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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1. 2023

[단편] 삼도천사가 - 7화 (끝)

그러던 어느 가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은수의 아이가 하교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12시 반. 곧 아이가 나올 테다. 아이의 학교 정문 건너 카페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은수의 남편. 진욱이었다. 지환의 자리를 뻔뻔하게 차지하고 비켜서지 않는 자. 지환은 카페에서 나왔다. 천천히 정문으로 걸어가 진욱의 옆에 섰다.


진욱은 바짝 옆에 선 지환을 한번 흘깃 보고 팔짱을 낀 채 다시 정문을 응시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어, 나 도착했어. 12시 반 하교라며. 뭐? 벌써 도착했어? 왜 이렇게 서둘렀어? 천천히 하지. 내가 데리고 오면 되는데. 그래, 잘 됐네. 같이 기다리자. 근처 산책이라도 가볍게 가면 되겠네.”   

   

그리운 은수의 음성이 진욱의 핸드폰에서 흘러나왔다.


지환의 마음이 무너졌고, 그와 동시에 표정도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버텨온 지환이었다.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존재를 참아내기 위해 입을 꽉 다물었다. 턱이 아플 지경이었지만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야가 흐려지나 싶더니 또렷하게 밝아지고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진욱은 천천히 웃으며 아이를 기다렸지만, 지환은 그럴 수 없었다. 오늘은. 지금은.           


  




정문 건너편에 멈춘 택시에서 내린 은수는 눈으로 진욱을 찾았다. 하지만 은수의 눈에 띈 것은 진욱의 옆에서 튀어나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린 어떤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연우야! 오빠! 저 사람 뭐야!”      


끼익. 쾅.      


반대편에서 오던 배달 오토바이는 갑자기 뛰어든 은수를 보지 못했다. 은수는 그대로 쓰러졌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진욱은 은수를 한번, 아이를 한번 보더니 아이의 눈을 가리고 한발자국 뒤로 섰다.


은수의 기억은 거기까지. 생도 거기까지.


지환의 삶도 거기까지였다. 이제 은수가 없으니. 아이가 있는 한 진욱의 삶은 계속되지만, 은수가 없으면 지환은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그것 봐. 은수야. 니가 이렇게 됐는데. 니곁에 누가 있니. 은수야. 그것 봐. 나밖에 없잖아. 은수야.”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이 남자를 기다린 걸까. 왜 기다린 걸까. 이 남자는 나의 무엇이었을까.’      


남자는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 그렇지만 따뜻한 느낌.      


“이제 갈까요? 더 이상 다리 위에 서있지 말아요. 더 기다릴 사람 없어요. 내가 왔잖아요. 이제 가요. 우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젠 지친다. 가자. 나도 저 다리 끝으로.’       


둘은 손을 잡고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할멈도 할아범도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어쩔 줄을 모른다.

     

이곳은 삼도교.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는 다리. 천천히 가도, 늦게 가도, 쉬었다 가도 그뿐이다. 당도하기만 한다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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