기. 그것이 나에게도 기회를 줄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코스피 5000 시대를 연다는 전망까지 나오니, 하루이틀의 주가 조정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주가가 올라 기뻐도, 적절할 때 팔지 않으면 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가의 등락만 바라보며, 내 돈이 아닌 숫자에 감정만 오르내릴 뿐이다. 상승하는 숫자는 그 자체로 달콤한 유혹이다. 진짜 수익은 이익이 났을 때 파는 것이지만, 그 '적절한 때'를 판단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감이 높다. 주가 부양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자, 나처럼 주식을 멀리하던 사람들도 어렵게 돈과 마음을 들여 투자에 나섰다. 단순한 개인의 투자가 아니라, 마치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이 협력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러나 정책은 방향만 제시할 뿐, 실패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개인에게 돌아온다.
국가의 방향에 따르더라도, 국가가 나의 손실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투자 열기가 고조될 때마다 누군가는 크게 벌지만, 누군가는 모든 걸 잃는다. 같은 시장, 같은 종목 안에서도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었다.
여유 자금이 많은 사람은 실패해도 회복할 수 있지만, 소액 투자자에게는 작은 손실도 큰 타격이다. 돈 좀 벌어보겠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뛰어든 서민들이 실패했을 때, 그 좌절은 몇 배로 크다. 나에게는 어느 쪽의 시간이 올까. 그 불확실성이 바로 가장 큰 불안이다.
그래서 적금에는 예금자 보호 장치가 있듯, 주식에도 소액 투자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바람이 절실해진다.
맹목적으로 시류를 따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을 갖는 것. 그게 진짜 투자자의 자세일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선택의 기로에 서면 불안과 욕심이 동시에 밀려온다. 주식투자라는 시류를 따르자니, 주가의 등락에 감정만 흔들리다가 결국 손해만 보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외면하자니, 나만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싶다. 흐름을 따르기도, 외면하기도 망설여지는 마음이다.
정부 정책이든, 시장의 분위기든, 결국 나에게 맞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이유와 방법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 번쯤 내 삶에도 작은 전환점이 생기길 바랐다. 크게 욕심내진 않았지만, 무언가를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있었다. 그 마음이 기대가 되었고, 기대는 다시 불안으로, 감정으로 돌아왔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은 과연 어떤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